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사람 (Portuguese Man)
이 그림은 브라크가 마르세유의 어느 술집에서 만났던 포르투갈 출신의 기타연주자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입체주의 이후에 기타를 비롯하여 만돌린,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많은 화가가 모티브로 즐기게 된 것은 브라크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의 브라크의 작품은 피카소의 그림과 거의 구별이 안되는 동질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1911년에 이르면, 피카소와 같은듯하면서도 다른 브라크의 요소가 점차 엿보이기 시작한다. 이 화면에서도 보게 되는 숫자나 문자의 도입이 그것이다. 브라크의 집안은 조부때부터 간판을 그리는 직업으로 생계를 삼고 있었다. 그래서 브라크도 어릴 때부터 페인트를 칠하고 간판을 그리는 기법을 익히게 됐었다.
애초 브라크가 1900년에 파리로 간 것도 실은 그러한 간판 그림의 기법을 더 연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화가의 길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그의 기법이 입체주의 작품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문자와 숫자의 도입은 앞서의 같은 배경과 관련을 갖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문과 파이프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Newspaper and pipe)
1912년을 전후하여 브라크는, 자신의 그림에 파괴에 콜레를 도입하였다.
거의 같은 무렵 새로운 수법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을지 모르나 두 사람의 길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원래 두사람 중에 누가 먼저 결정적으로 입체파 미술을 시도했는가는 분명치 않다. 다만 프랑스 전통의 높은 지성을 지닌 브라크 쪽이 이론적으로 커다란 기여를 하면서, 피카소의 예술적 재질과 결합하여, 상호 일체적 관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 그림에서의 '파피에 콜레'는 아주 단순하게 시도되고 있는데, 신문지가 그려진 곳에 실물 신문지를 붙이고 있으며, 기타와 테이블 부분는 나무의 나이테 무늬 벽지를 붙이는 정도이다.
이러한 이질의 것이 그림에 도입된 것은 '분석적 큐비즘'의 화면에 실재감을 보충하는 성과를 얻었고 화면에 대상의 외관과 색채가 다시 회복되어 등장하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큐비즘은 대상의 형태나 색채는 거의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화되어 표현 되었다.
즉, 큐비즘의 분석적 단계에서 종합적 단계로의 일대 전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파이프를 신문지로 나타내고 있는데 딴 곳에 사용된 신문지는 신문 바로 그것이지만, 파이프 부분은 그것을 부정하여 전혀 별도의 소재를 '의미'하고 있다. 이런 개념의 확장과 종합이라는 유화가 종합적 입체파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이다.
과일과 기타 (Fruits and Stringed Instrument)
이 작품은 브라크의 예술성이 가장 다채롭게 무르익던 때인 1933년에서 1938년 사이에 그려진 장식성 짙은 일련의 작품 중 하나이다. 브라크가 군 시절 이후 종합적 입체파기를 떠나 나름대로의 입체파 양식을 발전시킨 독자적인 작품으로 입체주의적 수법이 반영되고 있으나, 좀 더 느슨한 입체주의 양식의 그림이다.
독특한 콤포지션의 간결함은 양쪽 주황색 벽면 사이에 위치한 테이블에 비쳐든 빛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그리고 따스한 빛을 받으며 놓여 있는 정물들은 그 배경의 빛과 조응하며 생동감을 전해주고 있다.
브라크는 화면을 확실한 독자적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있는데, 화면의 입체주의적 구획을 지향하고 초현실적 유기적 곡선이 스며들어 있다. 대상들은 마치 불 속에라도 들어갔던 듯이 부풀어 있고, 윤곽선은 괴기스럽게 흐느적거린다. 가령 자주 보여 주었던 기타의 곡선은 불에 녹아 버린 듯 구부러진 곡선형의 유기적 형태로 변해 있다. 엄격한 과거의 입체주의적 틀에서 마치 생명감을 부여받은 정물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