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버트 린턴 Norbert Lynton
인간의 모든 행위는 표현적이며, 동작은 의도적으로 표현된 행위이다. 모든 예술은 작가와 그가 작업하던 상황의 표현이다. 그러나 일부 예술은 강한 감정과 감정으로 충만된 메시지를 전하거나 그 감정을 발산시켜주는 시각적 동작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도록 의도되어 있다. 그러한 예술이 곧 표현주의 예술인 것이다.
20세기 미술의 대부분은, 특히 중부 유럽의 미술은 이와 같은 종류였으며, 거기엔 표현주의라는 라벨이 붙여져왔다(문학, 건축, 음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교될 만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표현주의라고 불리는 운동은 결코 없었다.
게다가 물론 표현력의 강화가 20세기 미술에서만 특유한 것도 아니다. 특히 위기의 시대란 그 시대의 불안을 예술작품에 반영시키는 예술가들을 산출하는 것 같다. 일단 예술가의 개성이 예술작품의 특성을 결정짓는 요소로 인정되면 문예 부흥기에도 꾸준히 그랬던것처럼ㅡ -예술은 자기 계시의 수단으로서 더욱 더 공공연히 그 기능을 넓게 발휘하게 된다. 현대 개인주의의 상황 속에서 자기 계시란 극단적으로까지 나갈 수 있지만, 현대의 표현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혁신이란, 적어도 추상적 구성이 주제화만큼이나 효과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었다.
표현적인 수단을 위한 (의미라는 알약의 표면을 적당히 사탕발림시키는 정도의) 도구 구실을 하던 주제가 완전히 폐기될 수도 있음을 알아 내었다. 색채와 형태, 붓자국과 질감, 크기와 규모의 표현력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최근의 발전은 19세기 초엽 이래로, 직접적으로 감동을 주는 음악의 특성을 미술가들이 깨달아 그에 의해 고무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술이나 묘사의 도움도 없고, 심지어는 연상적인 반영에의 호소 없이도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인 한 형태가 나타났다. 음악과 같이 미술도 낭만주의 역시 그 이전의 몇 세기에 걸쳐 이론만을 고수하지 않던 개방적 예술가들이 누려왔던 자유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했고 이는 민족주의에 의해 더욱 추진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영웅적인 선구자들로 볼 수도 있었는데 이들은 학술원적 전통에 교체안을 제시했다.
종교개혁 전야의 뒤러(Durer), 알트도르퍼 (Altdorfer), 보슈(Bosch) 등의 미술은 표현주의적 자질과 각별히 20세기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묵시적 불안감을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 당대의 화가로 1515년 경에 유명한 이젠하임 제단화를 그린 그뤼네발트는 현재까지도 찬탄을 불러일으켜 아예 복사품을 만들기도 한다.
1918년 뮌헨에서 출판된,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독일 계몽사를 보여주는 <중세 독일의 표현주의적 세밀화>란 제목으로번역된 책은 현대의 표현주의자들과 그 대중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그 당시의 대중들은 민속예술과 비유럽적인 예술, 여러 종류의 원시적 예술, 아동들과 광기어린 예술에 대한 문헌들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 모든 것들은 고전적인 이상주의를 대신하는 역할로서 독자들과 친근해졌다
그러나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고전주의가 핵심을 이루고 있는 서구미술의 경우에도 ㅡ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워낙 성행했으므로 다른 나라들은 자기네 천재들이 생소한 기법을 쓴다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다고 나중에야 주장할 수 있었다.
표현주의를 뒷받침할 만한 요소는 있었다. 극적인 명암, 풍부한 색채와 개성적이고 열정적인 터치를 보여주는 베네치아파의 전통은 다소 표현주의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베네치아파는 엘 그레코(그의 지나친 명성은 20세기초엽부터 시작되었다)와 렘브란트 같은 화가들을 배출시켰다.
심지어 고전적 이론이 정립되고 그것을 전파하기 위한 미술원이 설립된 중부 이탈리아에서도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는 자신의 개인적 충동에 휘말려 격렬하고 일그러진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그 후에도 여러 시시한 작가들이 대를 이어 그를 모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포화상태 같은 회화기법과 구성적이고 조형적으로 일그러진 형태들이 현대 표현주의의 두 가지 중요한 예이다.
출처 - 『현대미술의 개념』 니코스스탠코스편 | 성완경 | 김안례譯 | 문예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