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기분이나 불안한 마음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늘 관심을 받기 위해 낚시질을 하며 다닐 필요도 없기 때문에 정상범주의 자기도취자들은 관심을 밖으로 돌려서 일에 몰두하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게 가능하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는 심한 '자기도취자’라는 현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숫자로 따지면 우리의 다수는 아닐지 몰라도 그중에는 세상에 대단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자들도 있다. 

극적인 상황을 조장하고 우리를 그들의 목적에 사용할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유해한 사람들을 우리는 반드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비정상적 에너지로 우리를 끌어들일 때 거기에 걸려 든다면 다시 빠져 나오는 일은 악몽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전세를 역전시켜 상대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도취적 리더다. 우리는 우리를 잡아끄는 그들의 매력에 저항하면서 겉으로는 창의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가면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살면서 누구나 심한 자기도취자들을 만날 일 이 있다. 따라서 그들을 다루는 법을 알아두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둘째, 자신의 본성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도취자다. 대화를 나누면 누구나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훌륭한 내 취향을 거울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적극성을 장점으로 생각한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심한 사람은 적극성을 역겹다고 평가하고, 오히려 내성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침에 약하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자기도취자가 아니라며 세상의 모든 나르시시스트를 맹비난하는 설교꾼들이 실제로는 가장 큰 자기도취자인 경우가 많다. 손가락질을 하며 설교할 때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우리 누구나 자기안에 빠져 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자아를 창조하는 것은 건강한 성장과정의 하나고, 거기에 어떤 오명을 씌울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자존감이 없다면 우리는 깊은 자기도취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정상범주의 자기도취 그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려 하거나 남보다 더 이타적인 사람인척 하려고 든다면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로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기 위해 변신을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는 더 강인하고 회복력 있는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늘 눈금의 가장 높은 곳 근처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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