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치과 천연물(65)
평양지모(平壤知母. 영문명; Haemodoraceae)
옛날에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무료로 돌봐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늙어 거동이 점점 불편해졌다.
할머니는 착한 마음으로 남을 돕는 이에게 자신만이 아는 약초의 비밀을 전수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양아들이 되어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찾아왔지만 모두 할머니의 약초에 대한 비방만을 탐낼 뿐 진정하게 보살펴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마치 어머니처럼 모시는 척하다가 좀처럼 약초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자 화를 내며 떠나버리기 일쑤였다. 눈보라 치던 추운 어느 겨울날 할머니는 혼자서 밖에 나왔다가 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길을 지나가던 한 나무꾼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집으로 모시고 가서 아내와 함께 정성껏 간호했다.
덕분에 기력을 차린 할머니는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할머니가 혼자 지내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부부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어머니처럼 모시고 같이 살겠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나무꾼 부부는 진심으로 어머니처럼 효도하며 지냈다. 나무꾼의 됨됨이를 보고 감동한 할머니는 자신을 어느 산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무꾼은 할머니를 업고 능선을 따라 잎이 가늘고 연보랏빛 꽃대가 긴 풀이 무성히 나 있는 곳에 다다랐다. 거기서 할머니는 그 약초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 약초는 몸 안에서 진이 나오게 해서 진기가 부족해 생기는 열병과 기침, 가래뿐만 아니라 배 아픈 병까지도 고치는 보물 같은 약이란다.
이 비방을 활용하여 널리 선행을 베풀도록 해라!’ 이후 나무꾼은 할머니의 깊은 뜻을 이어받아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았고 그 약초의 이름을 ‘어미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뜻인 지모(知母)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모는 백합과(Liliaceae) 지모 속(genus Anemarrhena)에 속하는 외떡잎식물 단일종인 지모의 뿌리줄기이다. 그리스어로 ‘지모’의 고유 명칭은 '아네메라네(Anemarrhena)'라고 부르는데 이는 '강하다'라는 의미의 ‘arrhen’과 ‘바람’을 호칭하는 ‘아네모스(ananemos)‘가 합쳐진 단어로 '바람에 강한 식물'이라고 풀이된다.
지모는 북한의 황해도나 평안남도 등지의 낮은 산이나 들에서 많이 서식하는데 특히 그 지역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평양 지모(平壤知母)라 부른다. 평양 지모는 일반 지모와 달리 꽃이 2 가화로 꽃 밥과 수술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화피 조각이 유합 된 지역적 특산식물로 알려졌으나 화피 내부에 특정한 균이 침입하여 발생되는 일종의 ‘기형 종’으로 밝혀졌다.
지모의 황갈색 뿌리줄기는 짧고 굵으며, 잘라보면 속은 담황색을 띤다. 새싹은 뿌리줄기가 뻗어나가면서 끝부분에 형성된다. 잎은 가느다란 줄 모양이고 길이가 20~70cm 정도다, 꽃은 6~7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피며, 뿌리에서 나온 높이 60~90cm의 꽃줄기에 마디마다 잎이 2~3개씩 달린다. 꽃부리는 좁은 통 모양으로 길이 7~8mm, 끝은 6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이며 장타원형의 3실로 각 실마다 씨가 1개씩 들어 있다. 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뻗으며 끝에서 잎이 뭉쳐난다. 지모 뿌리의 추출물은 약간 단맛이 띠며 새순은 나물로 먹고 잔뿌리를 제거한 뿌리줄기를 해열 및 항균제로 약용한다.
현재까지 지모에서는 모두 108개 이상의 성분 또는 유기화합물이 분리되었다. 약리학적 유효성분으로 아스 포닌(Asphonin), 살사 사포 게닌(Sarsasapogenin), 말도 게닌(mardogenin) 등이 함유되어 있다.
굵은 뿌리인 근경(根莖)에는 총 6종류의 Saponin 약 6% 외에도 다량의 환원당, 점액질, 탄닌산, 지방유 등과 함께 Mangiferin(MGF)과 Isomangiferin 0.7%가 함유되며 기타 Timosaponin B-II, Timosaponin AIII, Neomangiferin 등의 성분도 검출되었다.
지모의 Saponin계열을 중심으로 한 성분 연구와 Norlignan계열의 활성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지모의 약효를 검증하기 위한 동물실험 결과 진정효과와 소염 및 해열작용이 현저하여 장기간 지속되는 만성혹은 소모성 질환으로 인한 발열 증상의 개선 효능이 뛰어났다. 또한 항균력 측정 결과 복통과 설사를 유발하는 적리균, 티푸스균, 파라티푸스균, 대장균, 그리고 기침과 해소, 발열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폐렴구균 등에 대해 강력한 항균작용을 보였다.
이러한 항염증및 항균작용과 함께 지모에 함유된 Anemarrhenasaponin Ia, Timosaponin I, Ia, BI, BII, BIII, E1, E2 및 Anemarsaponin B에 의한 혈액의 항응고작용이 보고되었다. 이러한 항응고 성분이 정맥 내피세포의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혈압강하 효과도 나타낸다.
또한 혈당강하와 관련된 지모의 ‘항당뇨기전’ 연구에 의하면 지모의 에탄올 추출물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면서 지방세포(Adipocytes)의 염증반응을 억제함으로써 ’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켜 항당뇨 효과를 발현한다고 보고됐다
지모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진정효과는 ‘무스카린 수용체’ 밀도를 증가시켜 콜린성 신경퇴행의 진행을 억제함으로써 나타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지모의 성분 중 Timosaponin AIII(TAIII)와 Timosaponin BII(TBII)는 이러한 작용으로 기억력을 높이고 학습기능을 향상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지모 성분 중 Mangiferin(MGF)가 보유하는 신경보호 활성에 의한 콜린성 기억손상(long-term cholinergic memory deficits)에 대한 개선 효과도 확인되었다.
또한 지모에 함유된 Diosgenin, Sarsasapogenin, TAIII, SAaB, Mangiferin의 DPPH 자유라디칼과 ABTS 자유라디칼 및 과산화수소를 소거하는 ‘항산화 효과’에 의한 항암작용도 보고되었다. 자유라디칼의 생성과 활성을 억제하는 지모의 항암효과는 Tyrosinase, TRP-2 및 MITF의 활성 억제를 통해 나타난다.
이에 따라 지모 추출물은 용량 의존적으로 MCF-7 인간 유방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했으며 특히 지모의 아세트산에틸 분획은 MCF-7 세포에 대한 특이적 세포독성을 유발하여 유방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권오준, 이하영’ 등은 ‘지모 추출물의 항산화 및 pancreatic lipase 저해활성평가 연구’에서 지모를 70% methanol로 침지시켜 추출물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이를 n-hexane, EtOAc및 n-BuOH로 순차적 용매 분획하여 얻어진 결과물에 대해 DPPH, ABTS+ radical 소거능과 pancreatic lipase 저해 활성을 평가하였다.
DPPH 라디칼 소거능은 페놀성 화합물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n-BuOH층의 1000mg/ml 시험농도에서 91.2%의 라디칼 소거능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지모 추출물에 존재하는 페놀성 화합물의 라디칼 소거능을 표시한다.
동시에 지모 추출물의 ABTS+라디칼 소거능은 EtOAc층이 IC 50=20.5±1.7mg/ml, n-BuOH층에서는 IC 50=50.7±07mg/ml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지모 추출물이 인체 세포의 항산화 과정에서 강력한 활성물질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리고 Pancreatic lipase 저해활성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EtOAc층에서 IC 50-31.3±0.1mg/ml 저해율로 비교적 강력한 ABTS+라디칼 소거능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이윤주, 송 바름’등이 ‘지모 뿌리 추출물과 분획물의 항균활성 연구’에서 Agar diffusion test를 통해 지모 뿌리 추출물의 항균활성을 확인한 결과 호기성 그람 양성균주인 S. aureus에 대해 지모추출물을 적용한 모든 분획에서 저해환을 나타냄으로써 에틸아세테이트 분획물이 대조군으로 사용된 메틸파라벤 경우에서보다 더 높은 항균활성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최소 저해 농도(MIC)와 최소 사멸 농도(MBC/MFC)를 통해 더 정확한 지모뿌리 추출물의 항균활성을 확인한 결과 곰팡이균인 A. niger를 제외한 모든 균주에서 바람직한 MIC 농도가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호기성 그람음성균 주인 P. aeruginosa, 그리고 진균류인 C. albicans의 경우, 에틸아세테이트 분획과 아글리콘 분획물의 낮은 농도에서 거의 모든 균주가 저해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와 같이 지모 추출물은 항균효과와 항산화 효과, 항염증 작용을 보유하여 구내염, 구강궤양 또는 인후염 등을 완화시키므로 치약이나 구강용제제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세더니(Sederma)’사의 지모 추출물 화장품 제제인 ‘보르피린(Volufiline)’은 인체 내의 호르몬 활성에 이상을 일으키지 않는 ‘천연 피토스테롤’ 피부 용제로써 일명 ‘바르는 보톡스’로 알려져 있다.
김영진 박사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치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