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16)

2021-04-15     강명신 교수

오래된 책 <Doctor's Dilemma>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해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 : ‘좋은 의사’ 열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학생이 입원환자 경험을 해 보게 하는 것을 제안하셨고 또 그게 어려우면 필름을 보고 토론하는 것도 말씀하셨어요. 

샘 : 맞아요. 의대에서 제작한 내가 말한 그 영상은 다큐멘터리인데다 또 한 편의 훌륭한 드라마에요. 하나의 예술작품이죠. 

강 : 네에. 그 영상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하시니까 더 비장하게 느껴지고 그 환자분의 행보에 반응하고 돕고 하셨을 분들도 그려지고 그러네요. 

샘 : 직접 보면 사실 그 상황이 생생하게 사로잡기 때문에 말이 안 나오죠.

강 : 예에, 선생님. 학생들이 그런 영상을 보면서 그 등장인물의 경험을 시뮬레이션 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기대하시는 대로 환자의 관점에 대한 이해나 인식은 물론 의사의 일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한다는 말씀이죠? 

샘 : 그렇죠. 의사로서 어떻게 환자를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 대한 이해, 질병의 현상학이라고 할까요? 그걸 짚어주는 문건이나 작품의 계보는 풍부해요. 

강 : 예. 책에 보니까 몇몇 작품에 나오는 대목을 소개하시면서 그런 자료를 학생들에게 노출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셨지만 그 후로 많이 변했어요. 제가 90년대 중후반 대학원 시절에 읽은 미국 의대의 교육과정에 대한 글을 통해서 ‘문학’ 과목이 의료인문학 관련 선택교과목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 걸 봤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이 분야 학회도 학술지도 있고요. 선생님이 이 책에서 그런 걸 도입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하셨던 걸 지금 보니까 사실 그 후로 교육에 이런 저런 개혁 논의가 많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샘 : 그렇긴 하죠? 

강 : ‘Patient Care Techniques’라는 1975년 Dorothy J. Hicks의 책에서 일부 인용하신 게 있어서 그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안 보였어요. 하여간 선생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은 이 책이 의사 이외의 직역을 위한 책인데 세실의 내과 교과서를 포함해서 클래식한 의학교과서들에서는 질병에 대한 환자의 반응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찾아봐도 헛수고다, 그런 게 없더라, 이 말씀이셨죠? 

샘 : 뭐, 그 때 내 요지는 그거였죠.

강 : 현대의학의 패러다임이 과학적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그것에 대한 과학적인 치료에 중점을 두는 것이니 환자가 질병에 대해 정서적으로나 행동으로 어떤 반응을 하는가와 같은 내용이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연일 쏟아져 나오는 과학적 지식만 정리해서 넣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샘 : 그래요. 우리 이제 내가 인용한 힉스 책 내용부터 좀 볼까요.

강 : 예. 인용하신 다섯 문단 중에서 첫째 문단은 질병경험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인데요. 사람은 질병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 위협에 대해 환자의 행동 반응은 애도와 연관되는 행동과 유사한데 애도는 부정, 분노, 슬픔-우울, 그리고 수용의 네 단계를 거친다고 돼 있네요. 

샘 : 퀴블러 로스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