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교수의 New York Times 읽기
“의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걸 보니 앞으로 의사가 되고 싶은 모양이지?” “네.” “너희가 직접 정한 거야?” “아니오, 엄마가 하래서요.” 신문에 실린 의사의 글에서 읽은 에피소드다.
의·치대에서 강의를 맡으면 첫 시간에 어김없이 왜 입학했는지, 졸업하면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적어보라고 한다. 그 중 한 학생의 글이다. “(이걸 보시면 당연히 웃으시겠지만)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하필이면 수능까지 잘 나와서 엄마가 밀어붙이는 바람에 오게 됐어요.” ‘눈치 없이’ 자기 처지를 말하니 일단 솔직하다.
‘엄마의 선택을 아이가 따라서’가 아니라, 예의 초등학생과 예과생의 경우 엄마의 일방적 선택을 따랐다는 게 문제다. 시켜서 해 버릇하면 하는 일이 다 숙제나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부모가 왜 의사라는 직업을 말하는지 아이 마음에도 와 닿아야 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의대에 가줬으면 한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행복한가. 여기저기서 의사들이 ‘행복? 행복, 좋아하시네!’라고 말하는 환청이 들린다. 행복이 만일 정서적 만족이나 기쁨이라면 이들은 행복하지는 않아 보인다.
원하는 행복을 찾을 수 없어 불안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행복 추구가 원인이 돼 불안이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2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로 가디언(The Guardian)에 기고하는 루스 휩맨(Ruth Whippman)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살면서 느꼈던 문화의 차이를 쓴 글이 실렸다. 미국이야말로 독립선언문에 명기된 행복추구의 의미가 현재는 물질적 행복추구로 변질돼, 미국인들이 끝도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는 다 괜찮다”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고 한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기왕이면 하버드에서’라고 뇌이면서 말이다!
있는집 부모는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의 ‘스펙’을 관리하고, 아이를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하는 길에 세우느라 분주하다. 아이들은 에너지 드링크부터 리탈린까지 먹어가며 시험을 보고 성적을 관리한다.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SKY에만 가면 좋겠다’에서 의·치대 쪽으로 더 쏠린 것을 제외하면.
휩맨에 의하면, 미국의 긍정 신화는 페이스북에서부터 영국과 비교가 안 되게 나타나더란다. 미국인들의 페이스북에는 격려의 말과 인생의 지혜로 남을 지지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주를 이루더라고. 영국과 미국친구들 페이스북 포스트 내용에 차이가 별로 안 난 시기는 런던올림픽 기간 몇 주 뿐이었단다. 이쯤 되면 이 문화 차이가 국민성의 차이라고 할 만하다.
“나 이거 행복한 건가? 충분히 행복한가? 다른 사람들만큼 행복한가? 뭘 더 어떻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끝없이 하는 미국사람들이 대책 없는 불안에 휩싸여있다는 게 휩맨의 분석이다. 놀라운 사실은 1972년 이후로 미국인의 행복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일반사회조사(The General Social Survey)의 결과다. 휩맨은 행복 추구 자체가 불안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친구들이 영국친구들보다 전혀 더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는 휩맨의 분석은 행복지수 국가조사에서는 꾸준히 영국민이 미국민을 앞선다는 결과로 증명된다.
지난 4월에 발표된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꼴찌였다고 한다. 물질지수가 4위였음에도 말이다. 힘들다는 의사와 의사가 되라는 부모, 엇박자다. 부모가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은 부지기수이고 부모들도 점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진로와 관련해서 하는 대화의 실질적 내용인데, 그 점에서는 의사들이 사회와 더 많이 소통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에 대해, 어떤 분야에서 일할 어떤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사회와 소통을 더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의사가 되겠다며 찾아온 초등학생의 방문을 받은 의사가 장래희망이 사라진 아이들, 엄마의 희망사항만 외우는 요즘 아이들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이젠 사라졌으면 좋겠다.
America the Anxious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다. 보건학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의학 관련 기사를 통해 미디어가 의학을 다루는 시선을 탐색하는 글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생명윤리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