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 1882~1963)
프랑스의 화가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중요한 미술사조인 입체파를 창시하고 발전시킨 작가이다.
건축 장식사인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00년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수학하며 야수파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7년부터는 세잔의 구축적인 작풍에 열중하여 이를 연구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 미술을 확립하고 전개시키고 있다.
분석적 입체파 시대의 브라크는 피카소와 공동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서로 작품의 스타일에서 유사함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최초로 1912년 파피에 콜레를 시도하였던 그는 피카소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보이며 독창적인 그만의 독자성을 나타낸다.
1912년경에는 P. 클레와 그림물감에 모래를 섞는 등 콜라주라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기도 하였던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징집되어 부상하였으나, 소집이 해제된 1917년부터 다시 왕성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피카소가 카멜레온처럼 자주 변모하는 데 비해 그는 자신의 본래 개성에 따라 차분히 큐비즘의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프랑스인 특유의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세잔의 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전개시켜 나갔으며, 주도적으로 입체파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의 회화작품은 대담한 구도와 가라앉은 색 배합, 차분하고 묵상적인 분위기를 지닌 정물들이 특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항상 이성과 감각의 미묘한 조화를 최대한 중시하는 프랑스적인 전통이 풍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채감은 만년에 이를수록 더욱 우아한 세련미를 더하였다. 주요 작품에 「앙베르 항구」, 「에스타크의 집」, 「기타를 든 남자』 등이 있다.
초기에 풍경을 주로 그렸던 그는 이후 정물과 실내풍경등을 주로 다루었던 1905년 접한 '야수파' 전시를 통해 받은 주관적 색채에 대한 영향으로 입체파 미술의 형성을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참전 후 종합적 입체파 운동에 가담하였던 그는 이후 1917~1918년 에 나름대로 독자적인 입체파 양식을 개발하여 기하학적이면서 강렬한 색채의 추상 적인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에스타크의 집(House at L'Estague)
피카소는 최초의 입체파 작품 「아비뇽의 여인들」로 처음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세잔을 높이 평가하여 초기 입체파 작품에 기하학적 형태를 적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브라크였다. 1908년 여름 프랑스 남부에서 매우 혁신적으로 그려진 「에스타크의 집」은 이미 분석적 입체파의 초기에 해당하는 특유의 평면성과 차분한 색채, 뒤틀린 원근법 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입체파(Cubism)’라는 명칭을 얻게 한 작품으로, 그해 가을에 칸바일러의 화랑의 전시회에 출품된 이 작품에 대해, 파리의 비평가인 루이 보생이 ‘정 6면체들’(Les Calves)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12년 그는 이 방향으로 더욱 정진하여 「과일접시와 유리잔Fruit Dish and Glass)」이라는 작품에서 3조각의 벽지를 붙임으로써 일반적으로 파피에 콜레(papier colle) 기법을 창안했다.
휘어진 나무에 상자 같은 집들, 이 그림과 아주 흡사한 그림으로 피카소의 ‘저수지’가 있는데, 집의 형체가 너무도 똑같다. 이때 브라크는 에스파니아에 있었고, 피카소는 라류 데 보와에 있어, 각각 따로 풍경을 그렸는데, 이렇게 조형 형식이 유사한 그림이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 해인 1907년에 열렸던 ‘세잔의 대회고전’을 통해 두 사람이 모두 세잔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브라크는 에스타크에서 얻은 다수의 풍경화중에서 7점을 살롱 도통느에 출품했는데, 5점이 낙선하고 2점만 입선하게 되는데, 그것마저 찾다가 칸 바일러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다.
살롱 도톤느의 심사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마티스는 이 「에스타크의 집」을 평할때 ‘작은 큐브’라는 용어를 썼고, 비평가 보셀이 이 용어를 빌어 사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새로운 미학의 명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그림은 아직 자연의 대상이 남아 있지만, 화면 공간 속에 실체의 구조감을 살리려는 의도에서 대상을 대담하게 단순화하고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하기 시작한 입체파 회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바이올린과 주전자 (Violin and Pitcher)
1911년 여름, 브라크는 피카소와 함께 피레네 산맥 가까운 소읍 세레로 간다. 여기서 두 사람의 큐비즘 이론은 최절정에 이른다. 같은 시기에 포르투갈 사람이라는 작품과 동일하게 기타를 안고 있는 한 사나이가 주제가 되고 있다. 바아 내부의 정경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왼쪽 위에, 무대의 막을 열고 닫는 데 쓰이는 줄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바아의 무대 위에서 음악가가 기타를 치고 있는 그림인 것이다. 색채는 황·갈·회·청을 주색으로 하지만 모노크롬을 기조로 색다른 분위기와 터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치밀하고 잘 정리된 작품으로 「포르투갈 사람」과 함께 소위 분석적 큐비즘의 완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