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 몬드리안(2)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이 작품은 신조형주의 이론을 통해 완전한 추상회화에 이른 1930년대 몬드리안의 대표작이다. 이제 그의 화면에는 보편적인 조형요소인 수평과 수직선만이 남았으며 색채도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만 남았다. 명암으로는 무채색인 검정과 흰색, 회색이 남아 명도를 조절했다.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의지를 완성시키는 정점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이 엄격한 조형원리는 이 세상의 무질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미술의 목적으로 삼은 몬드리안의 예술관에서 비롯되었다.
신지학에서 영감받은 그의 회화관은 우주만물의 불변의 진리를 조화와 통일로써 이해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최후로 환원된 고정된 형태인 수직과 수평, 본질적 색인 빨강, 노랑, 파랑을 기본으로 우주에 조응하는 그림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몬드리안은 수평이 지닌 여성성과 수직이 지닌 남성성의 조화와 균형이 선의 구조이며, 이러한 이원성에서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환원될 수 있는 아름다운 형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하였다.
“남성적인 원리가 수직선이기 때문에 남성은 이러한 요소를 숲의 상승하는 나무들에서 인식할 것이다. 그는 그의 보충을 바다의 수평선에서 본다.” 모든 것을 대립되는 두 요소로 설명한 몬드리안은 이 대립이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조화를 회화의 기본 법칙으로 삼았다.
청, 흑, 노랑과 빨강의 구성 (Composition with Blue, Black, Yellow and Red)
빨강, 파랑, 노랑의 색면과 검정색의 선만으로 이루어진 회화작품이다. 종이 위에 어떤 형상을 나타내려는 노력도 없이 3원색의 사각형을 두께를 약간씩 달리하는 검 은 선으로 구획지어 놓은 이 그림 앞에서 그 특유의 단순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존 그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비록 단순한 색과 검은색 선만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명쾌한 조형성과 시각적 아름다움이 인식 된다고 하더라도, 이 단순성이 어떠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막연하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이 작품은 단순화 과정을 통해 화면 위에 최종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과 흰색과 검정색, 그리고 수직과 수명이 선과 그것들이 교차하는 선만이 남게 되는 추상작품으로 탄생되었다. 몬드리안은 이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만으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작품은 바로 몬드리안의 그와 같은 믿음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렇게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몬드리안은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됨으로써, 이후 그의 미술이론으로부터 많은 미술가와 기타 분야의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는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품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요소로만 이루어진 것이기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렇게 이루어진 추상미술이야말로 순수함과 완벽함, 조화와 균형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드리안이 염원한 전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회화 언어로써의 추상미술에 대한 바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로부터는 어려운 그림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 Woogie)
이 작품은 몬드리안의 미국 체류 시절인 말기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몬드리안은 1938년에 파리를 떠나 런던에 잠시 체류하다 1940년 뉴욕에 도착했다. 이미 예순 여덟 살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뉴욕의 반듯하게 직각으로 구획된 거리와 마천루가 이루는 도시 경관은 그의 이상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듯하였다. 브로드웨 이가의 음악과 무용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인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뉴욕 생활의 즐거움을 반영한 것으로, 놀랍도록 생동적이고 율동적으로 변모한 그의 그림 세계를 보여 준다. 종전의 검은색 선대 신에 주조를 이루는 노란색 선이 빨강, 파랑, 회색과 엇갈려 작은 단위로 나뉘어졌다.
제목에서 보여 주듯 당시의 유행음악인 부기우기의 경쾌함이 살아 있는 빠르고 은 리듬을 그대로 반영하는 명랑한 그림이다. 짧게 끊어진 수직과 수평선, 그리고 밝은 색채의 띠는 당시의 긍정적인 미국의 정서 또한 반영된 듯하다. 경쾌한 색띠의 올 림 속에서 몬드리안이 영감받은 뉴욕의 거리풍경과 브로드웨이의 무용수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하다.
몬드리안은 이 그림을 통해 그가 몰두해 왔던 단일평면과 결별하고 보다 움직임이 강조된 음악성 있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뒤이어 이 그림과 유사한 양식의 빅토리 부기우기」를 착수하였으니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빅토리 부기우기 (Victory Boogie Woogie)
이 작품은 몬드리안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는 뉴욕으로 이주한 지 4년 만에 폐렴에 걸려 결국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숨을 거두었다. 「빅토리 부기우기」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와 같이 면을 구분짓는 검은 선이 사라지고 맨하탄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상징하는 듯한 화려한 색면의 선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는 당시 몬드리안이 느낀 미국의 낙관적 미래를 반영하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금욕적으로 살았던 몬드리안은 그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한 집념은 신지학이 지향한 ‘이상향’을 그의 작품에서 꿈꾸었다. 어린 시절 엄격한 캘빈파 집안에서의 종교적 억눌림의 해방구로서 신지학은 무한히 펼쳐진 가능성의 세계였다. 즉 압박감 속에서 구멍난 이러한 결핍으로 오히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규칙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서는 그의 유럽에서와 달리 전쟁의 상흔에서 비껴간 미국의 문화적 낙천성을 체험하면서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시험하였다. 비록 미완의 ‘이상향’으로 남겨두었지만 만물의 개별성과 특수성 속에서 도달할 수 없는 보편자로의 여행에 과감히 도전한 그의 실험정신이 감동적인 그 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