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가
서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읽혀온 인물 열전인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 1세가 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의 가장 용맹한 장수로, 알렉산더 대왕이 뒤를 이어 그의 이름처럼(안티고노스는 그리스어로 아버지에 필적할 만한, 아버지만큼 훌륭한 뜻) 위대한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애꾸눈 왕이라는 호칭과 함께 초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옛날에 애꾸눈 에다가 외다리며, 난쟁이인 임금이 한 분 있었다. 어느 날 왕은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화가를 불러 자기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화가는 미리 왕의 의중을 헤아린답시고 다리 둘에 똑바로 두 눈을 뜬, 보통 키의 초상화를 만들어냈다. 왕은 이를 보고 우롱당한 듯한 느낌이 들어 그 화가의 목을 베었다.
그 다음에 불러 온 두 번째 화가는 이 소문을 들은지라 사실대로 그렸다. 애꾸눈에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난쟁이 모습 그대로였다. 이번에도 왕은 모욕감을 느껴 그 화가의 목을 베었다.
세 번째로 불러 온 화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나갈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랜 생각 끝에 말을 타고 총을 겨누어 사양하는 모습을 그렸다. 다리 하나는 말의 반대편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눈 하나는 감을 수 밖에 없 며, 허리를 굽힌 채 말을 타고 있기 때문에 난장이도 자연스럽게 정상인처럼 보였다. 왕은 이 그림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큰 상을 내리고 치하했다.
첫 번째 화가는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인 양 그려, 왕에게 아부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두 번째 화가는 첫 번째 화가가 거짓을 그려 죽임을 당했으니 자기는 사실대로 그렸다. 사실을 직시하고 그대로 표현했으나, 죽게 된데는 그 화가에게 왕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화가의 지혜는 앞의 두 화가의 죽음을 보고 짜낸 것이다.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어진 화가라고 하는데, 이 어진 화가에게는 남달리 그의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의 세계를 읽고 그려낼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앞의 화가들에게 없는 왕의 애꾸눈, 외다리, 난장이라는 진실과 그 왕의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기에, 죽지 않고 멋진 그림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지혜는 사물을 똑바로 보되 그 보는 눈에 사랑과 감사의 마음의 빛이 있어야 얻을 수 있고, 나의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일전에 동아방송예술대학교의 디마아트갤러리에서 조선후기 어진 화가들의 “사제(師弟), 붓으로 말하다 전(展)”을 계기로 왕의 어진을 그린 조선화가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
김홍도, 안견과 더불어 조선 말엽을 대표하는 3대 거장인 오원 장승업과 그에게 사사 후 서화미술원에서 왕의 초상화를 그렸던 소림 조석진, 심전 안중식, 구한말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인 어진화가로 명이 높았던 이당 김은호와 이상범, 노수현의 작품들이다.
김영학 (주)닥터뉴스 대표이사, 경희대 의료경영대학원 강사, 서울시병원회자문위원, 프라임컨설팅자문위원, 디지탈라이프콘텐트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