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 (9)

2021-02-08     강명신 교수

오래된 책 닥터스 딜레마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여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이제 ‘좋은 의사’, 아홉 번째 시간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강의실에서 토론했던 사례와 비슷한 실제 환자 사례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와 의견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 그 환자의 상태를 학생들이 직접 보고나서 하는 태도와 판단의 변화였죠? 

: 예, 선생님. 더 추가된 정보도 없는데 학생들 생각이 많이 달라진 거라고 하셨는데요. 사실 그 말씀은 완전히 수용하긴 힘들어요. 

: 그건 왜죠? 

: 우선 추가된 정보가 정말 없는가하는 부분이 그래요. 왜냐하면 우리가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토론하는 사례의 기술은 보통 짧은데요. 그 사례와 관련된 상황을 문학에서처럼 충분히 풍부하게 담지를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어쩌면 정보의 종류와 양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 뭐 그럴 수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요? 

: 그리고 두 번째는요, 토론할 때 편을 가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학생들 생각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굳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쉽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것도 일종의 확증편향의 아류라고 할 수 있을까싶긴 한데요 이런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논쟁을 벌일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고 자기의 직관을 굳히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는 거죠. 

: 음,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 책에 보니까 실제 환자의 모습에서 느낀 강력한 감정이 자신의 도덕적 믿음이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하셨던데요. 

: 그렇게 봤어요. 사실 이렇게 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자문도 해봐야 한다는 취지였지요. 

: 예! 바로 그거죠, 선생님. 그 말씀을 빠뜨리셨으면 제가 당장 반박했을 거에요. 

: 흐흐. 감정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그르치는 일은 또 막아야 하니까요. 

: 예, 맞습니다. 또 그런데요 사실 어떤 사례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 말은 반대편을 완전히 반박해내고 내 의견을 완전히 주장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었을 수 있다는 겁니다. 

: 그렇게도 볼 수 있죠, 사실 우리가 그런 부분도 사례토론의 이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반대편 의견도 직접 듣고 보면 일리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요. 

: 예. 그리고 학자들끼리 늘 물고 늘어지는 감정이나 이성이냐 하는 그 대결구도로 몰고 가는 것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은 들어요. 

: 하하, 그래요. 이렇게 정리해보죠. 첫째, 최선의 결정은 사례의 직접 당사자들의 판단을 왜곡할 수 있는 감정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윤리적 판단에 의미가 있는 요인들에 기초해서 냉엄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예, 그리고요? 

: 그렇지만, 사례에 직접 연관되는 당사자들의 감정도 윤리적 판단에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비극적 상황을 둘러싼 요인 중에서 합리성과 무관하다고 치부하고 충분한 비중을 두지 않아서 불합리성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거죠.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