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그린] 인간본성의 법칙 (19)

인간본성의 열쇠 |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2022-02-20     로버트그린

마치 두 번째 자아가 바로 옆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하나는 분별있고 이성적인 자아, 다른 하나는 꼴통 짓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렇지만 가끔은 너무나 재미난 자아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재미난 일을 몹시도 저지르고 싶어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이유는 모른다. 마치 내가 내 뜻을 거스르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데도 자꾸만 저지르고 싶어진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미성년》 중에서

 

인간본성의 열쇠 |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살다가 뭔가 잘못되면 우리는 자연히 원인을 찾는다. 내 계획이 왜 어그러졌고 내가 낸 아이디어가 왜 돌연 반대에 부딪혔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몹시 괴롭 고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찾을 때 우리는 매번 같은 유형의 설명을 맴도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이 나를 싫어해서 일부러 훼방을 놓았 다거나 정부나 사회적 관습처럼 나를 방해하는 거대한 반대 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는 누가 나에게 잘못된 조언을 줘서, 내게 정보를 감춰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죄다 내가 운이 없어서 아니면 불운한 환경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우리의 무력감을 강조하는 설명법이다. ‘달리 내게 무슨 수가 있었겠어? X가 그렇게 더러운 술수를 쓸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내용도 다소 모호하다. 타인의 악의적 행동을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단순한 짐작이거나 상상일 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우리의 감정(분노, 좌절, 우울)을 오히려 더 고조시키고, 그러면 우리는 그 속에 풍덩 빠져 자기연민을 느낀다.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눈에 띄는 우리의 첫 반응은 원인을 찾아 외부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 뭐 나도 벌어진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나 반대세력이 내게 발을 걸어 넘어 뜨린 거야.’ 이런 반응은 인간이라는 동물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다. 옛날에는 신이나 악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은 사뭇 다르다. 분명 어딘가에서 어떤 개인이나 거대한 세력이 끊 임없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길을 잘못들게 되는, 그래서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의 뿌리 깊은 ‘비이성적 성향’이다.

우리 마음에서 정확히 감정이 지배하는 부분 말이다. 이 성향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맹점 같은 것이랄까. 그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2008년 금융위기사태였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마치 인간의 비이성적 성향을 종류별로 모두 집대성해 놓은 것 같은 사례였다.

금융위기사태가 일단락되자 미디어에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흔하디 흔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무역 불균형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2000년대 초반 저금리 대출 시대를 열었고 그게 과도한 레버리지(leverage 차입금을 지렛대처럼 사용해 적은 자기 자본으로 큰 수익을 내는 것. - 옮긴이)로 이어졌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