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학 대표의 CEO리포터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으로서 청백리로 소문난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고려 우왕 12년(1386년)에 19살의 나이로 장원 급제하여, 스무살에 파주 군수가 되었을 정도로 승승장구하여 거칠 것이 없었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로 유명한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이자,맹자의 54대손이기도 한, 집안좋고 머리 좋은 청년 맹사성이 하루는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 수장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을 하나 일러 주시지요?”
하지만 맹사성의 속마음은 제까짓 중놈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내가 혼줄을 내줘야지, 하며 경멸의 마음을 품고 그를 찾아가서, 평생 동안 지니고 살아야 할 좌우명을 말씀해 달라고 거짓 간청을 하였던 것이다.
무명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타이르듯“제악막작 중선봉행 (諸惡莫作 衆善奉行)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선사는 이미 오만하고 도도한 젊은 벼슬아치의 속내를 읽고 있었다.
맹사성은 불쾌하다는 듯이“온갖 죄 짓지 말고 착한 일 많이 하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 따위 것을 장원급제한 나에게 좌우명이라고 가르쳐 주신단 말입니까?”라고 대꾸하며 화를 냈다
노선사는 화를 내며 일어서려는 맹사성 앞에 사발 같은 찻잔을 내놓으면 서 기왕 선사에 왔으니 녹차나 한잔 공양하고 돌아가라며, 큼직한 청동 주전자를 번쩍 들어 맹사성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런데 스님은 먼 산을 바라보면서 그의 찻잔이 넘치도록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맹사성은 찻잔에 물이 흘러 넘쳐 방바닥에 있던 방석도 책도 젖게 되니 스님의 손목을 붙들고 방안이 엉망이 되었음을 소리쳤으나, 노승은 태연하게 계속 따르기만 했다. 그리고 화가나서 쳐다보는 맹사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작은 찻잔의 찻물이 흘러 넘쳐 방을 망치는 것을 볼줄 알면서 자신의 작은 머리에 지식이 넘쳐서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볼 줄 모르는가?”하며 근엄하게 꾸짖었다.
이 말 한마디에 맹사성은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져 크게 당황하고, 황급히 방문을 나서려다 그만 문설주에 쿵하고 머리를 부딪쳤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이 사람이 고려 때의 공민왕의 왕사이자, 훗날 조선 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였다.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는 조선시대 명재상 맹사성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삼성, LG, 현대 등 잘 나가는 대기업들의 2세 COE들의 기업 승계가 한창이다. 겸손한 자는 섬기레 하지만, 교만한 자는 지배하려 한다. 섬기는 CMO가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