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개념

프롤로그

2025-06-06     니코스스탠코스
마티스, Woman in a Purple Coat (1937)

이 책은 1900년경부터 지금까지의 미술의 주요 개념과 전개 과정을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 책을 내기 위해 특별히 기고된 글들은 요컨대 현대미술의 역사체계를 세워볼 목적으로 씌어진 것들이지만, 우선은 우리가 여전히 현 시대에 살고 있는 관계로, 이같은 주제를 대학 강의식으로 다루면서 이 시기에 대해 단순명쾌한 역사적·비평적 고찰을 한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개념 (Concepts)들이 (그리고 그 개념들을 결정적인 것으로 굳히면 서 대중화시켰던 「운동들 (movements)」 역시) 역사적으로 동시에 발생되었던 까닭에, 직선적인 역사를 논함은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특징이 바로 엄청나게 풍요롭고 복합적이며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즈음하여, 예술분야에 있어서 이제껏 그럴듯하게 꾸준하고 유유하게 이루어지던 전개양상이 돌연히 박살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인간의 세계관에 대한 비슷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들은 무엇보다도 철학적, 과학적인 발전과 함께, 반드시 그 힘의 상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체확보된 안전과 오랜 기간의 잔존(殘存)에 의해서, 전통적인 권위주의 체 계와 가치의 붕괴를 병행시킨다.

예술에 있어서 과거의 전통 혹은 적어도 그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은 모든 면에서 도전을 받았다. 제시해야만 하는 그 대응책이 그저 시도에 불과하거나 하찮은 경우도 이 도전 자체, 즉 그 도전으로 일어나는 일종의 도취감은, 예술가가 조차도 그 예술가에겐 하나의 생동감을 유발하는 자극이 되었다. 과거에 대한 이러한 거부와 질문은,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주장과 는 달리 전통 속에 깊이 빠져들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작품 속에 전통을 직접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저 단순한 하나의 입장표명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흔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진정한 혁명에 이르게 되었다.

변화와 갱신(更新)을 위한 이러한 반(反)전통적인 정열이 모든 예술을 대표했다 하지만, 이는 시각예술에서 가장 명백했고, 이 정열이 처음으로 유행되어 보다 일반적인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도 시각예술에서인 것이다. 이러한 「에스프리 누보(L'esprit nouveau/새 정신)」가 문학과 음악에 받아들여지게 되기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티스 Interior with An Egyption Curtain (1948)

 

이렇게 해서, 사회의 다른 비슷한 경향들을 반영하고 있는,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금세기 초에, 그때까지는 흔히 경옥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가설(假說)들에의 얽매임에 대항하는 폭발적인 자유화의 힘이 되었다. 회화에 있어서의 이러한 경향은 인상파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는데, 1910년경에는 이미 인상파들조차도 전위파가 아닌 후위에 서게 될 정도로 그 추진력을 가속화했다. 전위라고 하는 개념이 갖는 중요성은(이 개념은 실제로 실험적인과 동의어(同意語)가 되었다) 미술의 유일한 가치기준으로 보일 정도로 컸다. 실험은 현대미술의 합리적인 경향과 비합리적인 경향, 양쪽 모두에 걸쳐서 하나의 작업방법이 되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융화될 수 없는 이러한 두 가지 태도, 즉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자신들의 강렬한 반전통주의적·반권위주의적 정열에 의해 자극되고 고무되어 하나의 공동전선으로 통일되었다는 사실을 여기에 적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에 있어서 실험에 대한 강조와 또 한편에 있어서 체계적인 접근법(비록 이 접근법이 대개는 독단적 직관적 출발점을 가진다고 할지라도)의 빈번한 적용은 거의 확실히, 자연과학의 새롭고 중대한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비록 과학적 방법 내지는 접근법이 직접적인 효과 그것만을 가졌는지 또는 과학의 발전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나 이해를 의미하는지 의문스럽지만, 과학적인 방법 혹은 접근법은 예술에 있어서의 상상력의 수많은 출발을 위한 자극제였다.

새로운 과학적 관념들은 전파를 타고(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도처에 범람했으며, 그 관념들이 이해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불문하고, 상상력의 활동을 새로운 방향으로 유도해서, 전적으로 잘못 이해되었을 때조차도 역시 실험을 고무했다.

시대개념과 시대 속에서의 발전개념은 길고 직선적이고 여유있고 꾸준한 과정으로부터, 짧고 빠르고 복합적이고 동시적인 분출과 단편적인 것으로 변화되었으며, 또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관습적으로 귀납적인 (a posteriori) 부류라고 광범위하게 불려졌던 분야 와, 예술사학자들이 적어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말하자면 낭만주의같이)들이 오늘날에는 전문가를 제외 하고는 실제로 인식되어질 수 없을 정도로 단명(短命)하게 되는 시점 에 이를 때까지, 줄곧 가속적으로 하나씩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운동」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예술품 그 자체의 성격을(잠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적어도 개념적인 의미에서) 흔히 선행하면서 조정하고 사전정의를 내렸던 이론이나 관념들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과 개념이 점차 예술활동의 주요 구성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의 운동과 개념들은 항상 그 시초부터 세계적, 의도적이고 목적적이고 방향지워지고 계획된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운동과 개념 들에 항상 과도한 선언문, 문서, 표제적(標題的)인 성명서(聲明書)들이 수반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개의 운동은 주안점(主眼點)을 갖도록 신중하게 창조되었다. 예술가들이, 그리고 때로는 비평가들이 운동을 일으킬 강령을 만들고는 개념을 공식화했던 것이다.

현대미술운동은 본질적으로 「개념적인」 것이다: 미술작품들은 그들이 예시(例示)한 개념에 의해 고찰되고 있다. 비평가, 이론가들의 역할은(예컨대 추상표현주의를 보라) 새로운 예술적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비할 바 없이 중요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같이 다양한 운동들이 동시대의 주요 작가들을 꼭 독점적으로 수용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만 한다. 그 명백한 예가 피카소일 것이다. 그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외면하기도 했으며 간단히 초월해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좋은 예는, 그런 결과로 이 책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거의 나오지 않는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의 경우이 다. 오늘날에는 운동들의 개념까지도 그 의미를 잃어버렸고, 이제는 개념들이 동시에 너무나 복합적인 성격을 내포하므로 순전히 개개인 예술가와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하는 외의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미술에 대해 생각하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