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 (18)
오래된 책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해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 : ‘좋은 의사’ 열여덟째 시간입니다. 질병위협에 대한 환자의 행동반응에 대해 살펴봤어요.
샘 : 힉스의 책이었죠. 솔제니친의 「암병동」에서 주인공 파벨 니콜라예비치 루사노프가 입원한 첫날에 대해 인용한 건 봤어요?
강 : 예, 보니까 1부 2장 ‘학문은 지혜를 안 준다’에서 인용하셨더라고요. 루사노프의 주치의 돈초바가 지체 없이 치료해야 한다고 해서 입원에 동의했던 걸 후회하는 대목이요. 저녁때까지 치료는커녕 아무도 진찰하러 오지도 않아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없어했죠. 인용하신 부분 다음 대목에는 최대한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집과 가족, 나중엔 국가적인 일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라디오가 병실에도 복도에도 없다고 하면서 <프라우다>만이라도 확보해서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요.
샘 : 내가 다음으로 인용한 건 입원가운이 환자의 심리에 주는 영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강 : 예, 그거 봤어요. 전지적 시점에서 묘사한 모습이었어요. 세탁은 됐는데 낡은 무명환자복이 워낙 재단이 아무렇게나 된 거라서 볼품없는 부대나 다름없어 보인다고 하고 있어요. 여성 환자복이 그러한데 여성들도 그걸 의식하고 있는지 무명띠로 어떻게든 잘 여미고 있으려 한다고요. 그나마 남자 환자는 분홍과 흰색 줄무늬 자켓을 가운 위에 입으니 좀 나은 편이라고 하면서요. 그리고요 선생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서 찾은 건데요(「암병동」 동원 옮김, 신영출판사 1987년 출간). 인용하신 부분에서 조금 뒤로 가면 의사와 간호사의 흰 가운이 주는 심리적 영향이 축약돼서 잘 나오는 대목이 있어요.
샘 : 아, 그래요? 어디 들어봅시다.
강 : ‘흰 가운을 입은 사람 몇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환자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경계심과 공포감과 희망이 밀물처럼 솟아오르곤 했다. 이 세 가지 감정은 흰 가운이나 모자가 희면 흴수록 얼굴의 표정이 엄숙하면 엄숙할수록 더욱더 강해졌다.’ 이렇게 돼 있어요.
샘 : 그렇군요.
강 : 그런 이야기들에 이어지는 1부 5장 ‘의사의 불안’을 슬쩍 보니까 루사노프의 주치의인 돈초바가 50대인데 이들이 가르치면서 같이 일하는 20대 의사들 중 한 명인 긴가르트의 시선으로 불안을 묘사하고 있어요. 이 암병동 자체가 악명 높은 곳인가 봐요. 고위층이나 그 측근의 입원 때 일도 없었는데 괜히 의심을 받아 뒷감당을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나와요. 의료진은 환자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미소로 잘 대하고 기분도 북돋아주려고 하는데 거의 모든 환자들로부터 자기들을 독살하려는 건 아니냐고 하는 듯한 시선을 받는다고요. 실험에 희생되는 건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요. 수술로 떼어낸 조직을 내놓으라고 하는 일도 있는데 이런 일은 돈을 뜯어내거나 법원에 고소를 하려는 속셈이라고 하네요.
샘 : 그렇군요. 이번 참에 그 책을 독파할 모양이로군요.
강 : 예! 근데 선생님, 힉스 책이나 솔제니친의 이 소설을 인용하시고는 좋은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이 환자의 관점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인데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하셨어요.
샘 : 의료의 도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고심이 좀 필요하니까요!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