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형성 과정에서의 대중의 역할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전문직화가 몽매한 대중을 계몽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인식되었던 사정을 반영한다.

따라서, 전문직화는 돌팔이와 각종 민간 시술업자, 그리고 그러한 서비스의 소비자인 대중을 건강과 의료의 생생한 현장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 말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전문직화는 보건과 의료에 관련된 실재를 규정하고 적용하는 권력의 이동을 의미했다.

치과 전문직의 분화는 이러한 권력의 일부를 의과 전문직으로부터 이양 받은 것에 불과했다. 치과전문직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물론 구강학 모델을 채택한 나라들에서는 이와 다른 양상을 보이겠지만) 이러한 권력관계는 또 다시 폭넓은 변화의 기류에 직면해 있다고 보여 진다. 아직은 그러한 변화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러한 기운이 일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주로 두 가지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보건과 의료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의 성장과 그 영향력의 확대이며, 둘째는 점차로 전문직의 독점적 지배에 식상해 가고 있는 대중 의식의 성장이다. 이러한 변화는 적어도 그 동안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문화적 권력관계에서 중심이동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재를 규정하는 데 있어 절대적 권한을 가졌던 전문직의 문화적 권력은 이제 의산복합체(medico-industrial complex)에 의해 생산된 상품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권력과, 전문직이 만들어낸 보건 의료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소비할 뿐이던 수동적 소비 형태에서 탈피하여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보건의료 서비스의 수요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대중의 자각에 의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치과 전문직이 독립된 전문화의 길을 걷는데 일조 했던 계몽의 정서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 대신 무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산복합체의 상업주의와, 다양성을 추구하고 균일을 거부하는 소위 포스토모던 문화가 의료시장과 전문직 인력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속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다. 의료 전문직은 이제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추세를 이끄는 선도적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전문직이 형성되었던 초기의 형편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현상이다. 전문화의 초기 시대에는 전문 지식의 습득이 교양의 확대를 의미했지만 지금은 여타 분야에 대한 무지를 뜻한다.

따라서, 전문 지식을 통해 사회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하며 그러한 가치에 따라 사회의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전문가 집단의 초기 이념은 이제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 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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