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학의 CEO 리포터
야참이나 간식거리로 옛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 가운데 강정이 있다. 하지만 기름에 한껏 부풀려 튀겨서 속이 비었기에 ‘속 빈 강정은’ 속에는 아무 실속이 없이 겉만 그럴 듯한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선인들은 좋지 않은 속내를 보였다.
강정과 같이 단단해 보이지만 속이 빈 것으로 늪·강기슭·습지 등 물가에서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인 갈대가 있다. 2~4미터쯤 자라고 줄기의 속은 비어 있으며, 잎은 30~50센티미터 정도 된다. 잎 가장자리가 날카로워 손을 베기 쉽고 꽃 이삭은 길이가 15~40센티미터쯤 되는데, 꽃에 명주실 같은 털이 많이 덮여 있어 가을 바람에 날아갈 때 장관을 이룬다.
억새가 단풍과 더불어 가을산의 화려함을 더하는 귀공자라면, 갈대는 늪과 슾지의 어머니로서 가을의 울타리다. 철새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각종 생태계를 보호해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준다.
옛날 한 가난한 농사꾼의 어린 이들이 갑자기 열병에 걸려 정신이 혼미하고 헛소리를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급히 약방으로 달려갔다.
약방 주인이 말했다. “열을 내리는 데는 영양각이 좋은데 값이 비싸네. 은 열냥은 있어야 줄 수 있다네.”
영양각이 열을 내리는 데 효과가 좋긴 하지만 다른 값싸고 좋은 것이 있는데도 약방 주인은 주로 비싼 것만을 팔아 이익을 많이 챙기고 있었다. 농부는 돈이 없어 약을 구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아이 옆에 앉아서 눈물만 뚝뚝 흘렀다. 이 때 한 거지가 그 집에 밥을 구걸하러 들어왔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농부를 보고는 자초지종을 묻더니, 저수지로 가자고 잡아 끌었다. 저수지 옆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거지는 갈대 뿌리를 캐서 농부에게 주었다.
“이것을 아이에게 달여 먹이면 열이 내릴 것입니다.” 거지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열이 떨어지면서 정신이 바로 돌아왔다. 농부는 몹시 기뻐하며그 거지를 친구로 삼았다. 그 후로 갈대 뿌리는 열을 내리는 약으로 널리 쓰이게되었고 그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 인색한 약방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갈대 뿌리에는 당분·고무질·단백질·무기염류 등이 들어 있어 이뇨·지혈·발한·소염·지갈·해독·진토등의 다양한 약리 효과가 있는 매우 귀중하게 쓰이는 약초이지만, 너무 흔하므로 그 중요성을 잊기 쉽다.
더욱이 문학이나 노랫말속의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약하거나 변덕스러운 여인의 마음으로 표현되어, 속 빈 강정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런 속이 빈 갈대가 가을이 되면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있었다. 어느 날 밤 그의 온몸이 흔들리는 것을 바람도 달빛도 아닌 자기 자신의 조용한 울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의 ‘갈대’ 일부에서 발췌
갈대가 흔들리는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과 질투의 속마음을 다 비어내어 가볍기 때문이다. 갈대가 자유로운 것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붙잡힘의 구속에서 벗어났기 떄문이다. 하루 하루 꽉 찬 시간의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은 흔들리는 갈대,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보자.
현명한 사람은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