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 오아시스>(28)
공간의 미래
유현준 지음 | 2021년 4월 25일 출간 | 쪽수 364
ISBN 13 9788932474427 ISBN 10 8932474427
일을 핑계로 전국을 여행하며 수다를 떠는 아재들의 행복한 일탈을 담은 TV 프로그램이 있다.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이 바로 그것이다.
스타 연출가인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총 세 시즌에 걸쳐 제작·방영됐다. 정치, 경제, 미식, 건축, 뇌 과학 등이 전주비빕밥처럼 어우러진 <알쓸신잡 시즌2>에서 공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산뜻한 해석으로 주목받았던 주인공이 바로 본 책의 저자인 유현준이다.
저자의 책들 중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대표작은 2015년에 출간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면을 통해 ≪공간의 미래≫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여는 글(prologue)’의 부제(副題)는 ‘전염병은 공간을 바꾸고, 공간은 사회를 바꾼다’이다. 집필의도와 책의 큰 물줄기를 한 방에 정리한 문장이다. 저자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공간, 권력, 삶의 변화에 주목한다. 집, 종교시설, 학교, 회사, 도시, 상업 시설, 공원 등 각 공간에 불어 닥친 변화와 그 미래에 대해 서술한다.
1장,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대한민국의 가족 구성이 변하고 있다. 4인 가족은 더 이상 대세 또는 표준이 아니다. 1~2인 가구가 전체의 6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반면, 4인 가족은 전체 가구 중 16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공간 활용과 가구 배치가 변화하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통해 ‘화사’가 거실에 소파가 아닌 침대를 두고 생활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처럼 거실과 침실, 소파와 침대를 융합하면 더 넓은 공간을 향유하게 된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가구 브랜드들은 앞 다퉈 리클라이너(recliner) 침대를 출시, 판매하고 있다.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선호되는 거주형태인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어질 아파트 디자인 5원칙을 제안하며 1장을 마무리한다.
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
유현준의(유현준이 주장하는) ‘공간과 권력의 제1원칙’에 따르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 기원전 8500년 경에 만들어진 괴베클리 테페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교회까지 그 공간을 살펴보면 그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소망교회의 집사인 저자의 이력을 고려했을 때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할 말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는 느낌(too naive)을 받는 독자는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본문 중 “최근에 코로나 사태가 생겼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이태원 클럽에 가서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와 유사한 문장 구성으로 “최근에 코로나 사태가 생겼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교회에 가서 현장 예배를 드려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책에 들어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감염 비상시국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교회와 교인들이 무리한 현장 예배를 강행하며 정부의 방역정책을 역행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신은 결코 인간에게 ‘반드시 한 곳에 모여 예배 드려라’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참고로 필자 본인은 모태신앙에서 출발한 크리스쳔이다. Amen.
기독교에 대한 지나치게 말랑한 태도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대조적으로 전염병이 공간 구조를 변화시켜 권력과 공동체를 변형시키는 과정에 대한 통찰은 감탄을 자아낸다.
3장, 천 명의 학생 천 개의 교육 과정.
코로나19 창궐 초기, 필자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 호주에서 직업을 가진 엄마(이하 ‘워킹맘’)들이 패닉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이유는 전염력이 강한 감염병으로 인해 학교들이 ‘등교’ 교실 수업 대신 ‘재택’ 온라인 수업을 채택하면서 학교가 담당했던 육아의 기능이 가정으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근무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한 워킹맘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라고 당시 뉴스 앵커는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입이 가속화된 온라인 수업은 학교의 세 가지 기능(지식 전달, 사회화, 육아) 중 지식 전달만을 수행할 따름이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온라인 교육 위주의 상황이 저자에게는 학교의 미래를 그리는 영감을 제공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공간 공유를 기반으로 한 다양성이 넘치는 학교를 꿈꾼다.
4장, 출근은 계속할 것인가.
재택근무가 늘어날수록 기업 철학이 중요해짐을 저자는 강조한다. 코로나19 창궐 직후 재택근무 관련 사진들이 인터넷에서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상의는 정장, 하의는 반바지를 입은 남자는 웃음의 서막을 열어주었다. 영유아 자녀를 돌보다가 소파에 쓰러져버린 여자의 사진은 일과 육아의 혼재가 야기할 수 있는 카오스(chaos)에 대한 경고와도 같았다.
코로나19는 의료계에 ‘원격의료’라는 화두를 다시금 던져줬다. 물론 물리적 처리를 위해 대면 진료가 필수적인 치과의 특성 상 치과계는 원격의료 논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의과에 쓰나미(tsunami)가 덮치면 뒤이어 치과에 도 상당히 큰 규모의 해일이 밀려옴을 우리는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익힌 바 있다. 재택근무와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5장, 전염병은 도시를 해체시킬까.
저자의 대답은 ‘No’이다. 그는 역사 속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인류와 도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심각한 전염병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주가 그래프처럼 우상향(右上向)을 그리며 성장해왔다.
미래 도시는 인구밀도가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도 전염병에 강한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원의 분포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6장, 지상에 공원을 만들어 줄 자율 주행 지하 물류 터널.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원의 역할과 디자인에 대해 역설한다. 자율 주행 지하 물류 터널은 거들뿐. 도시 재생과 재건축에 대해 ‘도심 속 중요한 곳에 공원, 도서관, 벤치를 두자’고 저자는 제언(提言)한다.
8장, 상업 시설의 위기와 진화.
팬데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관용구의 문장 구조를 완전히 반대로 만들어 놓았다. 저자는 ‘전염병이 만드는 공간 양극화’에 주목한다.
전염병이 심화될수록 부자들은 안전을 위해 더욱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며 밀도를 낮추려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부자가 아닌 이들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더욱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간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누구나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 도시의 1층 곳곳에 위치하도록 정부가 도시 구조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7장(그린벨트 보존과 남북통일을 위한 엣지시티), 9장(청년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10장(국토 균형 발전을 만드는 방법)은 코로나19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크지 않지만 저자의 평소 생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11장(공간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하기)에는 저자가 실제로 설계, 건축한 세 작품들이 담겨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건축물에 담아낸 저자의 감각에 찬사를 보낸다.
1회의 정독, 1회의 속독, 3회의 발췌독 이후에도 이 책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지 모르겠다. 평소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울산 참치과 이근용 원장에게 “형님, ≪공간의 미래≫를 추천하는 글을 적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첫 문장이 떠오르질 않아요”라는 푸념을 전하기도 했다.
새벽잠을 포기하며 추천하는 글을 구상하고 다듬는 데만 장장 7시간을 투자한 필자의 노고가 가엽다면 부디 이 책을 일독(一 讀)해주길 바란다.
글_ 김병국
포항죽파치과원장
『슬기로운 개원생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