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개념 (8)
야수파
무기력한 관능의 분위기는 보들레르의 상상력과 맞먹는 시각적인 등가인데, 이것은 부드러운 분홍색과 초록색, 그리고 나긋하게 몸을 굽혀 포옹한 남녀의 모습에 의해서 홀륭하게 표현되고 있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중량감이 없게 표현되어 있으며, 배경의 흔들리는 나무들조차도 그것들이 표현하고 있는 분위기처럼 가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마티스의 작품이 수년간의 끈질긴 실험과 연구의 결과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왜냐하면 마티스는 그러한 질서와 정확성을 자기의 그림들에 구사하여서 어느 것도 우연발생적인 상태로 남겨 놓지 않는다. 2년 후에 그는 그의 목표에 대해서 과연 그다운 명료한 정의를 발표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추구하는 것은 표현이다. 표현은 나의 사고방식대로 하자면, 인간의 얼굴이나 분노로 뒤틀린 동작에 투영된 정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 그림에서의 전체적인 배치는 표현적이다. 인물이나 다른 물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화면,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분 공간, 비례 등 모든 것이 각기 제 역할을 수행한다. 구성이란 화가가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표현요소들을 자기의 재량대로 어떤 장식적인 방법으로 배치하는 기술이다. 하나의 그림에 있어서 모든 부분이 기본적인 것이든 2차적인 것이든 간에 시각적으로 보여지고, 또 그것은 각기 부여된 역할을 수행한다. 그 그림에서 유용하지 못한 부분들은 장애가 된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세부묘사는 관람자들이 보기에 본질적인 표현요소들을 침식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술이나 작품들은 그 이전에 이미 단순화되었으면서도 형식적인 구성들을 겨냥했던 고갱이나 쇠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티스 역시 고갱처럼 색의 조화는 음악의 원리와 똑같은 원리를 좇아야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노예와 같은 방식으로 자연을 그대로 복사할 수는 없다. 자연을 해석해서, 그것을 그 그림의 정신에다 예속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모든 색조의 관계를 발견하였다면 그 결과가, 작곡에서의 조화와 마찬가지로 색조의 생동하는 조화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확실히 드뷔시(Debussy)의 곡에 대한 시각적인 해석을 암시해 준다. 그의 색채를 다루는 솜씨는 고갱의 시적인 열망과 쇠라의 준과학적 (quasi-scientific)인 분석에 확고하게 근원을 두고 있다. 그것은 시각적이고 분석적이다. 즉, 여러 해 동안 연구해온 결과의 경외로운 결합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선과 색의 조화에 의해 감각이 가라앉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 조화가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작품의 단순성과 선명하고 수월한 붓놀림은 연쇄 반응적 질문들을 야기시킨다. 예를 들어서, 어떻게 그는 공간감각을 설정하고 또 동시에 부정하는 운용을 할 수 있는가? 비록 이러한 종류의 의문은 그가 야수파의 기간이라 불리어지던 때보다도 1908년 이후의 작품들에서 더 야기되는 질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세잔에 대해 피카소가 언급했던 ‘우리와 상관이 있는 것은 인간의 불안(inquietude)이다’라는 말은 마티스에게도 역이용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마티스에게는 불안이 결여되어 있고 바로 그 점이 사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가 세잔이 했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을 구사했던 것은 지각과 상상력이라는 특징이었다.
세잔에 대한 그의 깊은 존경심은 어떻게 그가 주변의 사물을 보았는가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유래한 듯싶다. 그들 두 사람은 모두 실재에 대한 정통적인 감각을 뒤흔들어 관람자들이 일상적으로 쉽게 가지는 믿음을 희롱하는 것을 즐겨했다.
1900년에서 1902년경의 마티스의 작품에서의 기법과 색채의 실제적인 적용은 세잔의 후기작품과 참으로 밀접하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에 소장된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The Batchets))은 세잔자신에게까지도 색채와왔던 일그러진 인물들, 그리고 모호한 공간활용 등에 있어서 이제까지 있어 왔던 야수파의 어느 작품들이 그러했던 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이라 하겠는데, 확실히 마티스는 그 세대의 다른 어느 화가보다도 세잔에게서 시종일관 많은 것을 배웠던 것이다. 예를 들어 1907년의 <화사함>에서 마티스는 다시 풍경 속에서의 인물이라는 이 주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는 여기서 배경의 맥락으로부터 인물상을 추출시킴으로써 더욱 혼란스러운 효과를 야기했다. 그는 훨씬 뒤의 <붉은 화실>과 <푸른 창> 등의 그림에서는 이런면에서 더 정확했다. <화사함>의 크기는 마티스작품의 장식적인 의도를 더 뚜렷이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화사함>은 1909~10년에 특별히 장식적인 작품 제작을 위임받고 완성시킨 두 개의 대형패널 춤과 음악에 대한 전주곡처럼 보인다. 자기작품은 장식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마티스의 굳어가는 확신을 그의 동시대화가들, 예를 들면 피에르보나르와 모리스드니의 의도에도 공감을 줬던 것 같다.
출처 - 『현대미술의 개념』 니코스스탠코스편 | 성완경 | 김안례譯 |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