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미술(3)

마르쉘 뒤샹

2024-10-10     홍창호 교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1912년, 캔버스에 유채, 146/89 필라델피아미술관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Woman Descending Staircase)

뒤샹은 작품 자체보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작가였다. 그러나 그가 초기 미래파 작가로 활동하였던 시기의 이 작품은 입체파적인 인물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셔터 속도를 느리게 처리한 카메라로 촬영한 듯 보이는 모습의 이 그림 속 인물은 해체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발명품인 카메라를 통해 눈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포착하고자 하였다. 그중 하나가 시간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이 작품은 이처럼 기계장치를 긍정적으로 도입하고자 하였던 미래파의 영향을 받고 있던 당시의 뒤샹의 작품으로, 인체의 해부학적으로 가장 특징적인 부분만을 포착해 움직임의 느낌만을 표현하고 있다.

기계적인 인물의 반복 표현으로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고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 표현되고 있다. 움직임과 운동 그리고 시간에 대한 관심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913년에 개최된 사진과 회화의 모던아트전(展)에 출품되었던 이 작품은, 마치 고속사진의 한 장과 같이 역동적인 이미지를 살려내고 있는 사진과 회화의 결합을 시도한 점이 두드러진다.

자전거바퀴 1913년 126.5/63.5cm, 퐁피두센터

|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

이 작품은 이미 기성품으로 제작된 탁자와 자전거 바퀴를 선택해서 예술작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예술가의 선택을 중요시한 뒤샹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미술에서의 재현' 행위를 전면 부정하고 예술가의 결정이 예술의 성립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예술가의 선택개념'에서 예술의 근거를 주장한 뒤샹의 반전통적인 사상은 미술에서 '레디메이드(ready-made)'란 개념을 통해 실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만 해도 뒤샹에게 레디메이드란 개념은 아직 생소하게 느껴졌었다. 1915년 뉴욕에 정착해서 야 뒤샹은 레디메이드에 대한 이론을 치밀하게 구상할 수 있었다.

"나는 아마도 바퀴의 움직임을 즐거이 수락했던 것 같다. 감상할 오브제 주변을 도는 사람들의 습관적 인 움직임에 대한 해독제로서 말이다." 뒤샹은 후일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인 이 작품의 제작 의도를 위와 같이 밝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일상의 오브제가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특별히 주목받는 예술작품으로 변화하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선택 행위, 즉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의도이다.

대형유리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벗겨진 신의 부조차도), 1915~1923년, 유채, 유리와 납철사, 277/175cm 필라델피아미술관

| 대형 유리
(부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조차도) (The Large Glass/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뒤샹의 작품 경향은 대체로 네 개의 시대로 발전되고 있다. 초기의 습작 시대, 기계의 이미지를 도입한 회화 시대, 대형 유리판 그림시대, 그리고 레디 메이드에 의한 오브제 시대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기계의 이미지를 도입한 회화 시대의 것으로 손으로 그리는 회화 시대의 거의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 오브제의 시기에 돌입했던 이 시기 그는 기존의 자신의 선호 주제인 성행위 장면을 기계화시켜 오늘날의 성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아래 부분의 초콜릿 분쇄기를 통해 연결되는 깔때기와 기타 장치들은 성행위를 암시하는 요소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 역시 부제로 달린 긴 제목에서부터 난해함을 보이고 있듯이, 작품 자체가 전연 수수께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대작은 중앙에서 상하로 잘라서 2개의 투명한 유리판으로 구성되고 있는데, 상단은 "새색시"이고, 하단은 "독신자"를 묘사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인체를 상징하는 구름과 같은 형체가 담겨 있는 상단과, 2차원으로 투영된 3차원적 기계적 형체의 '초콜릿 분쇄기'가 배치된 하단의 모습으로 대비되고 있다.

종합적인 개념적 요소들을 지닌 이 작품은 특히 '우연성'을 드러내는 점이 특징적이다. 작품 상단의 구름 이미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손수건의 형상을 세 장의 사진으로 잡아내고 있으며, 오랜 시간에 쌓여 형성된 먼지가 만들어 낸 하단의 '여과기' 형상 부분의 이미지는 사진 작품으로 촬영하여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 뒤 샹은 프랑스에 제작했던 이 작품이 그 후 미국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파손되면서 우연하게 생긴 파열을 보면서, 오히려 우연성이 가미된 '완성'으로 단정했다고 한다.

파열된 선의 흐름들이 공교롭게도 자연스럽게 기존의 이미지들과 조응하며 예술적 감각을 높여 주는 듯하다. 동적인 기계장치의 성적 암시를 재치있게 소화하고 있는 이 작품은 뒤샹식의 신화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 초콜릿 분쇄기 No. 2 (Chocolate Grinder No. 2)

「신부」 시리즈를 즈음하여 마지막으로 손에 의한 유화 작품을 포기한 뒤샹은 설계도와 같은 기계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일련의 「초콜릿 분쇄기」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초콜릿 분쇄기 No. 2」로써 이미 1년 전에 제작된 「No. 1」을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이전 작품이 수공으로 제작되었다면 이 작품은 직접 실로 만들어 화면에 콜라주해서 처리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작품은 뒤샹의 기념비적 작품인 「대형 유리」의 아랫부분에도 도입된 이미지로 뒤샹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반영한 이미지라 한다. 소년 시절의 뒤샹은 르왕의 한 과자점 쇼윈도에서 본 것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초콜릿 분쇄기」를 제작하였다.

뒤샹은 당시 진열된 우아한 루이 15세식의 세 개의 다리를 가진 탁상 위에 놓여진 돌아가는 세 개의 원통형에서 독신자의 자위(自慰)의 욕구를 연상하였다고 한다. 대형 유리판 그림의 하단에 있는 '독신자'의 한 부분으로 채용되었던 이 이미지는  독신자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뒤샹 특유의 성적 관념을 비유하고 있다.

인체를 중성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욕망 자체도 차가운 기계적 형태와 초콜릿의 점액이 만 들어 내는 현대의 에로틱한 관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성적 관념의 전개는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이후 지속적으로 회화 시대와 대형 유리판 그림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 출처 - 현대미술의 이해 | 홍창호 著 | 양서원 출판사 | 2013.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