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킴 김기천 대표] 자전적회고록

나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4)

2025-05-06     김기천 대표

[덴탈뉴스=김기천 대표 ]  결국 내가 만들지 않으면 이 아이디어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제품은 개발하고 싶지만 건강이 문제였다.  그러던 중 마흔을 갓 넘겼을 때 헬리코박터 치료를 하고 나서부터 신기하게도 몸의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평생을 8시간을 수면을 취해도 피곤했는데 그때는 6~7시간만 자도 몸이 거뜬했다. 건강이 좋아지니 제품개발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졌다.  무엇을 먼저 만들 것인가? 여러 아이템 중 분산 광원 헤드램프가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개발 자금도 그렇게 많이 들어갈 것 같지 않아서 헤드램프제조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후 2005년 의원을 정리하여 약 1억 원의 자금을 마련하여 개봉동 언덕배기 두어 평 남짓한 상가를 얻어 1인 창업을 시작했다. 

# 뭐니 뭐니해도 Money가 있어야 

창업 후 설계는 직접 하기 때문에 비용은 들지 않았지만, 시작품을 만들고 공구를 구입하고 금형을 파면서 이래저래 준비했던 1억 원은 바람과 함께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금이 없으면 아무 일도 추진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많은 기관을 내세워 창업이나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홍보하지만  나에게는 모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중기청과 중진공, 기술신용보증기금 을  알아보았지만 지원은 커녕 부동산 대출이나 의사대출보다 못한 조건을 제시할 뿐이었다. 당시 7천 5백만 원을 출연해 준다는 신기술 창업보육사업(TBI) 사업에 4년 연속 신청하였는데, 해당분야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네 번 모두 탈락하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 ‘그들이 정말 신기술을 알아볼 안목이 있다면 그들이 창업하지 저 자리에 앉아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앞으로 정부 지원 신청은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게 됐다.

돈이 필요한데 돈은 없고, 아마 그때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돈이 있어 본 적은  없었지만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절실함이 전혀 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저 건강하면 되지. 건강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인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업적하나 남길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 벌면 조금만 쓰고 살면 되지’ 그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2006년 드디어 헤드라이트 제품 첫 출시 

그런데 그 돈이 없으니 체력이 있어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었고, 참으로 난감했다. 결국 머리를 짜내 내린 결론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전세살이 중이었는데 집을 구입해  가능한 최대 금액을 대출 받았다.  그 대출금으로 2006년 봄, 첫 제품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을 우선 가정의학과 후배들에게 소개를 하였고 그중 김일수 선생, 김신흥 선생, 장경호 선생이 하나씩 구입해 주었다. 그 해 가을 이비인후과 학회에 첫 전시를 하였고 여기서도 세 분의 이비인후과 원장이 구입했다. 이후 알음알음 몇 분의 원장들이 제품의 편리함을 알고 구매하면서 제품 판매가 늘어날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잘 나오던 불빛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불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품을 회수 해 보니 LED가 모두 타 버렸다. LED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이 필라멘트 전구에 비하여 효율이 좋다는 말만 듣고 무모하게 제품을 개발해 변변한 필드 테스트도 없이 출시를 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LED가 타는 것은 문제의 시작일 뿐 이후 수많은 결함이 발생을 하게 된다. 우선은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무조건 새 것으로 교환해 주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새것으로 교환해 줄 수는 없었다. 이러한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하는 데 모두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자금이 필요했다. 이러는 사이 집 대출로 얻은 자금도 바닥이 나고 이 상태로는 곧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김기천 대표가 개발한 제품들

#제품개발 자금 마련을 위해 또다시 개업 

제품개발을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자금을 위해서는 다시 병원을 오픈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말, 세 번째 개원하여 창업하기 전까지 내가 진료했던 오류동 그 의원을 인수하여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은행은 병원을 개원한다고 하면 대출을 잘해 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원자금으로 다시 2억 원을 대출받아 사무실도 병원이 있는 상가 1층으로 옮겼다. 1층 사무실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고 생산도 하다가 2층 병원에 환자가 왔다고 간호사가 전화하면 뛰어 올라가 환자를 보았다. 워낙 체력이 약한 데다가 투잡(two job)으로 무리한 탓에 그 해 겨울 독한 감기를 세 번이나 앓았다. 그때가 고비였다.

그리고 차츰 제품이 개선되면서 이때부터 제품에 대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2007년 말 분당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연수강좌 전시에서 하루 전시에 약 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참으로 꿈같은 성과였다. 아마 이때부터 자금 흐름이 선순환이 된 것 같다.

# 사업은 커지는데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고 

사람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처럼 건강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해 낼 수 없다. 내게 있어 건강은 평생에 풀지못한 과제로 남아 있었다. 

사업은 조금씩 커지면서 개발해야 할 제품들이 점점 늘어났다. 헤드램프에 장착하는 확대경, 배율이 높은 망원경타입 루뻬 등. 이 모든 제품을 혼자 설계했고 틈나는 대로 영업도 해야 하니 난생처음 매일 나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고 있었다. 

그렇게 약 7년이 지나 사업이 성장해 나갈 무렵인  2013년  몸이 점점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당시 세 번째 헤드램프(모델명: DKH-50) 설계를 하느라 좀 무리를 했는데  무리한 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증상이 좀 심했다. 혹시 무리한 것이 원인인 것 같아 휴식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아무리 쉬어도 좀처럼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식사 후에 어지러움이 시작되고 기력이 빠졌다.

점점 왼쪽 옆구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도 시작되었다. 허리 디스크가 아닐까 MRI도 찍어 보고 내가 아는 모든 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가능성 있는 처방을 받아 약도 복용했다. 백약이 무효였다. 상장간막동맥증후군(SMA증후군)을 의심해 3차원 CT도 찍어 보았다. 분위기 전환을 하면 나아질까 일을 중단하고 여행도 떠나 보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이제 밥만 먹으면 어지럽고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의학공부를 할 때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공부했는데, 그리고 10년 정도 개원 경험을 통하여 나의 의학적 지식에 한창 자신이 붙어 있을 때였는데, 그때까지의 내 경험과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글_김기천 대표 
(주)닥터킴 대표
· 가정의학과 전문의
· 인제대학교 백병원에서 수련
·한국항공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 제19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 김기천 TV 운영중 · 300만 불 수출의 탑 수상(2023)
· 대한적십자사 최고 명예장 (2021) 저서- 나의 사업 나의 건강 그리고 대통령 출마(2021) 1판 2판 2025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