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11)
강: 오늘은 ‘좋은 의사’,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번에는, 의사가 환자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환자를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수술적 치료에서 그 필요성이 두드러진다는 말씀을 하시던 중이었어요.
샘: 그래요, 외과의사가 자신이 집도하게 될, 수술대 위의 환자와 감정적으로 동일시하는 경우는 없겠죠? 그러니 수술로부터 혹은 수술 중에 생길 수 있는 자연발생적인 동정 내지 공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은 수술을 잘 하기 위한 기제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강: 일정 정도의 초연은 의사의 전문화과정의 필연적 결과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샘: 부분적으로라도 거리를 두지 않고서야 자기가 속하고자 하는 전문직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했을까 의문입니다.
강: 그런데 이런 처신에도 대가가 따른다는 내용으로 넘어가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샘: 그렇죠, 이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또 계속 좋지만은 않아요. 생각해보세요, 초연의 기제를 유익하게 활용해서 지내고 있는 의사에게 수술실 문을 나가면서부터는 환자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강: 기대가 불가능할 것도 없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동론까지 거론하시면서 강하게 주장을 하셨더라고요.
샘: 스스로 채택한 행동이 패턴이 되고 그게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게 되지요. 우리가 평소에 뭘 하고 있느냐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가는” 거죠.
강: 예, 뭐, 그 말씀 자체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샘: 자, 이쪽에는 모든 환자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의사가 있다고 하고, 다른 쪽엔 환자를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의사가 있다고 해봅시다.
강: 예, 저는 양쪽 모두 현실에서 가능한 상태의 의사인가 의문입니다만, 일단 그렇게 가정하시고 어떤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샘: 하하, 그리 생각하는군요. 내 말은 이겁니다. 행동 패턴이 그렇게 다른 쪽으로 잡혀있는 의사 둘을 가정해보자고요. 도대체 어느 쪽이 임상 일에서 더 성공적일 수 있을까요?
강: 그렇게 판을 짜시니까 인격 문제는 차치하고 그냥 좀 길게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길게 보면 전자와 같이 하게 되면 일이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고 후자와 같은 경우는 안 그런가하면 그렇게 억압하다가 한꺼번에 스트레스가 폭발하거나 하지 않을까 싶어요.
샘: 그래서 어느 쪽도 임상 일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요. 답을 피하는 겁니까?
강: 그냥 지금 생각이 그렇게 들어요, 선생님. 그리고, 제 생각엔 그렇게 패턴이 가는 것이 애초에 자신의 성격에 반한 것인지 아니면 성격에 맞는 쪽으로 한 것인지, 이 문제도 중요할 것 같고요. 말이 이렇게 까지 옆길로 새어서 말씀인데, 맞는 일을 해야 하고, 일의 방식도 가능한 선에서 자신의 일을 오래할 수 있도록 맞추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