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2025-04-11     홍창호 교수
잭슨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인 잭슨 폴록은 전후 유럽의 현대 미술 화가들과 동등하게 인정받았던 최초의 미국 화가이다. 와이오밍 주 태생으로 형이상학적이고 초자연적인 정신성을 추구하는 신지학의 개념을 접하며 LA에서 성장한 잭슨폴록은 뉴욕에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친다. 한때 멕시코의 벽화가의 영향과 정신분석이론을 접한 폴록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원시미술, 멕시코 신화 등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발견하였으며, 1943년 구겐하임의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통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45년 결혼과 함께 롱아일랜드의 이스트햄프턴에 정착했던 폴록은 최초로 드리핑 기법으로 제작하는 '액션페인팅'을 시도하였다. 이는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사방을 돌며, 캔버스 위로 물감을 흘리고, 끼얹으며 몸 전체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영역의 회화이다. 그것은 떨어뜨린 물감의 흔적이 층위를 쌓아가면서 화면의 밀도를 높여 감과 동시에 작가의 다이내믹한 제작행위를 직접 캔버스에 남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로써 개방된 하나의 장으로서 평면의 캔버스는 자유롭게 석고, 모래, 껍질 등의 물질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전통적 이젤 회화에 비해서 더욱 생생하고 개방적이며, 즉 각적인 순수화면을 나타낸다. 행위를 강조하는 액션페인팅 기법은 제작과정 동안 느끼는 내면의 움직임에 따라 폴록은 무아지경에 가까운 상태에서 내부의 감정을 분출하였다. 결국 제작과정에서의 자신의 팔과 손목의 행위의 흔적들은 무의식적인 자동기술적 특징을 반영하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작업중인 잭슨 폴록

폴록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나는 그림 속에 있을 때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내가 어떤 행위를 저질렀는가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림과 친숙해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가능해진다. 그림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 에 나는 그림을 고치거나 이미지를 부수는 일에 대해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림이 스스로 완성되기를 허용해 줄 뿐이다.”라고 언급하며 우연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액션페인팅을 통한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불태웠던 폴록은 미국 미술계의 첫 번째 슈퍼스타로 각광을 받으며, 1950년에는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1년경 백과 흑만으로 거대한 얼굴 시리즈를 그렸을 때부터 알코올중독이 악화되었고 창조성의 한계에 가로 막힌 그는 육체와 정신의 쇠락으로 방황하다 1956년 만취상태에서 과속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최초 유럽 미술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미국 미술계의 자존심이기도 했던 그는 이후 ‘팝아트’같은 미술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에는 「넘버 1-라벤더 안개(No, 1 Lavender Mist, 1950)」 「블루 폴즈 (1953)」 등이 있다.

「넘버 1-라벤더 안개(1950)」는 새로운 미술의 개척자로서의 폴록의 명성을 굳혀준 작품이다. 이 그림은 길게 늘어진 희고 검은 선들과 짧고 선명한 방울들, 호와 흩뿌려진 선들, 에나멜 물감의 두꺼운 반점 등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로 말미암아 그림의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은 물리적 움직임과 결합된다.
 

[푸른 기둥 Blue Poles] 1952, 캔버스에 에나멜, 알루미늄 페인트, 유리 210×487.6cm coll. Australian National Gallery, Canberra, Australia

폴록의 친구이자 예술비평가였던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그림의 대기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해 「라벤더 안개」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물론 작품에서는 작가에 의해 전혀 라벤더가 의도되거나 암시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 그림은 하얀색과 파란색, 노란색, 회색, 적갈색, 장밋빛 분홍색 및 검은색 물감의 변주로 구성되었다.

폴록의 「라벤더 안개(1950)」는 역시 드리핑 기법을 사용해 제작했다. 그는 먼저 작업실 바닥에 펼쳐둔 긴 캔버스 위에 가정용 에나멜 페인트를 뚝뚝 떨어뜨림으로써 선을 겹쳐나갔다. 이 같은 방식의 접근법을 통해 그는 거의 회화 자체 ‘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 폴록이 재현하고자 한 것은 얼룩을 만드는 행위, 그리고 이 행위를 통해 분산 된 에너지들이 빚어내는 강력한 내러티브의 하모니였다. 캔버스 위에 남겨진 행위와 잔여물 등은 상당히 정교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그림 스스로가 지닌 본질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출처: 현대미술의 이해/  홍창호 교수 /양서원출판사/ 2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