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사선의 발견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앙투안 앙리 베크렐(프랑스어: Antoine Henri Becquerel, 1852년 12월 15일 –1908년 8월 25일)’은 인광 및 형광현상을 연구하던 중 독일의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의 연구와 X-선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베크렐은 즉시 모든 발광물질은 X-선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려 했다.

베크렐은 불투명한 종이로 사진건판을 덮고, 그 위에 인광물질 결정을 올려놓은 후, 인광물질에서 나온 빛이 사진건판을 감광시키는지 확인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인광물질에서 나온 빛에 의해 사진건판이 감광되면, 인광물질도 X선과 같은 빛을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베크렐은 1896년 5월 우라늄염이 사진작용이나 형광작용, 공기 중에서의 전리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현상이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의 성질과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뢴트겐처럼 특별한 장치를 이용한 것이 아니었기에 우라늄염 자체에서 광선이 나온다는 점이 X-선과 다르다고 했다. 베크렐은 이 광선에 ‘'베크렐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라늄화합물(나중에 방사성물질로 밝혀짐)에서 방사선(당시에는 베크렐선)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과학계는 그의 방사선 발견 사실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인 베크렐을 방사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Bq)로 사용하고 있다.
 

방사선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1896); 앙리 베크렐(1852~1908).
방사선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1896); 앙리 베크렐(1852~1908).

방사능 국제표준단위는 베크렐(Bq); 베크렐선(Becquerel線)은 방사선인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모두를 지칭.(1초에 방사성 붕괴가 1번 일어나는 것이 1베크렐)

베크렐선의 발견은 당시 여러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2년 후 퀴리부부에 의해 자연계의 원소들 중에는 베크렐선과 유사한 현상을 보이는 다양한 물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퀴리부부는 이들 물질의 성질에 대해 '방사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후 새로운 방사능물질인 토륨, 폴로늄, 라듐 등이 발견된다.
베크렐은 1903년 방사선 발견에 공헌한 사실을 인정받아 퀴리부부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마리 퀴리’(왼쪽)의 딸 ‘이렌 졸리오 퀴리‘‘이렌’이 방사능에 노출돼 혹이 난 엄마의 손을 만지고 있다-
‘마리 퀴리’(왼쪽)의 딸 ‘이렌 졸리오 퀴리‘‘이렌’이 방사능에 노출돼 혹이 난 엄마의 손을 만지고 있다-

‘마리 퀴리’(퀴리부인)는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 및 화학자로,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자이다. 1903년, 라듐 연구로 마리는 남편 ‘피에르’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고, 1907년에는 라듐원자량 정밀측정에 성공하였으며 1910년에는 금석라듐의 분리에 관한 업적을 이루었다. 이듬해에는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과 라듐의 성질, 그 화합물 연구의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가 되었다. 

우라늄 광석이 방사선을 방출하는 성질, 즉 ‘방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퀴리는 우라늄뿐 아니라 라듐도 방사선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이 위대한 여성과학자에게 노벨상의 영광과 죽음을 안겨준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사용되었고, 화학원소 ‘퀴륨’에도 그녀의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마리 퀴리’의 자녀 교육 방법 중에 ‘품앗이 교육’이 유명하다. 마리는 이상적인 자녀교육을 위해 품앗이 교육을 기획하고 자신이 재직 중이던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교수들을 초청하여 과학, 문학, 역사 등 분야 별로 자녀들을 위한 품앗이 교육 팀을 구성했다. 큰 딸 ‘이렌’을 포함하여 10명 안팎의 아이들을 세계적인 석학들이 직접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마리 퀴리’와 동료 교수들은 교과지식은 물론이요 다양한 교습방법과 폭 넓고 심오한 지식들을 그들의 자녀들 교육에 아낌없이 제공했으며 이렇게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장차 훌륭한 학자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퀴리부부의 맏딸인 ‘이렌’은 원자물리학자이다. ‘이렌’과 남편 ‘졸리오 퀴리’는 퀴리 부부의 연구열정을 어어 받아 일생을 과학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몸을 바쳤다. 1933년부터 2년 동안에 ‘졸리오 퀴리’부부는 그때까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공방사능의 현상을 발견하게 되고, 이 업적으로 1935년에 부부가 공동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렌’은 어머니 ‘마리 퀴리’와 너무도 흡사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처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었고 대학졸업 후 동료과학자와 결혼했으며 부부가 공동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방사능실험 연구 후유증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사망하게 된 것까지도 어머니 ‘마리 퀴리’와 너무도 흡사한 삶을 살았다.

차녀 ‘이브 퀴리’의 남편 ‘헨리 라부이스 퀴리’는 유니세프 대표로서 196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87년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이브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유니세프 활동에 열중했고 2005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나폴레옹 1세가 1802년에 제정한 가장 명예로운 프랑스 훈장’)을 받았다.
                                       (다음호에 계속)

_ 김영진 박사 
조선치대졸업(1981), 동대학원에서 ‘치과방사선학’으로 석사, 박사학위 취득.
제 23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제 30회 보건의 날 ‘대한민국국민포장’ 수훈
前)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심사위원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