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예감」, 1936년, 캔버스에 유채, 100/99cm 미국필라델피아 미술관
「내란의 예감」, 1936년, 캔버스에 유채, 100/99cm 미국필라델피아 미술관

내란의 예감 (Premonition of Civil War)

이 작품은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기 전 32세의 달리가 당시 전쟁을 피해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동안 제작한 것으로, 그가 예감한 전쟁에 대한 공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달리 가 스페인 내란 발발 6개월 전에 완성하여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와 동일한 전쟁의 잔혹함 을 담은 정치적인 작품이다.

탐욕의 화신을 상징적으로 등장시켜 공격적인 식욕을 들추어내 전쟁의 참상이 빚 어내는 죽음을 함축적으로 잘 나타낸 작품이다. 화면 전면에 꿈틀대고 있는 교살당한 신체의 젓가슴 속에서 탐욕스런 손아귀가 뻗쳐져 있고 으깨어진 신체의 파편들이 흐느적거리며 마치 아귀다툼하는 전쟁 속 인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듯하다.

제멋대로 결합된 뒤틀린 육체와 땅에서 흐물거리는 내장은 전쟁의 참상을 나타내 며, 사지가 잘려 나간 인물이 자신의 발에 의해 다시 짓밟히는 장면은 스페인의 자기 파멸을 암시적으로 보여 준다. 한쪽 손으로는 근육이 불거지도록 가슴을 부여잡고 있어 잔인한 성폭력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 화면의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찢으며 자해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내란의 골육상쟁적인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달리는 온몸이 찢겨져 고통으로 절규하는 인체를 커다란 화면에 그림과 동시에 그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아무일 없다는 듯 흘러가게 하여 전쟁의 잔혹상을 더욱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직후 스페인에서는 파시스트 독재자인 프랑코의 군사반란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곧 최소한 50만 명 이상이 처형, 살해, 암살되었던 스페인 내란으로 이어졌다.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1898~1967)

르네마그리트 (1898~1967)
르네마그리트 (1898~1967)

벨기에 출생의 마그리트는 어린 시절 자살한 어머니에 대 한 영향으로 미술을 마술적이며 계시적 매체로 인식하여 회 화의 환상적인 특징을 강조한 양식을 확립하였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나의 그림을 상징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그 물건 속에서 상징적 의도를 찾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는 그 용도를 찾을 수 없고 회화를 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미를 찾게 된다.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해 의지할 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게 매달릴 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상징적 의 미를 찾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시적 요소와 이미지의 신비함을 간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신비함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떨쳐 버리고 싶어할 것이다. (...) '이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만약 신비함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할 것이다.”

1916년 브뤼셀의 미술학교에서 시작된 그의 초기 화풍은 키리코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전통 회화기법을 포기하였다. 대상의 외향을 아무 꾸민 없이 차갑게 재현하는 것을 의도하였던 그는 고전적인 색상의 조화나 대비효과등을 거부하고, 시작 분위기의 독창적인 화면을 창출하였다. 1926년 문학가들과 초현실주의 그룹을 형성하고 1927년 이후 본격적인 이중 이미지의 우연한 만남이나 환상세계를 그리기 시작하며 기호론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그러지는 대상의 세부학대, 연관성 없는 두 개 사물의 만남, 무생물을 생명 있는 미술로 도치, 전혀 다른 모습의 생물체 변형등을 통해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 상상과 혼돈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점 등이 특징적이다. 그는 서로 다른 의미의 사물들을 하나로 결합시키거나 사 물이 갖는 고유의 이미지를 변형시켜 전혀 다른 의미의 초현실적 이미지를 화면 속에 탄생시키는 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된다.
 

「이미지의 반역: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마그리트, 1929년
「이미지의 반역: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마그리트, 1929년

이미지의 반역: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The Treachery of Image)

이 작품은 회화가 가지는 인식의 영역을 질문함으로써 회화의 본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 명확하게 그려진 파이프 한 개, 그리고 동시에 그 밑에는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파이프를 그려 넣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는 그의 반어적 표현에 캔버스 앞에 선 관람객들은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려진 파이프 이미지는 파이프처럼 생긴 가짜의 파이프인지, 아니면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이것은 실제 파이프는 아니다 라는 의미인지, 또는 이미지와 글자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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