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창립 100주년 기념은 오는 2025년

“일본인이 1921년 세운 조선치과의사회는 치협 기원 아냐”

2020-08-23     김선영 기자

치협은 지난달 21일 제3회 정기이사회에서 협회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TF구성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81년 4월25일 제30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인 1921년10월 2일을 협회 창립일로 정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협회의 기원이 1921년이 아니라1925년 12월 9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치협은 기원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A 원장에 따르면 “현재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기원은 1925년 12월 9일에 창립된 한성치과의사회로부터 시작됐다”며 “한성치과의사회는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에 가담했던 사람 6명이 겹쳐서 그 정신을 계승하기 때문에 치협의 기원은 1925년이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 경우도 우리와 같은 조선의사회가 193*년에 만들어 졌다.
김익남은 한국최초 의사단체인 한국의사연구회를 1908년에 결성해 초대회장을 맡았다. 의사연구회는 당시 재한 일본인들이 결성한 계림의학회에 대항하는 민족단체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의협은 김익남을 한국근대의학의 선구자이자 한국인 최초의 근대식의사로 기억하고1908년을 의협의 기원으로 삼고 창립 100주년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인 토선 함석태(土禪 咸錫泰) 선생은 지난 1912년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1914년 2월에 한국인 최초로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됐다. 그해 6월 서울 삼각정(중구 삼각동) 1번지 옛 제창국자리 동쪽에 치과를 개업했다.
그는 한국인 치과의사들을 규합해 한국인 치과의사만의 조직인 한성치과의사회를 1925년에 설립,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가 치과계에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함석태 선생이 조선의 독립을 위한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함 선생은 안창호 선생을 포함한 많은 독립 운동가를 치료했으며, 독립운동가 강우규열사의 손녀인 강영재를 양녀로 입양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렇기에 기원은 함석태 선생이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라는 것이다.

그의 정신을 기리고자 치협 회관 1층에도 흉상을 제작 설치했다. 조선대에 이어 부산대에도 함석태 선생의흉상이 설치되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자는 일본인
A 원장은 “기원은 정신의 문제다. 우리는일본 사람이 만든 치과의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함석태 선생이 한성치과의사회의 창립이 치협의 기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故 이병태, 신재의 선생이 협회사 편찬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치협의 기원은1921년 조선치과의사회가 아닌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임을 역설해 왔다.
그 이후 꾸준히 이의를 제기해 왔고 치협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상정되지 못했다.

그는 “2010년도에 협회사편찬위원장 신재의 선생과 대한치과의사학회 배광식 회장이 공청회에서 치협의 전신은 1925년 12월 9일한성치과의사회로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치협의 기원이라 주장하는 1921년 창립된 조선치과의사회회장은 나라자키도오요오다. 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일본어를 사용했다. 그들의 국적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고 했다.
이어 ,  “치협의 시조새가 일본말을 하고 일본인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고 성토했다.

故 임경빈 (대한치과의사학회) 명예회장은 “한성치과의사회는 치과의사면허를 획득한 한민족 출신 서구식 치과의사와 경성치과전문학교에서 배출된 한민족 출신 재경 치과의사들을 위주로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발족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치협의 창립 100주년 기념년도는 내년이 아니라 오는 2025년이 돼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한국인 최초 치과의사는 함석태 선생이다. 따라서 일본인이1921년 세운 조선치과의사회가 치협의 기원이 아니라 함석태 선생이 1925년 세운 한성치과의사회가 치협의 기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