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편집장] 줄리아노트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덴탈뉴스=김선영 기자]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좌절과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마음 약한 생각, 누구나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떠 올려 보는 건 어떨까? 그에게 지금 누가 가장 필요한 지..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곤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주말이면 탄핵찬반 시위로 서울시내가 시끄럽다. 뉴스를 틀어도 탄핵에 관한 이야기와 헌재얘기뿐이다. 점점 느껴지는 서민 경제는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치과도 어려운 상황이다. 나라의 경제와 미래를 위해 쏟아야 할 에너지가 대통령의 비상게엄 선포로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봄은 오고 있고 싹은 튀워가고 있다. 3,1절도 지나갔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 한 몸 불살라 악의 축을 죽였던 안중근의사의 죽음이 있었기에 이 나라의 번영도 있어왔다. 젊은 학생이든 한 개인이든 한 나라의 존립을 위해 나서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그날, 하얼빈의 시간은 멈췄다.
대한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일본 헌병에게 붙잡힌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투옥되었고, 낯선 땅에서 차가운 시선에 둘러싸인 채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적국의 수뇌부를 사살한 합법적인 의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는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불과 32세라는 청춘으로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지만, 민족을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또한, 11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동맹을 결속해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며 대한독립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 집안은 안정근, 안공근 애국지사도 형님인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을 본받아서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여동생 안성녀 여사도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를 위해 군복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 항일운동 자금과 문서를 조달하는 일로 힘썼다. 그만큼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은 애국지사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한독립을 위해 분투했다.
시간을 다시 거슬러 2025년 현재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가?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늘 속에 가려진 채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는 독립 유공자 후손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을 아무도 관심조차 가져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힘들고 어려운 그들에게도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 자신조차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만 우리가 어렵다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함께 나누는 봄이 있기를 그들에게도 봄날이 있기를 바래본다.
김선영 기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인문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 수료
치과의료정책연구원 치과정책전문가 과정 1기 수료
아이키우기좋은 나라만들기 운동본부 홍보실장겸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