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치과천연물(75)
라벤더(Lavender)
오래전, 서양에서 어느 나라의 공주가 인접한 다른 나라 왕자를 흠모했다. 공주는 남몰래 사모하는 마음만 간직해오다 더는 참지 못하고 왕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왕자가 지나가는 접경지역의 길목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마침내 왕자 일행이 말을 타고 공주 앞을 지나갈 때 공주는 과감하게 왕자 앞에 나아가 신분을 밝히고 사랑을 고백했지만 왕자는 미소를 지으며 공주에게 가벼운 입맞춤만 해주고는 그냥 가버렸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에도 왕자는 공주를 부드럽게 반기며 호감을 보였지만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공주의 간절한 호소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초조해진 공주는 왕자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답을 듣지 못해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자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 소식에 놀란 공주는 왕자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만나 멀리 떠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왕자는 미소를 지으며 입맞춤만 해 주고는 떠나버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비록 왕자의 나라가 이겼지만 왕자는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여기에 숨겨진 가슴 아픈 진실은 왕자 역시 공주를 사랑했지만 원래 말을 못하는 벙어리여서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공주는 크나큰 슬픔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나중에 공주의 무덤에서 향기로운 라벤더 꽃이 피어났다. 이와 같은 사연으로 인해 라벤더 꽃의 ‘꽃말’을 ‘침묵’이라고 붙였다고 전해진다.
라벤더(영어: lavendula 또는 lavender)는 쌍떡잎식물 중 통 화식 물목(目) 꿀풀과(科) 라반 둘라 속(屬)의 상록(常祿) 여러해살이풀로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다. 봄에 보라색이나 흰색 또는 분홍색의 꽃이 핀다. 기다란 꽃대 위에 보라색의 작고 기다란 타원형의 꽃망울들이 옹기종기 매달려서 마치 이삭과 같은 꼴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 색으로서 ‘라벤더색’이라 할 때는 ‘연보라색’을 의미한다.
햇볕에 잘 드는 서늘한 날씨, 배수가 잘되고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라며 반 내한성(耐寒性)으로 추위에는 다소 강한 편이어서 우리나라 기후에서도 한번 심으면 10년은 계속하여 수확할 수 있다. 6~8월에 꽃이 피는데 꽃에서 나는 향기가 파리나 해충을 쫓는다. 잎이 마르면 더 향기가 짙어지며 오래 지속된다.
라벤더를 수확할 때는 꽃대를 가지 채 잘라 건조하는데 자를 때 꽃대 밑으로 잎이 3~4장 있는 곳에서 자른다. 꽃, 잎, 줄기 모두에 향기를 뿜는 정유가 함유되어 있다. 꽃뿐만 아니라 잎의 하얀 잔털 사이에도 정유의 원천인 기름샘이 있어 비록 건조되더라도 라벤더 고유의 향기를 오래도록 풍기게 한다.
라벤더는 2500년 전부터 사용되어 온 식물이다. 라벤더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시대에 목욕을 할 때 라벤더를 기지 째 욕조에 넣고 향기로운 목욕을 줄긴 연유로 라틴어의 '씻다'라는 동사 라벤듈라(Lavandula)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사람들은 목욕이나 세탁 시에 이토록 강한 향기를 가진 라벤더를 물에 넣는 것을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라벤더 꽃을 갈거나 즙으로 향수를 만들고 가지와 잎을 태워서 향료를 얻기도 했다. 그들은 라벤더의 향을 심신을 안정시키는 진정제나 수면유도제 등 약용으로도 이용하고 잡귀를 내쫓는 주술적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라벤더의 향을 추출할 땐 증기 추출법 혹은 용매추출법을 사용하는데, 증기 추출법으로 얻어진 오일은 무색 혹은 아주 옅은 노란색이며 용매추출법으로 얻어진 오일은 어두운 녹색을 띤다.
라벤더 오일에는 아세트산 리날릴, 텔 피넨-4, 캄퍼, 리날올, 시스 오시멘, 라반 둘릴 아세테이트, 게라니올, 시네올, 리모넨을 비롯한 150여 가지의 유기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성분들은 경련을 억제하면서 진정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정신적 안정과 함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불면증 예방 효과도 있다. 취침 전 욕조에 라벤더 오일을 한 방울 떨어뜨려 목욕하거나 베개에 묻히고 자면 숙면을 취하는 데 큰 도움 된다.
라벤더의 향은 플로랄(floral)+허벌(herbal)의 혼합형 향이며 부드러우면서도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라벤더 향을 설명할 때는 원목 향+꽃향기, 혹은 꽃향기+허브 계통의 풀냄새 느낌이 난다고 설명되며 예로부터 깨끗한 향의 대명사라고 불리었다. 이처럼 라벤더 향은 청결한 이미지가 강할 뿐만 아니라 곰팡이류를 제거하고 살충, 살균 및 항 염증 작용도 발휘한다. 따라서 향수와 각종 약물, 화장실 방향제, 차량 방향제, 세정제로도 활용된다.
서울산업대학교 자연생명과학대학 안유진, 강명규 등의 ‘라벤더 추출물 항산화 활성과 성분분석’ 에서 라벤더 추출물과 발효 추출물의 항산화, 성분분석 및 tyrosinase저해 효과를 연구한 결과 추출물의 free radical (1,1-diphenyl-2-picrylhydrazyl, DPPH) 소거 활성(FSC50)은 발효 추출물의 ethyl acetate분획(1.45 µg/mL)에서 가장 큰 활성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했다. 즉 라벤더 추출물과 발효 추출물에 대하여 rose-bengal로 증감된 사람 적혈구의 광 용혈에 대한 억제 효과 측정 결과 농도 의존적(1 ~ 50 µg/mL)으로 세포 보호 효과를 나타냈던 것이다. 이는 라벤더 추출물 및 발효 추출물들이 O2 혹은 다른 ROS를 소거하여 세포막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 김아영, 하지훈 등의 ‘라벤더 추출물 및 분획물의 세포 보호 효과와 활성성분 분석’ 연구에 의하면 라벤더 추출물 및 분획물에 포함된 성분들을 분석하기 위해 순상 TLC 및 LC-MS를 이용한 결과 분리된 에틸아세테이트 및 아글리콘 성분들 중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5개의 띠(A1-5)를 채득하고 100% 에탄올로 추출하고 농축하였다.
농축된 5개의 분획들에 포함된 성분들은 LC-MS를 이용하여 λmax (nm)와 [M-H]-(m/z), [M+H]+(m/z)을 측정했으며 각 스탠더드 성분들과 TLC, LC 위치 및 UV흡광 스펙트럼을 비교하여 확인하였다. 그 결과 A1(luteolin-7-O-glucuronide), A2 (vitexin), A3(rosmarinic acid), A4(luteolin), A5(apigenin)가 확인되었다. 에틸아세테이트 분획이 아글리콘화 되면서 rosmarinic acid 및 luteolin-7-O-glucuronide가 감소하였고 luteolin은 소폭 증가하였다.
Vitexin은 apigenine과 glucose가 결합된 배당체이지만, 탄소-탄소 결합으로 연결되어 있어 가수분해가 되지 않아 apigenin은 증가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라벤더의 주요 플라보노이드인 luteolin 및 apigenin은 아글리콘화 과정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기타 성분들의 전환이 항산화 및 세포 보호 효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라벤더 70% 에탄올 추출물 및 분획물의 항산화 활성과 세포 보호 효과를 조사한 관련 연구에서 자유라디칼(DPPH) 소거 활성(FSC50)은 라벤더 추출물, 에틸아세테이트 및 아글리콘 분획에서 각각 46.6, 45.5 및 477.5μg/mL로 나타났다. Fe3+−EDTA/H2 O2 계에서의 총 항산화능(OSC50)은 라벤더 추출물, 에틸아세테이트 및 아글리콘 분획에서 각각 8.1, 3.3 및 17.6μg/mL이었으며, L-ascorbic acid의 OSC50 (1.5μg/mL) 보다 낮은 활성을 나타냈다
적혈구 광용혈 실험에서 아글리콘 분획은 매우 큰 세포 보호 활성을 나타냈다.
그리고 라벤더 추출물 및 분획들의 자유라디칼 소거활성 결과를 지용성 항산화제로 알려진 (+)-α-Tocopherol과 비교하였다. 라벤더 꽃 70% 에탄올 추출물, 에틸아세테이트 분획 및 아글리콘 분획의 자유라디칼 소거 활성은 각각 46.6, 45.5 및 477.5 µg/mL로 나타났으며 (+)-α-Tocopherol은 9.0 µg/mL로 라벤더 꽃 추출물 및 분획들보다 5배 이상 높은 자유라디칼 소거활성을 나타냈다.
더욱 폭넓은 항산화 활성 평가를 위해 자유라디칼을 포함하여 다양한 활성산소 생성 시스템을 추가적으로 이용하였다. 그 결과 라벤더 아글리콘 분획은(+)-α-tocopherol보다 3.8배나 높은 세포 보호 효과를 보였다. 그 외에도 TLC 및 LC-MS를 이용하여 라벤더 분획의 성분(luteolin 7-O-glucuronide, vitextin, rosmarinic acid, luteolin, apigenin)을 확인하였는데 아글리콘 분획은 에틸아세테이트 분획에 비해 주요 플라보노이드(luteolin, apigenin)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라벤더가 항산화 약물소재로써 적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라벤더는 남자어린이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작용을 방해하거나 임신부의 황체호르몬을 자극하는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미국의 동물학대 방지기구인 ‘ASPCA’에서는 라벤더를 개나 고양이에게 독성이 있는 식물로 지정하고 있어서 주의를 요한다.
라벤더 향기가 치과환자들의 불안감을 완화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치과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성인 환자 340명의 불안수준을 측정한 결과 라벤더 향에 노출된 사람들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치료에 대한 불안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라벤더의 불안감 진정효과는 예정된 치과진료의 유형과 관계없이 나타났다.
김영진 박사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치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