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을 해독하는 단 하나의 열쇠

그 기원을 따져보면 감정은 신체적 흥분을 통해 우리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주변의 무언가를 알아채게 하려는데서 유래했다. 화학반응과 지각으로 감정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변환해야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뇌에 서 감정이 처리되는 곳은 언어나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이 엇나가거나 부정확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내가 X 라는 인물에게 분노를 느낄 때 실제로 그 감정의 근원은 부러움일 수도 있다. 의식 적으로 인식은 못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X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X가 가진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러움이란 결코 편안해질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걸 더 받아들이기 쉬운 감정, 즉 분노나 혐오, 원망등으로 번역한다. 또 다른 예를 들 어보면 우리가 좌절감이나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예컨대 Y가 내 앞을 지나가면 우리는 운 나쁜 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정작 내 분노는 다른 이유 로 촉발되었고 지금 나는 Y가 저지른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도하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혹은 내가 정말로 Z라는 사람에게 화가 났어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 분노는 오랫동안 내 안에 잠자고 있었고 내게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과거에 내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누군가 아마도 부모 중 한명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의 분노가 Z를 향하는 것은 Z가 그사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내 감정의 근원이나 그 감정이 초래한 전반적 기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어떻게든 그 감정을 해석해서 언어로 변환하려고 시도해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이나 변환은 틀린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는 더 간단한 해석 혹은 내마음에 드는 해석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고, 끝끝내 어느 감정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가 우울함을 느낄 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감정에는 이렇게 무의식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감정으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충동적 행동을 중단하거나 예방하는 것 역시 극히 힘든 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무언가를 버리고 떠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60페이지 유아기의 심리적 방아쇠’ 참조)

사회적 동물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감정의 소통기능은 곤란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다른 감정이면서 분노를 표출하거나 다른 대상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할 경우 상대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는 공격에 대한 반응을 하고 오해가 오해를 낳으면서 폭포수효과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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