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파 미술의 특징
야수파 미술의 특징
20세기 초 최초의 예술적 혁명으로 인간의 원초성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된 야수파는 색채의 해방과 자율성 획득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애초 고흐와 고갱의 강렬한 주관과 감동, 세잔의 단순성과 고갱의 대담하고 화려한 원색에서 비롯된 야수파 작가들의 야수와 같은 강렬한 색채 추구는 자연스럽게 자연의 재현을 위한 전통적인 색채의 기능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색채 자체의 해방과 색채 표현의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강렬한 색채와 함께 전통적 명암과 원근감에서 자유로워진 이들의 화면은 두드러짐도 명암도 없는 평평한 색조와 어둡고 두터운 윤곽선에 의한 평면적 화면을 구성하게 된다. 주요 특징들을 정리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후기인상파와 원시미술의 영향에 의해 시작되었다. 색채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해방했다.
명암이 없이 색채만의 평평한 색면으로 표현하여 화면의 평면성이 이루어졌다. 즉, 전통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에서 벗어나 장식적 효과를 위한 색채만의 효과로 이루어진 공간구성 및 평면적 구성이 시도됐다. 이는 고갱의 종합주의적 형태 표현과 상징주의적 색채 표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둡고 두터운 윤곽선에 의한 형태의 단순화와 강렬한 보색대비의 색감을 사용했다. 이는 세잔의 단순한 구성과 고갱의 대담하고 화려한 원색과 외곽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강렬한 주관과 감동을 지향하여 정열적인 원색만을 사용했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으로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는 것 등이 주요 특징이다.
야수파 작가와 작품
색채를 강조하고 순수 조형을 추구했던 야수파의 대표 작가들은 유파를 이끌었던 마티스를 중심으로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등이 있다. 이들에게 있어 색채는 전통적 미술에서의 재현의 도구로써가 아닌 미술 자체의 구성과 효과를 위한 독립된 중요한 회화요소였다. 특히 마티스의 경우는 색채를 형태로부터 해방시켜 독자적인 회화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획득시키고 있다. 그에 있어 색채의 의미는 자연의 재현이 아닌 미술 자체의 내부적 질서에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점차 현실과 무관한 색채 등의 조화를 지향하여 결국 조형 요소들 간의 관계만으로 이루어진 추상미술을 예고하는 것이다. 마티스의 뒤를 따른 드랭 역시 실제 색을 무시하고 자유로운 색채 사용 과 강한 대비, 특히 색조의 지나친 강조를 이용한 대표적 야수파 작가이다. 그리고 화면 전체에 걸친 방대한 임파스토의 작업, 거친 붓작업, 검정으로 윤곽을 두른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블라맹크와 루오. 뒤피 등이 야수파로 분류된다.
헨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마티스는 색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연의 재현이 아닌 미술 자체의 내부적 질서에 의한 임의적 색채 사용을 통해 내적 감성적 표현을 의도한 순수한 회화를 지향한 야수파의 대표작가이다. 특히 그의 위대함은 형태에서 색채를 해방시켰다는 점으로, 이는 전통적 미술에서 재현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색채가 아닌 색채를 독립시키고 자율성을 획득시킨 의미를 지닌다.
“하나의 토운, 그것만으로는 하나의 색일 뿐이다. 두 개의 토운. 그것은 화음이며 생명이다. 한 색은 단지 그 이웃의 색과의 조화에 의해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뿐”. “수단의 순수함으로 복귀하려는 용기. 이것이 바로 야수파의 출발점이다.”라는 주장처럼 마티스는 색채와 명쾌한 형태의 절묘한 조화와 균형을 그의 예술의 목적지로 생각했다.
1869년 프랑스 태생으로 법학의 길을 걷다 뒤늦게 미술의 길에 들어선 마티스는 후기인상파 작품과 당시의 유행이던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으며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야수파의 대표작가이다. 초기에는 아카데미화법으로 시작되어 점차 세부적인 묘사를 지양하고 선과 색채를 구성요소로 단순화시켜 나가는 작품을 제작한다. 이후 1897년 「저녁식사」라는 작품에서는 밝은 빛을 반영하는 인상과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후기인상주의 미술과 후기인상파의 영향으로 단순화와 단축의 과정을 통한 왜곡된 원근법으로 평면적이며 정면화된 배치를 강조하고 있다.
드랭과 블라뱅크와 함께 야수파그룹을 결성하고 주도했던 마티스는 1905년의 「열린 창문」이란 작품을 통해 두드러지게 평면성을 강조하고 합리적인 서구문명의 전통에서 벗어난 보다 원시적 신비를 표현하는 새로운 미학을 선보였다. 한때 피카소의 큐비즘에도 매료됐으나 곧바로 특유의 장식적이면서도 현란한 색채의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다.
마티스에 있어 1912년부터 약 2년간의 모로코여행은 강렬한 태양과 원색의 꽃들. 낯선 이국의 색채와 문화라는 영감을 얻는 기회로써, 색채화가로서 자신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초기 스승인 모로에게 자유분방한 시각의 교육을 받았던 그는 나무, 배, 해변 등의 소재에서 세부묘사를 지양하고 선과 색채를 구성요소로 단순화시키는 방향을 보여 주었다. 이같은 장식성은 이슬람교와 비잔틴 예술의 영향으로 마티스가 비서구적인 예술 형식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에서 비롯한다.
1906~1917년까지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보색관계를 살린 색면효과를 강조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던 마티스는 1923년부터 1930년대 사이에 마티스 고유의 예술세계를 확고히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색채의 자율성을 획득하였던 그의 작품은 새로운 현대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게 했다.
1930년대 이후 조각, 동판화, 장식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던 그는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를 지워나가며 가장 간소한 표현의 구성 양식을 선보이게 된다. 아동화 같은 평면적인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함이 살아 있는 것은 이 같은 구성과 장식적인 화려한 색상에 기인한 것이다.
이후 몸이 불편했던 말년의 그는 음악적이고 장식적인 특징을 강화시켜 나갔다. 특히 검정색을 이용한 단순화된 색면 구성과 형태를 추구하고 추상적 화풍을 보여 주는 콜라주 작품에 몰두했다. 생애 끝까지 장식적 색채화가로 열정을 보인 그는 「붉은 스튜디오」, 「음악」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