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얼마나 처방할 것인가?
강명신 교수의 New York Times 읽기
노인 대상 암치료에 의료진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미국 의료서비스 연구가 있었다. 노인들이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경우를 놓치는 이유중에는 노년층이 항암제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하는 일이 적다는 것도 있다. 안전한 항암제 용량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상시험에 남성이 주로 참여하다보니 여성에서 약물 반응이 어떤지는 시판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1월 말 뉴욕 타임스에는 여성에게 적정한 약물 용량이 남성과 다르다는 기사가 실렸다.
수면제는 8시간 수면을 기준으로 만드는데 FDA는 한밤중에 깨는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작용시간이 짧은 신약을 평가하고 있었다. 아침에 약물이 체내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고자 진행한 혈액검사 결과성차가 드러났다. Intermezzo라는 약은 남성에게서 빠르게 대사되는 것이 확인돼서 FDA에서도 남성 3.5mg, 여성 1.75mg으로 허가했다. 이 약제의 활성 성분 zolpidem은 Ambien 등 다른 수면보조제에도 들어있는데 뒤늦게 FDA가 여성 용량을 반으로 줄였다. 미국 국립보건원 닥터 제닌 클레이튼(Janine Clayton)은 수면제뿐 아니라 여러 약제에서 여성의 약물반응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는 많은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고 지적한다.
1993년까지 미국에서는 가임기여성의 임상시험을 금지했다. 당시에는 아스피린까지도 적응증이 되는 여성에게 효과가 있을지 의혹을 받았다고 한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시장에서 사라진 10개 약제중 8가지는 여성에게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 미국 회계감사국(GeneralAccounting Office) 후신인 의회 산하에 있는 연방정부책임국(GovernmentAccountability Office)의 조사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항히스타민 제제 Seldane이나 위장관계 약물 Propulsid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심부정맥을 일으켰다. 클레이튼 박사는 현재 시판되는 약이 여성에게서 이런 부정맥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많다고 한다. 항생제나 정신과 약물, 말라리아 약, 콜레스테롤 저하제등이 그렇다.
이게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여성이 남성보다 약제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약물 대사가 다른 이유는 체구가 남성보다 작을 뿐 아니라 체지방 비율이 높고 호르몬 변동과 생리주기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약제의 친수성, 친유성 여부 외에도 간 대사나신장 기능, 특정 위 효소에도 성차가 있다고 한다. 경구 피임약이나 호르몬 대체요법 제제 등이 더해지면 더 복잡해진다.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전 약물개발 초기부터 성차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조지타운대 ‘건강노화질병의 성차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Sex Differences in Health, Aging and Disease)’ Kathryn Sandberg 소장은 “신약개발 경로의 시작은 동물모델을 가지고 기초과학 연구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연구자 90%가 수컷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1993년에 FDA가 내놓은 지침에서도 약물개발 초기에 성차에 대해 연구하고 임상시험결과도 성차가 있는지 분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는 기껏해야 10~15명 피험자를 대상으로 연구하면서 성차를 끄집어내기는 어렵다는 말도 한다.
과거보다는 많은 여성이 임상시험에 참여한다고 해도 심장이나 신장 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나 암 연구에서는 여전히 여성 피험자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다이아제팜의 성별 연령에 따른 약물 동태학에 관한 연구가 1981년 학술지에 등장한 이후로 임상약학이나 각 전문분과학회지에 약물의성차에 대한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약물동태학적으로는 저체중, 느린 위장관운동, 낮은 장내효소 활성·신장 사구체 여과율 등이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약력학적으로는 베타 블로커나 아편계 약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전형적인정신과 약물에 민감도가 높고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공저로 약물 작용 성차 리뷰 논문을 2009년 미국가정의학회지에 실은 웨슬리 린제이(Wesley Lindey) 박사는 예의 논문에서 약물유해반응을 겪을 가능성이 남성보다 여성이 50~75% 더 높다고 적고 있다.
이쯤 되면 의약품안전과 관련해서는 성별을 그저 일개 독립변수로 볼 것이 아니다.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다.보건학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조교수로재직 중이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의학 관련 기사를 통해 미디어가 의학을 다루는시선을 탐색하는 글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생명윤리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