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대표의 짧은 글 긴 여운
아이러니는 반어이고 패러독스는 역설이라고 부른다.
반어라는 것은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안 좋은 성적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잘한다, 잘해’ 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잘하기 때문에 잘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안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이를 강조하기 위해 반대로 말한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에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라는 반어적 표현을 써서 사랑하는 님을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이에 반해 역설이라는 것은 문장 자체의 표현에서 부조리하거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반어법 같은 경우 논리적으로 안 맞는 부분은 없고 단순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반대로 뒤집어 말한다고 생각하면 역설법은 아예 그 의미 자체가 논리적으로 일치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라는 부분이 역설이다. 님이 실제로 어디론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론가 갔다는 님이 '나' 에게 존재한다는 말인데, 물리적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한 문장 안에서 서로 모순이 되며 이루어 질 수 없는 상황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님은 나를 떠나갔지만 나는 떠나간 님을 잊지 않았다’ 라는 간절한 표현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표면적으로는 이치가 맞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 속에 절실한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역설과 아이러니를 많이 경험한다.
우리 치과계도 마찬가지이다. 치과계 언론이 시끄럽지만 그래도 언론은 살아있음을 매번 느끼는 건 아이러니일까?
필자는 얼마 전 양악수술의 영역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양악수술에 대한 홍보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기 저기서 주문사항도 많아진다.
본지가 창간되기 전 읽을게 없다, 제대로 된 신문이 없다고들 말했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건 역설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역설과 아이러니의 원리를 잘 활용하면 어쩌면 우리에게도 해답이 제시될 듯하다. 서로 비판하기 보다는 서로를 칭찬하고 믿어주는 아이러니도 필요하다. 믿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을 만큼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칭찬은 인간의 영혼을 따듯하게 하는 햇빛과 같아서 칭찬 없이는 자랄 수 도 꽃을 피울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비난이란 찬바람을 퍼붓고 칭찬이라는 따뜻한 햇볕을 주는데는 인색한 것 같다. 이제 점점 더 햇볕과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다가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