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전환기 미술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rt

마티스, 「댄스」 1910년 캔버스에 유채캔버스에 유채 258x390om 페테스부르크 에르미타쥬 미술관
마티스, 「댄스」 1910년 캔버스에 유채캔버스에 유채 258x390om 페테스부르크 에르미타쥬 미술관

전환기 미술은 19세기 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반인상주의를 표방하는 운동의 총칭으로 프랑스 중심의 야수파와 입체파, 독일 중심의 표현주의 미술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20세기 초 고흐, 고갱, 세잔 등을 숭배하던 젊은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져 각기 독자적인 유파를 형성하며 그들의 예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미술의 공통점은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과거 미술과 단절하고 형태와 색채, 그리고 화면 공간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즉, 비자연적인 색채를 사용하고 왜곡된 형태를 통해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꾀하거나, 작가 내면의 감정 표출을 추구했다. 주제 표현을 위해서는 완전히 자유로운 구도와 형태, 그리고 색을 적용함으로써, 결국 평면 회화는 본질적으로 색채로 뒤덮인 평평한 표면 그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미학을 개척했다.

 

야수파는 마티스와 블라맹크 등을 대표적 화가로 강렬한 주관과 감동을 원색적인 색채, 대담한 변형, 자유롭고 거친 터치 등을 특징으로 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 하였다. '감정표출의 예술'로 이해되는 표현주의 미술은 작가가 자신의 불안, 공포, 고통 등 개인적 감정이나 위기적인 시대상황에 찢긴 개인의 윤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자연적인 색채를 거친 필치로 사용하고 형태를 왜곡시키며 자유롭게 표현 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폭넓은 영역에서 전개되는 이유는 현대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드바르트 뭉크와 독일 표현주의의 키르히너, 칸딘스키, 에밀 놀데와 오스트리아의 클림트와 코코슈카 등이 있다. '비이성', '반전통' '반서구적인 것을 모토로 하는 표현주의 미술은 주로 회화에서 시작하여 이후 조형미 술 전반에 미쳤으며 점차 문학, 연극, 음악, 영화 등 여러 분야로 파급되었다.

다른 한편 프랑스의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 전개되었던 입체파 미술은 대상의 입 체감과 공간감을 화면의 구조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며 독자적인 양식을 창조하였 던 화파이다. 입체파 미술은 세잔의 이론을 토대로 대상의 단순한 감각적 표현을 부 정하고,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관찰하여 기하학적 기본형태로 환원하여 사물의 존재 성을 2차원적으로 재구축하고자 한 특징을 지닌다. 입체파 역시 르네상스 이래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재현적 색채를 부정하는 새로운 미술을 여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기 미술은 가시적, 시각적 묘사를 넘어선 순수 조형과 강한 정신체험 등을 통해 개성과 주관이 강조된 새로운 조류들을 탄생시키며, 결국 자유롭게 복잡하 고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는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이 등장하는 배경을 이루게 되 었다.

야수파 미술 (Fauvism)

야수파 미술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이루어졌던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강렬한 주관과 감동을 원색적인 색채, 대담한 변형, 자유롭고 거친 터치 등을 특징으로 한 화파이다. 최초 마티 스에 의해 주도됐던 야수파는 고흐, 고갱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순수 색채의 표현에 주력한 화가들에 의해 전개됐다.

야수파라는 용어의 기원은 야수파 전시에서 한 비평가가 가운데 놓인 전통 조각을 보고 '야수들(Fauves)'에 둘러싸인 도나텔로라고 하는 야유에서 비롯됐다. 즉, 야수파란 그들의 색채와 터치가 야수와 같이 너무나 격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야수파 작가들은 아프리카 흑인 미술의 원시적 힘과 함께, 개인적 자율성과 색채의 자율성이라는 양자에 몰두했다.

야수파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의 사용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재현적 기준의 색채 방식이 아닌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생명력 있는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다. 즉, 이전의 그림들이 형태에 종속된 색채가 사용됐던 데 반해, 형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색 자체를 사용함으로써 '색채의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묘사적 기능의 색채 사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색채의 표현을 통해 장식성을 추구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야수파는 양식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내용 보다는 형태 왜곡, 추상적 색채가 패턴화된 장식적 화면이 강조된 일종의 조형적 표현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야수파의 조형의식을 가장 잘 실현한 작가 중 하나인 마티 스는 독자적인 색채의 활용을 강조하였다. 그는 색은 더 이상 대상의 묘사적 기능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아닌 색 자체의 표현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라멩크 역시 같은 의미에서 직접 튜브에서 바로 짜내 극단적인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이전까지의 자연의 사실적 묘사나 낭만적인 주제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색채가 자체의 회화적 가치를 이루고자 했다. 이에 따라 화면은 입체감이나 원근감을 지니지 않는 평면성을 지니게 되면서 전통미술과 단절된 독창적인 화풍을 이루게 된다.

야수파의 전개는 1905년 살롱 도톤느 및 1906년 살롱 데 앙데팡당전을 기점으로 정점을 이루게 되는데, 이후 야수파는 짧은 기간의 활동을 마치게 된다. 이는 야수파가 비록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색채의 정열을 추구했지만 미술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출발한 유파가 아닌 주관적 느낌에 따라 발산하는 자극적인 색채만을 추구했던 각기 다른 개인주의적 성향의 작가들이었다는 점과, 뒷받침될 만한 통일된 이론적 연구의 부족등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따라서 색채의 주관적 정열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으로서의 활동은 쇠퇴하게 된다.

이후 1910년경을 지나며 대부분의 야수파 작가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됐으며, 그들에게 야수파 운동은 각자 서로 다른 양식의 발전 단계에서 거쳐 갔던 일시적 단계에 불과했다.

대표적 작가들로는 오직 순수하게 색채의 화가로 남았던 마티스 이외에 블라맹크, 드랭, 루오 등이 있다. 강렬한 야수적 그림으로 유명한 드랭과 블라맹크는 점차 색채가 어두워지고 화면의 구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그림으로 변화되면서 새로운 사조에 흡수되어진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