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정치학
그러나 전문직을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는 구조 기능주의적 시각이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런 질병에의 대처 능력을 의료화하여 독점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자조 능력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문명 비판, 또는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자본의 하수인으로 보는 정치경제학적 시각 어느 것도 오늘날의 전문직이 직면한 상황을 설명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
이에 대해 프라이드슨(Freidson, 1994)은 조심스럽게 전문가주의의 부활을 외친다. 그에 의하면 전문가주의는 자유시장 경제원리나 관료주의적 지배와는 구분되는 직업 통제의 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전문가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 스스로가 그들의 작업 내용과 목표, 조건, 구성원의 덕목 등을 규정할 수 있고 그러한 권한을 사회로부터 위임받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동기나, 이성적 조정력과 권한을 가진 관료의 차가운 합리성 어느 것도 전문가 조직의 자율적 통제권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권한의 원천을 전문가들이 행하는 작업의 내용에서 찾는다.
그의 논의는, 스스로의 일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그 일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것이며 복잡하고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그 일에서 소외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일에 전심전력으로 몰두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 가치와 이념을 독립적으로 추구하는 그들의 속성은 더욱 인간적이고 풍요로우며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체제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프라이드슨의 논의는 전문가 집단에 의한 지식과 기술, 가치와 이념의 독점적 소유 자체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소명의식과 전문가적 속성들을 계발하고 고양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전문가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상반된 평가 속에서 치과 전문직이 취해야 할 입장은 어떠한 것인가? 아직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 본 적이 없지만, 대체적으로 치과 전문직 내부의 입장은 두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 문제를 치과 전문직의 집단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정치적·경제적 동인이 일차적 고려대상이 되며, 지식의 성격이나 도덕적 의무감, 사회적 봉사 등의 덕목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둘째는 치과 전문직의 이데올로기를 창출 강화하려는 경향이다. 전문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직접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또는 비의적 지식의 생산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적 발언권과 내재적 권위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