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교수의 New York Times 읽기

질병으로 고통 받는 개인을 돕기 위해 의학이 존재한다. 환자는 어디가 어떻게 이상해서 이런 증상이 생기는지 진단이 내려져야 자신의 고통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여긴다. 진단은 전문가가 환자의 고통에 붙인 이름이다. 진단이 있어야 치료받을 권리를 얻는다. 이 문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있다고, 전문가가 확인시켜주는 데에 크게 안도한다. 내 고통이 어떤 질병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려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치료법이 있다고 하니까. 환자의 안도와 의사의 보람이 맺어지는 지점이다.

닥터 폴린 첸(Pauline Chen)이 오래 전에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글 중에‘ 진단의 압제(The Tyranny of Diagnosis)’라는게 있다. 진단의 압제라니? 하버드대 사학과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 교수 의 책, ‘오늘 우리가 하는 불평: 미국의 의료, 과거와 현재(Our Present Complaint: American Medicine, Then and Now)’에서 진단의 힘을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고 불치병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닥터 폴린은 진단이 없을 때야말로 진단의 압제가 가장 강력하다고 본다. 현재 의학 수준으로 환자가 느끼는 이상을 몸의 이상과 정확하게 매칭하기가 힘든 경우 의사도 어쩔 수 없다. 진단명을 원인이 아니라 부위와 증상으로 적는 경우도 많다. 닥터 폴린은 cryptogenic cirrhosis 환자를 돌본 경험을 얘기했는데, 이 진단명은 아예‘ cryptogenic(원인을 모르는)’이라고 돼있다. 원인을 몰라 치료하지 못하고 고생해야 하니 답답하다. 가족도 의사도 힘들다. 환자는 자신의 고통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아서 더 맥 빠진다. 의사들도 연구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도 백방으로 알아 본다. ‘대안의학’ 방법도 알아보기도 하고, 병원을 전전하며 여러 의사를 찾아 다닌다. 병원쇼핑은 쇼핑이 아니다.

현대의료가‘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진단’에 골몰하면서, 환자 개인은 이로부터 분리됐다는 것이 로젠버그 교수의 주장이다. 해부병리 를 위시한 기초과학 발달로 질병을‘ 여러 환경 여건 속에 처한 개인’ 으로부터 분리해 신체 부위의 이상을 나타내는 진단명으로 요약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근대 의학이 가져다 준 이익은 크다. 전문분과 의학 별로 수련 받은 전문의들이 같은 진단명에 속한 다양한 환자들을 봄으로써 진단과 치료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렇지만, 의사가 질병에 대해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알더라도 환자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의사 진단 못지않게, 환자교육의 힘도 크다.

진단과 관련된 정찰제, 포괄수가제로 요즘 의료계가 분분하다. ‘환자들을 진단에 따라 분류하고 분류항목별 표준서비스 묶음을 제공하고 정해진 가격을 받는 제도’이다. 경희의대 박재현 교수가 청년의사 22일자(제620호)에 기고한 시론, ‘포괄수가제, 솔직하게 돈 얘기 합시다’에서는 ‘저수가’ 문제가 거론됐다.

저수가 문제는 낮은 보험료에서도 기인한다. 국민에게 낮은 보험료를 걷고, 의료제공자들에게 원가 70~80%밖에 안 되는 수가 지불을 고집해서는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낮은 보험료 때문에 보험이 보험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니, OECD 국가들 중에서 재난성 의료비지출이 가장 높다.

한편 비보험항목, 즉 비급여서비스는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200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만족도에 대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보험료와 급여에 만족하는 사람이 49.2%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랄 것도 없다.

‘저보험료-저급여-저수가’에서 ‘적정보험료-적정급여-적정수가’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 적정급여와 적정수가에서 적정성은 불필요한 시술·투약·검사를 제외한 것이어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적정성을 논해야 하는 이유다.  2002년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CT 스캐너를 가진 의사는 없는 의사에 비해 CT 촬영 빈도가 2~8배나 됐다. 제대로 된 수가를 받기 위한 노력과 주장을 않고, 불필요한 서비스를 해왔다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위에서 진단과 교육의 힘을 얘기했다. 의사의 진짜 힘은 지식과 열정에 있다. 의사와 의학자는 환자의 고통이 왜 생기는지 연구하고, 고통을 줄이는 데 꼭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해 왔다.
사회 전체에 의료자원 낭비 없는 활용, 의료체계 전체의 합리성 제고에도 의사들도 머리와 가슴을 쓰자는 쪽으로 논의가 촉발되는데도, 포괄수가제 쟁점이 한몫하길 바란다.

진단과 관련된 정찰제, 포괄수가제로 요즘 의료계가 분분하다. ‘환자들을 진단에 따라 분류하고 분류항목별 표준서비스 묶음을 제공하고 정해진 가격을 받는 제도’이다. 경희의대 박재현 교수가 청년의사 22일자(제620호)에 기고한 시론, ‘포괄수가제, 솔직하게 돈 얘기 합시다’에서는 ‘저수가’ 문제가 거론됐다.

저수가 문제는 낮은 보험료에서도 기인한다. 국민에게 낮은 보험료를 걷고, 의료제공자들에게 원가 70~80%밖에 안 되는 수가 지불을 고집해서는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낮은 보험료 때문에 보험이 보험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니, OECD 국가들 중에서 재난성 의료비지출이 가장 높다.

한편 비보험항목, 즉 비급여서비스는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200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만족도에 대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보험료와 급여에 만족하는 사람이 49.2%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랄 것도 없다.

‘저보험료-저급여-저수가’에서 ‘적정보험료-적정급여-적정수가’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 적정급여와 적정수가에서 적정성은 불필요한 시술·투약·검사를 제외한 것이어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적정성을 논해야 하는 이유다.  2002년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CT 스캐너를 가진 의사는 없는 의사에 비해 CT 촬영 빈도가 2~8배나 됐다. 제대로 된 수가를 받기 위한 노력과 주장을 않고, 불필요한 서비스를 해왔다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다. 보건학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의학 관련 기사를 통해 미디어가 의학을 다루는 시선을 탐색하는 글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생명윤리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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