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대학원 미학과 재학시절 **가 며느리인 *** 언니와 함께 대학원을 다녔다. 비록 도중에 그만두고 이 곳 치과계로 들어오게 됐지만. 안** 언니는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탈렌트 전인화를 닮은 지적인 외모였다.

그녀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 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수업을 받으러 오면 교수들조차도 인사하러 올 정도였다. 언니의 집은 장충동에 있는 고급 빌라였다. 스터디도 같이하고, 과천국립현대미술관도 함께 가고, 언니 집에서 밥도 먹고 공부도 같이 하곤 했다. 그때의 경험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미술이나 서예에 조회가 깊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도 서울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그렇기에 이병철 회장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이건희 회장과 이어준 것도 이병철 회장이다. 이병철 회장은 남자들은 경제활동으로 경영에 참여토록 했다. 이에 반해 여자들은 문화활동을 하게 했다. 이병철 회장은 그의 딸들에게 미술의 안목을 넓혀주기 위해  노력했다.

인사동에 일주일에 한번씩 그 당시 돈 10만원을 주고 작품을 사 오도록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짜작품을 구입해 왔지만 언제부터인가 진품을 사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무한하다. 또한 ,화가가 살아있느냐 고인이 됐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작품의 희소성이 곧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작품을 구매해야 하는 걸까? 현재 한국화단에서 인정받는 화가의 작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에 거래된다. 

필자의 스승인 산동 오태학 교수의 그림은 호당 단가가 상상을 초월한다. 재학시절 오태학 교수의 그림호가는 아파트 한 채 값에 버금간다고 했다. 서정태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호당 단가는 그 화가의 가치를 말한다. 1호의 크기는 엽서크기정도에 불과하다.

유명한 화가일수록 호당 단가가 높으며, 호당 단가로 화랑에서 그림이 매매된다. 부동산 재테크나 주식 투자보다도 더 가치있는 것이 예술 작품이다. 화가가 작고하게 되면 더 이상 그 화가의 작품이 나올수 없기 때문에 희소성의 가치를 따지게 된다. 따라서, 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이제부터 라도 예술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떨까?

남다른 생각이 남다른 결과를 만드는 법이다. 처음에는 작품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에 빠져드는 관조(觀照)의 능력이 생기게 된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유명한 이유는 평면적인 회화를 입체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유명한 것은 남들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변기라는 사물에 화가의 감정이 이입되어 그것을 대상이 아닌 내가 관조하는 또 하나의 대상이 곧 예술작품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셀뒤샹의  작품에 등장한 변기는 이미 변기가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이러한 사고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켰다. 백남준은 동양미학을 전공한 아티스트로 예술을 비디오아트에 접목시킨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의 작품은  평면적 회화가 아닌  디지털 아트의 시초가 되며, 이러한 그의 사고는 21세기 미술에 있어 획기적인 역사를 남기게 된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탄생시켰다면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쟝르를 탄생시켰고, 이것이 오늘날의 현대미술로 이어 지게 된다. 결국, 제2의 백남준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할만큼 그는 현대미술사에서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이처럼 현대미술의 기원은  화가가 작품을 그리는 것을 초월한 회가가 인식한 사물이 곧 예술작품이 된다는 예술사조를 탄생시킨 것이다. 결국  과학이 이성에 대한 학문이라면 미학은 미에 관한 학문이라는 18세기의 미학으로 인해 이러한 사고가 탄생하게 됐다. 따라서 예술가가 바라보는 사물이 바로 예술작품이 될수 있다. 따라서 예술작품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가가 바라보는 대상이나 사물의 정신세계가 중요하다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인사동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이발소 그림과 같은 풍경이 아닌 희소성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신인 화가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방법이다.

삼성가 며느리들이 그러한 문화적 사업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으며, 지금도 문화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치과에 그림 한 점을 걸어두고 가을이 끝나가는 문턱에서 예술이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바로 예술작품의 영원함을 상징한다. 화가는 떠나도 작품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김선영 기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 홍익대학교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 중퇴, 월간 치과친구 좋은친구 취재기자, Biz & issue 메디칼 취재부장, 닥터클릭 CEO, 치과의료정책 전문가 과정 1기를 수료했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