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치과의료전달체계의 임종

'15년 후 터질 시한폭탄' 전면개방안 수용 신중해야

2015-06-10     강민홍 기자

 

국민의 수요에 기반한 소수정예, 합리적 치과의료전달체계를 대전제로 한 치과의사전문의제도가 응급실에 들어갔다. 그의 건강을 힘겹게 견인하던 의료법 제77조 제3항이 폐기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8일 치과전문의 29명이 지난해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전문과목을 표시한 치과의원은 표시한 전문과목에 해당되는 환자만을 진료해야 한다”고 규정한 의료법 77조3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충격적인 건, 위헌 판결이 어느 정도 예견되긴 했지만,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로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헌재가 밝힌 위헌 사유인 ▲기본권 제한의 정도 ▲치과병원과 의원간 불평등 ▲의과와 한의과와의 불평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이나 호주 등 주요 해외 국가들이 77조3항과 유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지 까지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신체부위별로 나뉘는 의과와는 달리, 진료행위별로 나뉘고, 통합진료가 필수일 수밖에 없는 치과의 특성상, 헌재가 밝힌 또 하나의 위헌 사유인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진료할 수 있는 치과의원을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경우”는 77조3항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아예 1차기관에서 전문과목 표방을 금지하는 이언주법안이 추진됐지만, 위 3가지 사유를 적용하면, 이언주법안 또한 위헌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헌재가 "해당 조항은 치과전문의가 1차의료기관에서 진료하는 것을 가급적 억제하고, 2차의료기관에서 진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고, 치과의료전달체계 정립 및 특정 전문과목 전문의 편중 현상 방지라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치과의료전달체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즉, 헌재의 주문은 치의학의 고른 발전과 치과의료전달체계 정립을 위한 장치는 필요하지만, 치과의료의 특성상 ‘표방한 전문과목만 진료’라는 방식은 과도하니 다른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거세진 전면개방 여론 몰이

헌재의 의료법 77조3항 위헌 판결이 나자 치과계 내부는 절망과 환호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 분과학회장은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 줘야 할 사람에게 (전문의 자격을) 주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경과조치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도 “우물쭈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이 지경이 됐다”며 전면개방안의 조속한 수용을 촉구했다.

이 언론은 당장 전문과목 표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대기치과만 500여 곳에 이르고 있고, 2014년 말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치과전문의 1,240명 증 776명이 치과의원에 적을 두고 있으며, 지금까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인원이 2,126명이나 된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며, 당장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는 아직 신중 모드다. 이강운 법제이사는 “현재로선 집행부에서 입장을 제시할 상황이 아니다”면서 “우선 시도지부장회의를 열어 각 지부의 입장을 듣고 대책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치협이 77조3항을 대체할 대안과 의지를 갖고 있느냐 이다. 현재로선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유일한 대안은 전면개방안 뿐”이라는 여론이 득세하길 바라는 눈치다.

그렇다면 과연 전면개방안이 유일한 대안일까?

현재로선 교수를 비롯한 임의수련자들만의 경과조치는 불가능하다. 제도 시행 후 경과조치를 할 수 있는 시한(2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비수련자들을 위한 ‘새로운 전문과목 신설’이라는 특별한 환경의 변화가 이뤄져야, 비로소 임의수련자들의 경과조치도 덤으로 이뤄질 수 있다. 즉, 경과조치 여부의 키는 ‘새로운 전문과목 신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비수련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왕 배출돼 1차기관에서 근무하는 1천명 안팎 전문의들의 전문과목 표방을 감수하고 가느냐, 아니면 100% 전문의 자격 취득으로 치과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키느냐의 기로에서 어떠한 선택이 이뤄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선택에 앞서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은, 전면개방안이 경과조치 이후 치대에 들어와 수련을 받지 못한 채 사회로 진출하는 치과의사들이 몇 천 명으로 누적돼 정치세력화되는 시점에서 발생할 시한폭탄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수련기관 지정기준 강화, 전문의 자격시험 대폭 강화, 대만의 예처럼 전문의와 일반의의 ‘수가 차별화’ 또는 전문의에 직접 갈 경우 환자 본인부담률 상향조정 등 77조3항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치과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쉬워 보이지만 시한폭탄이 잠재돼 있는 전면개방안을 선택할지, 어려워 보이지만 더욱 강력한 소수정예를 선택할지는 결국 치과의사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치과의료전달체계를 살려내겠다는 ‘의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