'존 듀이(John Dewey)'는 실용주의 철학의 창시자이자 미국뿐만 아니라 20세기 교육사상을 대표하는 유명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그가 90세 생일기념으로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어떤 기자가 질문했다.“교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문과 지식으로 사회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큰데 이제는 편히 쉬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존 듀이가 대답했다.“산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정상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그다음 산에 오르세요. 만일, 더 이상 올라갈 산이 보이지 않을 때는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기능에는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유일한 어록 중에서-그러나 모든 일이 뜻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적의 꽃은 피웠으나, 그 꽃에서 열매를 따기까지는 긴 세월의 시련이 있었다. 그러고도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불운이 찾아들 수도 있었다.이 모든 일들을 개척하고 진전을 본 유일한 사장은 이제 사업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유한양행 간부들의 적극적인 추진력에 의약업계를 비약적 발전으로 이끌어 갈 기틀이 잡히자, 유일한 사장은 한국을 떠나 잠시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1938년 4월
어느 정도를 아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는 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유일한 박사의 어록 중에서-유한양행이 국내에서 생산 시설과 경영 방침을 갱신해가고 있는 동안, 국외에서는 유한양행의 제품들이 경이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국내의 판로는 이미 개척된 지 오래지만 그 영역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만주와 중국 본토・중국 서북부·대만· 일본 오사카 지역까지 유한양행의 판매망이 구축됐다.처음에는 다롄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만주와 중국에 의약품을 공급 했으나, 중일전쟁의 심화로 상하이 지점은 문
“기업의 기능이 단순히 돈을 버는데서만 머문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유일한의 어록 중에서 -제약 생산을 결심한 유일한 사장은 제약 공장 건립을 서둘렀다. 한국은 물론 만주와 중국대륙으로 판로를 넓혀야 하며, 가능하다면 동남아 쪽으로 진출할 준비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유일한 사장은 주식회사를 발족한 지 한 달 남짓부터 공장 건립에 착수했다.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 대지 2만 평을 매입하고 「제약실험연 구소」 및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그때가 1936년 8월 초였다.그 당시 소사는 서울에서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러나 유일한
노력 끝에 찾아온 우연한 행운! 이것을 ‘세렌디피티의 법칙’이라고 한다. 18세기 영국 작가 호레이스 월폴이 페르시아 동화 '세렌디프의 세 왕자'라는 내용에서 처음 유래됐다. 동화 속 왕자들이 생각지 못한 행운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에서 그 의미가 생겨났다. 왕자들은 전설의 보물을 찾아 떠나지만 보물을 찾지 못하고 그 대신 계속되는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거나, 모래 위에 불을 피우다 유리를 개발하거나, 목욕탕에서 넘치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알아냈다. 사무공간에서 흔히 사
실패 그것으로 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면 실패 그것은 이미 나의 재산인 것이다.-유일한 어록 중에서- 유일한 사장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창안해 내고 시작할 때는 자신이 책임지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리고 방향이 설정되고 추진 가능성이 커지면, 곧 후임자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은 또 다른 일을 창안해서 개척했다.이제 만주와 더불어 기업 무대를 국제적인 지역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제약 회사를 본격적으로 추진시키기로 한 유일한 사장은 잠시 시야를 넓은 세계로 돌렸다. 유한양행의 사업 종목을 확충해서 거리제 유럽으로까지 확대
이상적인 인간형성을 위해 근면, 성실, 책임감은 바람직한 3대 요소이다. 그러나 여기에 성급하지 않은 성격까지 구비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유일한의 어록 중에서-유일한 사장은 다롄에 아보트로부터 일부 출자를 얻어 창고를 지었다. 그리고 다롄의 책임자로 김영호를 파견했다. 그는 몇 해전 입사해서 유일한 사장의 무역 일을 돕고 있던 유능한 인물이었다.이렇게 대륙 진출의 결단과 더불어 유한양행은 국제무대로 뻗어 가게 된 셈이다.이와 때를 같이해 유일한 사장은 또 하나의 중대한 구상을 했다.지금까지는 미국 의약품을 수입해서 판매해 왔지만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성을 남기기도 한다.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 유일한 사장의 어록 중에서 -짧은 기간에 한반도 내에서 유한양행은 일본 제약업계와 경쟁해서 어느 정도 승리의 기세를 잡았다. 하지만 일본 제약업계가 만주를 차지하게 되면 유한양행의 세력은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이 만주 점령의 정치적 야욕을 확대해 나가는 데 유한양행도 보조를 같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에 협조하거나, 협조는 아니더라도 악의 세력에 기대 기업을 확장하는 역사적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유일한 사장의 어록 중에서-유한양행이 문을 연 지 4년 만에 이룩한 성장과 발전은 눈부신 것이었다.이제 국민들은 '약' 하면 누구나 ‘버들표 유한’을 떠올릴 정도였다.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모든 병원은 물론 광산 지역의 개인병원까지도 유한양행의 약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약국에선 유한양행의 의약품을 자랑스럽게 취급할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시대는 1930년대
유일한 박사는 1944년 6월 8일 미 국무부 극동분과의 다이코버 (Dichover) 에게 카이로 회담에서 독립을 약속한 만큼 우리나라의 경제문제 등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한국경제 개요 Korea Economic Digest 의 첫 주제 사본이 귀하에게 우송되었습니다. 우리는 귀하가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기를 희망합니다. 귀하께서 그 내용 즉 협회 Society 의 목적과 우리의 계획업무에 대해 검토한 후에 우리에게 솔직하게 편리를 주신다면 우리는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그 귀하의 의견에 우리가 하고
실패, 그것으로 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를 깨닫는다면 , 실패 그것은 이미 나의 재산인 것이다. -유일한 박사의 어록 중에서-유일한 박사가 귀국한 지 12년이 되는 1938년 유한양행은 제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화문석, 도자기, 죽제품 등 특산품을 미국·유럽·중국 등지로 수출하는 등 수출입을 병행하여 사세가 크게 확장되면서 전 세계로 뻗어 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그는 그해 4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유일한 박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1938년은 그냥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시점이다. 1937~1938년은 일제의 지배· 통치
1926년 덕원빌딩 사옥에서 기초를 닦은 유한은 1929년 사세가 확장됨에 따라 길 건너편 YMCA로 이사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접어 들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한의 사세는 눈부시게 확장됐다. YMCA 사옥으로 불편을 느껴 다시 신문로 언덕배기의 160평 대지를 매입하여 2층 양옥을 지어 이사한 것은 1932년이었으니 YMCA로 이사한 지 불과 3년만이었다. 이 무렵 유일한 사장은 사원들에게① 항상 국민보건을 위해 일해야 한다.② 우리 민족이 일본민족보다 못하지 않다는 민족의 긍지
1925년 녹두수입을 위한 첫 번째 고국 방문길은 유일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의 악한 수단정책으로 인한 동포들의 비참한 생활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조국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미국에 머물기보다 조국으로 돌아가 무언가 나라를 위해 기여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영구귀국을 결심하게 된다.마침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에비슨 학장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에비슨의 초청은 유일한박사에게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그리고 그의 부 인 유호미리에게는 세브란스의전 소아과 과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이 요청에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성을 남기기도 한다.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유일한 박사 어록 중에서-유일한 박사의 생애출생과 유년시절 미국 유학생활 창업과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귀국 그리고 민족기업 유한양행의 설립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 시대를 앞선 선구적 참경영인 교육자. 공익사업가의 면모 영면과 전 재산의 사회 환원 오늘을 감동시키는 정신 출생과 유년시절 유일한은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5년 1월 15일 평양에서 아버지 유기연과 어머니 김기복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유일형
본지는 수회에 걸쳐 유일한 박사의 인생철학을 다시 되짚어봄으로서 현대사회에서의 리더의 역할과 기업의 사회환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달코자 한다(편집자주)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유일한 박사의 어록 중에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가지 고, 보람 있는 생을 살아오며, 업적까지 남긴 지도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교육계 등 모든 분야의 지
최근 들어 치과계에는 digital이라는 단어가 무척 많이 사용되고 있다.1.Digital Dental이란digtal치과 digital전문기공소등 상호 앞에 표기를 하면서 치과계전반적으로 많은 관심이 있다. 하지만 digital의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쓰여 지기도 한다.digital과 A.I를 같은 의미로 쓰여지는 부분이 있다. digital과 A.I는 전혀 다른 의미다.digital은 간단히 말하면 주어진 값을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복제되어지는 결과물들이 일정하게 나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좀 더 쉬울 거 같다. 즉 자동화
우리나라 구강악안면외과는 치과의 전문과목으로서 입, 턱, 얼굴 부위의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 및 성형, 재건을 담당하고 있다.미국식 제도에 근거한 치과대학에서 치의학의 한 과목으로 시작하였고,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거치며, 그 중요성이 부각됨과 동시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이는 미국의 구강악안면외과의 발전 역사와 매우 유사한데, 미국 역시 치과가 의과와 분리된 탓에 치과의 한 분야로 발전하다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비로소 그 가치가 입증된 바 있다. 한국전쟁 이후 초기에는 구강 및 턱 얼굴부위의 다양한 감염성 질환에
진료과정과 의료 사고의 발생 경위망인(여/70대)은 뇌경색증 진단 하에 항혈소판제를 포함한 약물을 복용 중인 자로 2021년 5월 피신청인 의원에 내원하여 영상검사 후 상악 #15, 16, 24, 26 부위에 임플란트 진단 및 치료계획 수립 후 당일 식립 수술을 받았다.귀가 당일 17:00경 갑자기 시작된 우측 위약과 구음장애(dysarthria)로 □□대학교병원에 내원하여 받은 뇌 CT상 뇌출혈 소견이 확인되어 수술적 치료를 받았으나 4일 뒤 뇌간마비로 사망했다.분쟁의 요지신청인: 항혈전제를 매일 먹고 있었고 이를 피신청인에게 알
1938년 어느 가을날 열아홉 살 적 청년은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서 승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가, 어느 이름 모를 승리의 승무를 보고는 밤늦도록 뒷마당 감마루 아레에서 넋없이 서 있었다. 그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은 조지훈이 20살 되던 다음 해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승무 시로 태어나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그 청년이 다시 토함산의 석굴암을 찾았다. 그리고 수필 '돌의 미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돌에도 피가 돈다. 나는 그것을 토함산 석굴암에서 분명 보았다. 석굴암에서 돌에 피가 돈다
# 진료과정과 의료 사고의 발생 경위신청인은 3개월 전부터 입마름증 및 안구건조증으로 2016. 12. 16. 피신청인 병원에 내원해 방사선 검사 및 혈액검사, 2017. 1. 9. 아랫입술 소타액선 조직검사(봉합 3바늘)를 받았다. 같은 달 진료 시 우측 아래 입술부위의 불편감을 호소했다.피신청인 병원 의료진은 조직검사 부위 드레싱 및 가글(식염수 500cc에 소론도, 아목시실린 캡슐 파우더를 믹스하여 하루 3-4회, 1-2분간 가글)을 처방했다. 이후 같은 해 1. 18., 2. 3., 3. 6. 신청인은 조직검사부위 감각저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