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파 미술의 대표작가와 작품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ly Kandinsky, 1866~1944)

2024-07-07     홍창호 교수
말을 탄 신부, 1906년 캔버스위에 유채 55/50.5cm 랜바흐하우스

 

추상파 미술의 대표작가와 작품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표현주의적 추상의 칸딘스키와 기하학적 추상의 몬드리안을 대표적인 추상파 화가로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절대주의의 말레비치와 입체파 경향의 추상(Orprism) 화파들이 추상파로 분류된다.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ly Kandinsky, 1866~1944)

러시아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피카소와 마티스와 비교되며 20세기의 중요한 예술가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추상미술의 창시자이다. 젊은 시절 모스크바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던 그는 뒤늦게 뮌헨 (1896~1914)으로 건너가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초기 야수파의 마티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표현주의 그룹인 '청기사파' 작가로 활동하였던 그는 우연히 작업실에 뒤집혀 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게 되면서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작품에서 사물의 형태는 이야기적인 내용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순수한 조형미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초의 추상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음악은 재현적 기능이 없지만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미술을  음악에 비유하고 형태와 색채가 어떠한 구체적 목적이 없어도 그들 스스로의 상징인 언어를 그려 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후에 바우하우스 교수(1922~1933)로 임명되어 바이마르에서 교육자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나치의 탄압과 바우하우스의 폐교로 베를린(1932~1933)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다 파리에서 생을 마친다.

20세기 추상미술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칸딘스키의 추상은 표현주의적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의 점진적인 궤적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이러한 그의 추상의 전개는 크게 초기의 색채와 형태의 격렬한 다이나미즘 기간과 중기의 러시아 구성주의의 영향으로 명확한 형식에 의한 구축적인 구성을 보여준 시기, 이후 1925~1928년까지의 순화된 경향을 거치며, 후반기인 1931년 동방의 여행을 통한 동양의 풍물에 커다란 감명을 받으며, 본연의 서정적·환상적 추상으로 되돌아온 시기로 나뉠 수 있다.

내면의 표출을 주안점으로 그의 추상이념은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과 1926년 '점, 선, 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특히 1911년 점・선·면에서는 조형의 기본적인 사고와 연관해서 직관과 상상의 비합리적인 내용을 기술한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당시의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경향의 미술계에서 매우 가치있는 방향을 열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과적으로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은 중세 미술에서 구현된 총체예술을 시도하기 위해 음악과 문학, 미술 등을 종합함으로써, 미술을 모방, 즉 '미메시스'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다양한 현대미술의 길을 열어주었다. 주요작품으로는 <즉흥>, <구성> 등의 시리즈와 <푸른산> 등이 있다. 

말을 탄 신랑과 신부 - 구상회화와 칸딘스키

추상미술을 최초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칸딘스키는 초기 『청기사파(Blue Rider)』를 이끌며 표현주의 작가로 활동하며 구상회화를 제작하였다. 추상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초기 제작된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19세기 인상파풍과 점묘법을 혼합한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화풍은 뮌헨 인근의 뮈르나우에 정착하면서 점차 추상적인 표현으로 변해 가며 이 작품에서처럼 야수파의 표현적인 색채와 화면구성에서 비롯된 더욱 평면적이며 화려한 원색 대비를 특징으로 한다.

특히 칸딘스키는 '내적 필연성'의 가능성을 추구하였으며, 이러한 시각을 통해 전통적인 서구의 재현적 틀 속에 갇혀 있던 색채와 형태를 추상적으로 해방시켰다.

이 작품 <말을 탄 신랑과 신부(1906)>는 추상이 나타나기 바로 이전 단계의 그림으로 후기인상파적인 점묘법적 기법과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화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직 추상적 분위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비자연적인 색채 사용과 단순화된 형태를 통해 점차 구상화에서 탈피해 가는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말을 타고 있는 어두운 색조의 신랑·신부를 전면에 두고 강 너머의 밝은 빛을 드리우고 있는 마을풍경을 화면 중앙부에 배경을 처리함으로써 경쾌한 야수파풍의 색채 사용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부를 안고 있는 신랑의 사랑스러운 몸짓은 나름대로 그림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는 듯하지만 개략적으로 생략되어 처리된 세부묘사에서는 화면 자체의 추상적 질서에 집중하고 있다. 즉, 그림의 내용에 앞서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정신성을 담아내는 색채 중심의 대비효과가 화면 전면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다. 구상적 이미지와 정신성을 담아내는 추상화된 이미 지와의 균형과 갈등을 담아내고 있는 그림이다.

추상파 이전 시기에 제작된 이 작품에서는 아직까지 인물과 말, 멀리 보이는 풍경 등에서 구상적 형태를 보여 주지만, 대부분은 색채의 자율적 표현성이 강하게 드러나 는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적 특징은 결국 강렬한 색채와 표현주의적 감흥을 전하는 칸딘스키만의 '내재적 추상화' 영역을 개척하게 하였다.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공상적 즉흥) (First Abstract Water color)

이 작품은 최초의 추상화로 칸딘스키가 자신의 화실에서 경험한 강렬한 인상에 대 한 감동을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보이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대상을 그 림 속에서 제거함으로써 자연의 대상을 떠나 색이나 형태만 있는 회화를 추구하였던 그림이다. 칸딘스키에게 있어 음악이 소리로만 아름답게 엮은 것이라면, 그림은 선과 색, 형태를 아름답게 구성한 것이다. 그림 속에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사람이나 나무를 찾기보다는 이러한 색과 선, 형태가 어떻게 아름답고 조화롭게 엮어져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그리면서 추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칸딘스키는 예술작품에서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초점을 맞추고 음악의 음률과 같은 조형요소로만 감동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그와 같은 내면의 울림을 전하듯 자유로운 붓놀림과 수채물감의 부드러운 번짐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있다. 즉, 음악의 화음을 조율하듯이 조화를 이룬 형태와 색채가 독특한 매체인 수채화의 맑은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검은 선들 I, 1913 캔버스 유채, 129.4×131.1cm, 솔로몬R. 구겐하임박물관

 

이 작품은 화면 안에서 대상을 완전히 제기하였던 그의 최초의 순수한 구상하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화면에서 느껴지진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감동, 즉 내적 필연성'을 형상화하는 실험으로 종이 위에 자유로운 붓의 놀림과 수채 특유의 부드러운 침투효과를 통해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는 칸딘스키 자신도 예견하지 못했던 현대회화의 한 장을 열어 준 계기가 되면서 본격적인 비대칭적 회화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검은 선들 (Black Lines)

"색채는 건반이다.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 저것 두들겨 목적에 부합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음악에 심취했던 칸딘스키는 자신의 회화를 음악에 비유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선율을 연상시키는 흩어진 선묘들과 감성적 색채들의 조화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칸딘스키의 추상화 시기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대표작이다. 기하학적인 형태들과 활발한 색채의 감각적인 표현들은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아랫부분에 보이는 청색과 붉은색을 배면의 노랑이 감싸는 형상으로 밀도와 집중, 팽창하는 듯한 밝은 배경색들을 가로지르는 무질서하게 그려진 소묘와 같은 선묘들과 대비시키고 있다.

불분명한 형태와 흩뿌려진 화려한 색감의 원형의 모양들이 나름대로 조화로운 통일 된 질서감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선명한 색채를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구사하며 추상표현주의를 관철한 뒤 후반에는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전환하며 서양미술사에 독보적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