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영역의 천연물특집 (15)
장미(薔薇; Rose)
멀고 먼 옛날, 구두쇠 향수상인의 딸 '로사(Rosa)'는 자기네 꽃밭에서 일하던 ‘바틀레이’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바틀레이’는 매일 꽃밭에서 꽃을 따서 향수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자기가 만든 것 중 가장 좋은 향수만 작은 병에 담아서 남몰래 ‘로사’에게 선물하곤 했다. ‘바틀레이’가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가게 되자 ‘로사’는 향수 만드는 일을 대신하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를 연인을 위해 최고급 향수만 하루에 한 방울씩 모았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도 헛되이 ‘바틀레이’는 전사하고 상자에 담긴 그의 유해만 돌아왔다. ‘로사’는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간 모아왔던 값비싼 향수를 유해에 모두 뿌려주었다. 이를 본 아버지가 홧김에 유해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자 ‘로사’는 그 불에 뛰어들어 타죽고 만다. 이후 거기서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나무가 바로 들장미(Rosa)였다고 전해진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향수를 애용하고 장미목욕 등 일상생활에서 많은 장미를 사용하였다.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만날 때마다 장미로 주변을 장식해 ‘안토니우스’가 장미 향기를 맡을 때마다 자기생각이 나도록 중독 시켰다. 특히 ‘안토니우스’가 참석하는 연회 때에는 당시 금액으로 1타랑(현재 미화로 13,000달러)을 들여 궁전바닥에 약 1m 높이로 장미꽃을 깔았다. 그 결과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최후를 맞이하였을 때 자신이 죽으면 장미꽃으로 덮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폭군 ‘네로’황제는 축하연 때에 장미로 만든 관을 썼으며 장미꽃잎으로 채운 베개서 잠을 잘 정도로 장미를 사랑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꽃이었고 기독교 이후에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했던 장미와 연루된 역사이야기는 영국의 ‘장미전쟁’으로 그 절정을 이룬다.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이란 호칭은 1455년부터 1485년에 걸쳐 영국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던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이 제각기 흰 장미와 빨간 장미문양의 깃발을 앞세우고 30년 동안이나 분쟁을 계속하다가 결국 양가의 장미를 섞은 문양을 채택하면서 전쟁이 종식되고 ‘튜더왕조’가 시작되었던 실화로부터 유래되었다.
장미는 薔(장미 장), 薇(장미 미)자를 쓰는 한자어이다. 야생종 장미는 주로 북반구의 온대와 한대지방에 분포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3천만년 이상 된 장미화석이 발견된다.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중국 등에서 발굴된 벽화를 통해 오래전부터 여러 종류의 장미가 인공적으로 재배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장미의 잎은 어긋나기를 하고 보통 홀수 깃꼴겹잎을 이루지만 홑잎인 것도 있으며 턱잎이 있다. 찔레꽃과 같은 홑꽃은 꽃잎이 5개지만 장미는 겹꽃이나 ·반 겹꽃을 이루는 것이 많다. 장미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는 가시인데 줄기의 표피세포가 발달해서 끝이 날카로운 피뢰침 구조로 변한 것이다.
이곳저곳 산과 들에서 가시덤불을 이루며 은은한 향기와 함께 하얀색이나 연분홍 꽃을 피우는 소박한 찔레꽃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즉 온갖 이름을 지닌 형형색색의 외래종 장미들도 거의 다 우리나라의 풍토에 적응하도록 토종 찔레꽃에 접목해서 만든 것들이다. 그래서 장미 한 그루에 장미꽃과 찔레꽃이 같이 피어나는 경우도 많다.
찔레꽃이 지고 가을이 되면 팥알만 한 빨간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이 약재로 사용되는 ‘영실(營實)’이다. ‘영실’은 여자들의 생리통, 생리불순이나 신장염 치료에 효험이 있는데 8~9월쯤 열매를 따서 그늘에 말려 달여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는다. 찔레뿌리는 산후통, 부종, 관절염에 좋고 뿌리에 기생하는 ‘찔레버섯’은 어린아이의 경기나 발작치료에 좋을 뿐 아니라 각종 암 발생을 억제하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장미꽃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그 양이 에스트로겐 함량이 높은 과일로 잘 알려진 석류보다 8배나 많다. 따라서 장미는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켜 주거나 생리통, 생리불순 들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큰 천연물이다.
장미꽃은 특히 향기가 매우 오묘하다. 향기에 대한 설명도 그냥 달콤하다, 향긋하다, 정도를 벗어나 '장미향' 이라 칭해질 정도로 특유의 향이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장미향을 lemony fresh with various nuances of powder, wood notes or fruit, feminine, clean, intensely romantic(다양한 뉘앙스가 있는, 신선한 레몬, 혹은 파우더, 나무 향 아니면 과일향, 여성적인, 깨끗한, 강렬한 로맨틱)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장미향을 맡으면 뇌파의 일종인 ‘알파파’가 활성화돼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불안감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장미 차는 피곤하거나 마음이 불안 초조할 때 기분전환과 정신적 긴장완화를 위해 유익하다.
장미에는 노화방지 효과도 있다. 장미에는 ‘폴리페놀(Polyphenol)’이라는 항산화물질이 들어있는데 그 양이 녹차나 홍차의 1.5배 이상이다. 항산화물질은 몸속에서 생가는 유해물질인 활성산소를 줄여 노화를 예방하며 혈관 내 노폐물의 배출을 도와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므로 장미꽃을 이용하는 목욕요법인 ‘플라워테라피’도 널리 시행되고 있다.
70% 에탄올로 추출한 장미꽃추출물은 피부나 조직의 염증반응 억제 효과를 발현한다. 이 효과는 Mitogen-activated protein kinases(MAPKs)신호전달체계를 저해함으로써 염증인자인 Cyclooxygenase-2(COX-2)의 발현을 억제하여 나타나는 결과인 것으로 밝혀졌다.
MAPKs 신호전달체계는 크게 3 종류의 단백질, 즉 JNK, ERK, p38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MKK4, MEK, MKK3/6의 인산화(Phosphorylation)를 통해 활성화된다. 이러한 MAPKs 신호전달체계는 피부나 점막을 비롯한 모든 인체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염증반응과 암, 비만,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유발인자중의 하나인데 장미꽃 성분이 이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미꽃의 붉은색을 띠게 하는 주성분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다양한 생리활성을 촉진하는 약효를 보유하므로 인체 내에서 생활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장미추출액은 또한 세균이나 곰팡이 균에 뛰어난 항균작용을 보유하여 구강 내 세균억제 효과를 나타내므로 구내염이나 충치예방 등 구강건강 관리목적으로 적용될 뿐만 아니라 항균작용이 식중독균에까지 미치므로 살모넬라균 등에 의한 장내감염 예방에도 유용하다고 보고되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장미 차나 추출액이 갖고 있는 약효는 크게 1) 피부미용에 도움 2) 여성건강 증진 3) 신경안정이나 진정효과 4) 혈액순환이나 혈관 내 노폐물 제거효과 5) 기억력 증진이나 집중력 등 뇌기능 개선 6) 정신적 또는 육체적 피로회복 7) 우수한 항균 및 항염작용에 의한 구강위생보호 및 구취제거효과 등으로 요약된다.
글_김영진 박사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치과·자동차보험 심사위원.
치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