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 (17)
오래된 책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해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 ‘좋은 의사’, 열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질병위협을 받은 환자의 행 반응의 단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려던 참이었어요.
샘: 그래요, 힉스의 책 이야길 하던 중이었죠. 힉스는 그 단계를 알아차리는 것도 어렵고, 단계별로 보이는 환자의 행동에서 전문가가 어떻게 도와야하는지를 알기가 아주 어렵다고 말합니다.
강: 예, 선생님. 그 단계 단계마다 환자가 보이는 감정표출이나 행동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분, 제가 선생님 책에서 눈여겨 봤어요. 예전에 퀴블러 로스 살펴볼 때 보니까 단계가 겹치기도 하고 예전 단 계로 다시 가기도 한다고 하고요.
샘: 그건 그렇죠. 우선 첫 단계로, 자신의 질병을 부정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의 발로인데, 의식적으로 직면할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견디려고 해 서 그러는 것이죠.
강: 예. 질병이 위협하는 상황이 주는 감정적인 충격을 흡수할 시간을 버는 데에 필요한 단계라고 하더라고요.
샘: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상황을 버틸 수 있는, 뭔가 건설적인 행동을 해 볼 여지를 찾게 되죠. 중한 질병이나 심각한 장애에 맞닥뜨렸을 때 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강: 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환자로만이 아니라 인격체로 대 해주고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 정서적인 지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혀있 어요.
샘: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때 분노와 적대감을 보이게 되는데 환자로서도 얼마나 힘든 고통이면 이렇게 하겠어요. 이 단계가 가족이나 의료인들이 가장 힘든 단계가 될 수 있고요.
강: 예. 여러 방향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환자가 왜 그러는지를 알더라도 그걸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또 옆에서도 힘들고요. 또 옆에서 힘든 걸 보고 환자도. . . .
샘: 그래요. 분노가 돌보는 사람, 의료기관, 가족에게로 향할 수 있고 해서 이 단계의 환자는 돌보는 입장에서도 특히 힘들다고 합니다. 때론, 이 단계에서 상충되는 요구를 한다고 합니다.
강: 삶, 인생 계획, 미래의 삶을 가로막은 그 질병 때문에 분노하는 건데, 결국은
샘: 내가 책에 전문을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다음은 슬픔인데 상실을 인식하고 나서 받아들이고 나서 보이는 반응이죠. 조용해지고 더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 수도 있지만, 슬픔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울거나 지난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이런 행동은 그래도 많이 추슬러서 보이는 반응이라고 합니다.
강: 네. 도무지 그러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조용한, 깊은 슬픔에 머물 수밖 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 . . 선생님 책에 그 다음 대목에서는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인용하셨는데 힉스 책은 오래도 되고 몰랐던 책이지만, 제가 아직도 못 읽어봤어요. 이번엔 꼭 좀 봐야겠어요! 의학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던 대학동기 생각도 나서요. 저도 나중에 의학도서 관문학코너도 가 보게 되었었죠.
그렇다고 많이 찾아 읽지도 못했지만요. 에휴, 갑자기 또 제가 옆으로 샜네요. 사실 그 동기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거든요. 여름 저녁 학교교회앞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 나눈 기억도 나는데, 그 즈음이 그 동기생일이라고 했던 기억도 나는데. 무더운 여름. 아이고, 옆길로 샜는데 지금 너무 여러 가지 생각이 나네요, 여러 생각이.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