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법칙(43)

인간의 내면을 해독하는 단 하나의 열쇠

2022-08-21     로버트그린

 

만약 이들이 성공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준비가 갖춰진 셈이다. 이들의 리더십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것은 이들의 과대망상적 성향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런 그들에게 감히 누가 이의라도 제기한다면 그들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심한 자기도취자 특유의 분노를 내놓기 쉽다. 이들은 과민하다.

또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속해서 극적인 사건을 일으키길 좋아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다. 그러면 관심의 중심에 설 기회는 더욱더 늘어난다. 이들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조직은 결코 안정될 수 없다.

종종 이들이 사업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다. 이들은 창의적 재주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유형의 리더는 결국 내면의 불안정함과 혼돈이 그들의 회사나 집단에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들은 짜임새 있는 조직이나 회사를 만들지 못한다. 

모든 게 반드시 본인을 거쳐 가야 한다. 누구랄 것 없이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이 그들의 ‘자기대상’이기 때문에 그 모두를 직접 통제해야 한다. 이들은 그게 본인의 미덕이라고 자랑한다. 자연스러운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에 초점을 맞춰 확실한 한 가지를 창출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자기도취를 자기몰두의 정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낮음부터 높음까지 눈금이 새겨진 자 위에 표시된다고 말이다. 거기서 특정 깊이. 예컨대 중간 지점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사람들은 심한 자기도취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일단 한번 그 깊이에 도달하고 나면 이들이 다시 위로 올라가기는 아주 힘들다. 이들에게는 자존감이라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심한 자기도취자는 완전히 자기안에 파묻혀 있고 거의 늘 언제나 기준이 되는 지점보다 아래에 있다. 잠시 어떻게 남들과 교류가 이뤄지더라도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불안이 다시 치고 올라올테고 그들은 저 아래로 곤두박 질칠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기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다.

남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현실은 그저 본인들의 욕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끊임없는 관심 말고는 그들이 살아남을 길은 없다.

이 중간지점보다 위에 위치한 사람들을 우리는 ‘정상범주의 자기도취자’ 라고 부르기로 하자. 우리 대부분이 바로 여기에 위치한다. 우리도 누구나 자기안으로 침잠한다. 다만 너무 저 아래로까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아에 대한 통일된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르시시즘’ 이라는 단어가 자기애를 가리키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왜냐하면 최악의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사랑할 만한 통일된 자아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이 통일된 자아개념이 우리에게는 내적인 회복력 같은 것을 만들어준다.

오르락 내리락하다 보면 우리도 가끔 중간 지점 아래로 내려가 심한 자기도취자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특히나 사는 게 힘들고 우울한 순간에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