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


최초에는 이발외과의 (barbour-surgeon)의 길드에 속한 기능인이었다가, 외과의사에 편입된 다음, 주체적 노력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스스로 면허를 부여하며, 윤리강령을 제정ㆍ실천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어 독립된 전문화의 길을 걸어온 구미의 치과의사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한국의 치과의사가 전문직으로서의 직업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의 차이는 치과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을 지칭하는 말에까지 그대로 반영된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일반적으로 ‘전문직’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전문직이라는 우리말은 ‘어떤 분야에 대해 특별히 많이 알거나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만 읽힌다.

반면에 전문직을 일컫는 서구의 언어(profession) 속에는 전문직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속성과 함께 그런 직업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연원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은 본래 ‘서약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ofetier)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마도 그 서약의 원조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일 것이다. 이후 이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세계의사협회의 제네바 선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전문직이라 함은,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로 시작하는 이 선언을 지켜나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즉 전문적 지식과 인류 봉사에 대한 다짐이 전문직업성의 두 기둥이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선(善)한 지식의 가치와 효용, 그리고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국가와 국민이 인정하면,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적절한 수준의 경제적 보상이 주어진다.

이처럼 전문직업성은 전문직과 사회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약속에 의해 성립한다. 이 약속은 인류에 대한 봉사라는 추상적 가치와 자율적통제권이라는 사회적 권을 교환하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효용가치를 교환하는 상업적 약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로 여기서 전문직 윤리와 일반 직업윤리가 갈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치과의사는 과연 서구에서 발전한 전문직의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치과의사는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그러한 봉사의 이념을 실현할 구체적 실천방안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치과의사의 업무를 공중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우리는 서구적 의미의 전문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특별한 기능을 지닌 하나의 직종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본격적으로 치과의사의 윤리를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주제들이며 집중적인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리의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 보다는 다른 의료전문직의 예를 살펴봄으로써 간접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한다.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 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