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라, 더더욱 의심하라

강명신교수의 New York Times 읽기

2015-06-10     강명신 교수

의학은 정밀과학이 아니다. 정밀하게 진단하고 그 원인을 직접 공격해 예측 가능한 효과를 내게 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파괴적 의료혁신 (원제, Innovator’s Prescription)’의 저자는 의학의 발전방향을 직관의학→경험의학→정밀의학으로 보고 있다. 정밀한 진단과 그로 인해 예측가능한 정도의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만이 보건의료를 혁신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질 좋고 저렴한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혁신적 최첨단 치료라는 것은 대개가 비싸고 환자는 주로 절박한 상황인데다, 자기가 받게 될 치료가 뭔지 알기는 더 어렵다. 관련한 세부전문가가 아니면 잘 모른다고 하니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일이 많이 생기는데, 허위로 드러난 결과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혁신적 검사나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에 환자가 참여하게 되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작년 듀크 대학교에서는 암 검사와 관련해 전망이 밝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소위 새로운 과학인 유전체학(genomics)을 이용해서 암을 검사하고 치료하는 시대를 여는 첫 열매를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듀크 사건’은 2006년 11월 6일에 듀크대학교 의료원 Anil Potti박사와 Joseph Nevins가 ‘Nature Medicine’에 기고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이 연구는 종양의 분자의학적인 특성을 들여다보는 유전체검사법에 관한 연구였다. 다른 의료기관에서 폐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고 절망하던 Juliet Jacobs도 물어물어 찾아왔다. ‘맞춤의학’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듀크 대학병원의 혁신적인 연구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암세포를 검사해, 어떤 약이 자신의 암 덩어리를 가장 잘 공격할지 암세포의 유전적 패턴을 알아보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암세포 유전자들을 자세히 보면 암 덩어리의 약점이 드러나고 이에 맞춰 화학요법을 하면 암 덩어리를 더 잘 공격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된다고 믿을 법도 하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Jacobs는 사망했다. 실험적 연구에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망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연구가 애초부터 틀렸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Gina Kolata는 의과학계가 원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분야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일이라고 보도했다 (2011년 7월 7일자, 뉴욕타임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문제가 드러나게 됐을까?

다른 암 연구자들도 같은 목적으로 연구를 하던 중이었다.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의료원 John Minna박사 역시 폐암을 연구하다가 이 연구 성과를 듣고, 뒤처진 것을 낙담했다. 그렇지만 이 놀라운 발견을 환자 진료에라도 이용해보자고 결심하고 M. D. Anderson 통계학자 두 명에게 듀크 연구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았다.

놀랍게도, 에러는 금방 발견됐다. 어떤 에러는 데이터 스프레드시트에서 행과 열을 다른 행과 열로 움직이다가 생긴 듯했는데, 다른 에러는 왜 그런 착오가 생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들은 듀크 팀은 그저 문서작업상 착오라고 반응하며 넘어갔고, 그 와중에 유전체 관련 논문을 계속 출판했다.

그런 사태를 보던 통계학자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 힘썼다. Keith Baggerly박사와 Kevin Coombes박사였다.

제대로 된 분석결과를 ‘Annals of Applied Statistics’에 기고했지만 이 학술지는 의과학자들은 거의 읽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술지가 아닌 상업지에 듀크 연구를 이끈 Potti박사가 이력서를 허위로 꾸몄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 문제가 암연구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결국 논문 네 편이 철회됐다. 듀크대학교는 임상시험 세 건을 중단시켰다. 사태가 이렇게 되기 전에 회사를 차리고 이 검사를 판매할 계획이 진행 중이었으나, 이 일로 문을 닫았고 관련 연구자들은 학교를 떠났다.

Juliet의 유족 뿐 아니라 다른 암환자들도 배신감을 느꼈다. 연구결과의 허위 발표, 성급한 임상시험, 성급한 실용화, 의료기관과 개발자의 이해상충 (개인적 이익이 앞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상황) 등 이 사건은 의과학연구, 임상시험, 특히 첨단의과학연구와 관련한 거의 모든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연구와 관련된 의사와 과학자들이 더욱 철저한 과학적 회의주의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환자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에 대해 의과학계의 윤리적 간섭이 필요하다.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다. 보건학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의학 관련 기사를 통해 미디어가 의학을 다루는 시선을 탐색하는 글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생명윤리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