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미술 (9)
르네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The Castle of Pyrenes)
이 작품은 평소 마그리트가 즐겨 다룬 초자연적 현상을 공중에 뜬 거대한 바위를 등장시켜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의외의 사물이 본래의 위치에 놓이지 않는 경우를 활용하는 기법을 ‘테페이즈망' 기법이라고 한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일반의 상식을 넘어선 방향에서 전개되는 이와 같은 테페이즈망기법을 통해 전혀 예기치 못한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곤 한다.
즉 이 작품 <피레네의 성>에서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이 결합되어 나타나거나, 사물이 그 고유의 성질을 상실한 채 묘사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즉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상황으로 나타낸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은 요새 형태의 성을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바위가 화면 중앙에서 무중력 상태로 자유로이 떠다니는 비현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의 제목 '피레네의 성(Le chateaudes P renees)」은 실현될 수 없는 백일몽을 뜻하는 프랑스식 관용어, ’허공 위의 성곽‘을 비틀어 쓴 것이다. 그는 거대한 바위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연법칙의 극적인 왜곡을 통해 일반의 상식과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그림에 돌덩이를 자주 등장시키는 마그리트의 ‘석기시대’라 칭하는 1950년대 중에서 특히 이 작품이 제작된 1959년 무렵에는 볼륨감을 자랑하는 웅장한 바위가 화면에 빈번히 나타난다. 한 비평가는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관찰된 무중력 현상에 대해 고전적 물리학의 절대적 시공간 이론을 전복시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시각에 따른 사물을 바라보고 이미지로 해석한 것으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그림에서 관찰된 초자연성, 중세 건축물이나 기괴한 분위기 등의 요소로부터 초현실적 풍경을 이끌어내는 마그리트 특유의 감각이 우선 돋보인다. 바다와 거대한 형태의 바위는 딱딱함, 유연함, 정적, 동적, 무거움, 가벼움의 대립을 통해 긴장을 이끌어 낸다. 마그리트는 그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사용하기 위하여 두 대립요소들을 그림 안에서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의 조건 (Human Condition)
이 작품은 르네상스 이후 지속된 회화의 재현의 전통과 시각적 인식의 전통을 모두 패러디하고 중복하여 보여 줌으로써 실제와 환영의 게임놀이를 보여 주고 있다. 마그리트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사실주의 방식으로 형상을 그리고자 고전적 회화와 같은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은 고전적으로 사실적 묘사로 그려졌으나, 창 밖 풍경과 실내의 풍경화를 일치시킨 착시를 의도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고전회화에서 나타나는 환영기법이 실제에 대한 환영을 부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마그리트의 착시의 목적은 거짓에 대한 환영을 부여하는 데 있다. 즉, 화폭의 이미지와 시선, 그리고 화가의 시선이 이중화되며 현실과 상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표현했다. 결국, 관람자의 시선에서 지각된 실제의 풍경과 그려진 상상의 풍경 간의 관계로부터 ‘거짓에 대한 환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그리트는 거울이나 창을 활용하여 실제 대상과 유사한 데생, 색채를 사용하는 고전적인 환영의 방식에 따르고 있지만, 거기에는 미묘한 시각과 시선 간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마그리트는 안과 밖의 연결에 관심을 가지고 창을 통해서 실내의 내부와 외부, 실재의 공간과 일루전적 이미지 공간 간의 관계를 질문하고 있다. 결국 실제와 이미지 간의 교환 혹은 외부의 장면과 실내 간의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실재와 상상,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가까운 것과 먼 것간의 공존이 이루어지게 한다. 마그리트는 그려진 이미지를 통해 한편으로 사고방식에 의해 변형된 시각세계를 묘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적인 방식이 포함된 시각세계를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 때문에 극도로 정밀하게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된 이 그림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실제 세계와 상상의 세계로 중복된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가 말한 변증법이란 실제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둘로 가르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파기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실재 대 상상, 주관 대 객관, 거짓 대 진실의 불명확한 세계와 화폭 안에서 본래의 대상과 그려진 대상 간의 역전 가능한 동등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마그리트는 실제와 환영에 대한 상호관계를 탐구하여 관람객들에게 구분 불가능한 창가앞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과 실제 밖의 풍경에 대한 구분에 확신을 가질수 없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즉 마그리트는 처음부터 이 둘 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일상이 지닌 초현실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 출처 - 현대미술의 이해 | 홍창호 著 | 양서원 출판사 | 2013.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