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국원장]의 추천도서(17)
행복의 기원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되는 생각을 자주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지침들은 대부분 그렇다. “불행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을 통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생각이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국문 제목만을 가지고 있다. 애독자의 입장에서 ≪On the origin of happiness≫라는 영문 제목을 선물하고 싶다. 1859년, 만 50세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출판했던 책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에서 따왔다.
다윈은 창조론에 젖어 지내던 세인(世人)들에게 진화론이라는 얼음바구니(ice bucket)를 선사했다. 다윈의 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앗! 차가워!”라는 비명 그 이상이었다.
≪종의 기원≫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생물학계의 프랑스대혁명’이랄까. 저자는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라는 다윈의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행복의 실체를 독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한다.
새해 첫날 많은 이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기꺼이 아침잠을 설친다. 맑은 날씨 덕분에 붉은 태양을 직접 맞이하는 행운을 잡은 사람들은 일출(日出)을 보며 ‘태양도 저렇게 힘차게 떠오르며 나의 새 다짐과 계획을 응원해주는구나’라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어떠한 일이나 현상을 원인, 목적, 계획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관점을 철학에서는 ‘목적론(teleology)’이라고 한다.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하나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 이러한 목적론적 사고의 시조(始祖)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하자면 그는 당대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을 줄여 이르는 말로서, 집안, 성격, 머리, 외모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여러 가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완벽한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였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 최고 중의 최고만을 누리며 살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 아래에서 수학(受學)했으며 후일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다. 이러한 엘리트 코스만을 밟은 탓인지 그의 행복관도 심하게 엘리트주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에 입각한 인생관을 가진 철학자였다. 그는 삶을 ‘특정 가치를 추구하며 그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그는 인간 삶의 최종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다.
그는 먹고(eat), 놀고(play), 사랑(love)하는 등 인간의 많은 행위들의 종점은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그가 내린 행복의 정의를 살펴보면 더욱 더 뚜렷해진다. 그는 행복을 ‘summum bonum'이라 정의했다.
라틴어로 ’summum'은 ‘최고’, 'bonum'은 ‘좋다’라는 뜻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최고의 선(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한 철학자의 사견(私見)일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견해(opinion)와 사실(fact)은 엄연히 다르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이 중세의 다수설(多數說)이자 지배적 견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것처럼.
저자는 총 9장(章,chapter)에 걸쳐 과학적 근거를 무기로 행복에 관한 편견 혹은 잘못된 상식들을 박살낸다. 일본 공수도(空手道,Karate) 고수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던 ‘도장 깨기’의 달인 최배달(본명 최영의,崔永宜)처럼. 각 장의 핵심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첫째, 행복은 생각이 아니다. 즉, 행복은 이성적 사고의 결과물이 아니다. 사랑, 시험, 취업 등에 실패한 직후에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사고)한다고 해서 실제로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둘째, 인간은 100% 동물이다. 인간은 수년 년에 걸쳐 자신이 동물들과 질적으로 다른, 고결하고 기품 있는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는 몽상에 불과하다. 미국 66개 도시의 소비 행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귀한 도시, 즉 남성인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도시일수록 남자들의 과소비가 심하다고 한다. 짝짓기 경쟁이 치열할수록 무리한 지출을 해서라도 이성을 유혹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남초(男超)도시일수록 남자들의 부채율이 높고 카드 빚이 많다(Griskevicius, Tybur, Ackerman, Delton, Roberstson, and White, 2012) Griskevicius, V., Tybur, J. M., Ackerman, J. M., Delton, A. W., Roberstson, T. E., and White, A. E.(2012).1)
The financial consequences of too many men: Sex ratio effects on saving, borrowing, and spend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2, 69-80.
셋째,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피카소는 캔버스에, 베토벤은 악보에 생을 바쳤지만 이러한 예술 행위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림이나 악보가 밥을 먹여주거나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미술, 음악 등 예술적 창작 활동조차 대부분은 짝짓기를 위함이다.
창조자 스스로조차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이는 밀러를 비롯한 저명한 진화심리학자들이 내놓은 최신 연구의 결과이며, 현재 다수 학자들의 지지를 받는 학계의 통설(通說)이다(Kenrick and Griskevicius, 2013) Kenrick, D. T., and Griskevicius, V.(2013) 2)The rational animal: How evolution made us smarter and we think, New York, NY: Basic Books.
실제로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긴 다작(多作) 화가 피카소는 특정 시기에 몰아서 많은 작품을 생산했다. 그는 ‘만화 공장장’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김성모 화백이 울고 갈 정도의 벼락치기, 몰아치기의 달인이었다. 피카소의 예술적 영감과 창의력이 폭발했던 시기는 그의 삶에 새로운 여인들이 등장했던 시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창의성과 로맨스의 시너지효과(synergic effect)는 비단 피카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테, 살바도르 달리, 구스타프 클림트, 일반인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대학교 농구코트 근처에 여학생이 출몰하면 농구하는 남학생들이 모두 마이클 조던인 양 행동하는 것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넷째, 인간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과 번식 때문이다. 모든 동물들은 뇌의 특정부위를 자극하면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특정부위를 쾌감센터(pleasant center)라고 한다. 주로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가 이 역할을 수행한다. 뇌는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제시되었을 때 쾌감을, 불리한 조건이 제시되었을 때 불쾌감을 인간에게 선물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생존 신호등 역할을 한다.
다섯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행복이 돈, 외모,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 외적인 조건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은 큰 착각이다.
여섯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유전적 특성(외향성)이다. 이 외향성은 사회성과 직결된다.
일곱째,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문화적, 사회적 특성은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Inglehart, Foa, Peterson, and Welzel, 2008) 3)Inglehart, R., Foa, R., Peterson, C., and Welzel, C. (2008). Development, freedom, and rising happiness: A global perspective(1981-2007).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 264-285.
집단이 개인에게 과도한 기대와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치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현저히 낮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2012년 갤럽 조사에서 150여 개국 중 가장 정서가 메마른 국가들 중 하나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Gallup, 2012) Gallup Poll(2012). 4)Singapore ranks as the least emotional country in the world. http://www.gallup.com/poll/158882/singapore-ranks-least-emotional-country-world.aspx
여덟째,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먹을 때와 대화할 때이다. 이는 직장인, 학생, 주부,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조사한 연구 결과이다(구재선, 서은국, 2011) 5)구재선, 서은국(2011) <한국인, 누가 언제 행복한가?>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25, 143-166)
즉, 한국인에게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다. 즐거운 식사 중에 대화가 빠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지면 관계 상 미처 언급하지 못한 행복에 관한 수많은 내용들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동안의 행복지침서들이 행복에 관한 ‘도덕책’이라면 이 책은 행복에 관한 ‘과학책’이다. 포장만 번지르르한 빈 선물상자와 같은 공허한 행복담론(‘행복은 감사, 느림, 비움이다’라는 류의)에 지치고 피곤한 이들에게 ≪행복의 기원≫을 강력 추천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 에드 디너(Ed Diener).
1)Griskevicius, V., Tybur, J. M., Ackerman, J. M., Delton, A. W., Roberstson, T. E., and White, A. E.(2012). The financial consequences of too many men: Sex ratio effects on saving, borrowing, and spend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2, 69-80.
2)Kenrick, D. T., and Griskevicius, V.(2013) The rational animal: How evolution made us smarter and we think, New York, NY: Basic Books.
3)Inglehart, R., Foa, R., Peterson, C., and Welzel, C. (2008). Development, freedom, and rising happiness: A global perspective(1981-2007).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 264-285.
4)Gallup Poll(2012). Singapore ranks as the least emotional country in the world. http://www.gallup.com/poll/158882/singapore-ranks-least-emotional-country-world.aspx.
5)구재선, 서은국(2011) <한국인, 누가 언제 행복한가?>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25, 143-166)
김병국원장
포항 죽파치과원장
슬기로운 개원생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