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모종들이 한낮의 뜨거운 여름볕을 온몸으로 맞고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며 어느새 황금 들판을 이뤘다. 곱디 고운 생명의 초록빛을 뽐내던 벼꽃이 햇빛과 물, 그리고 바람을 자양분 삼아 여름을 훌쩍 지나 성숙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자연의 힘은 그런 것이다. 스스로 견디고 때가 되면 숙일 줄 알고 때가 되면 다음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놓아버린다. 얼마 안 있으면 나무들은 단풍으로 울긋불긋하게 옷색을 갈아입고 올 한해 마지막 산의 화려함을 장식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의 변화는 자연에 대한 시간의 믿음이다. 계절이 간혹 빠르고 느릴 수는 있어도 지나칠 수는 없다. 땀 흘린 농부의 수고가 수확의 많고 적음을 탓할 수는 있어도 헛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땅에 대한 생명의 믿음이 없다면 농부는 씨앗을 뿌리지 않았을 것이다.
수확은 뿌린 자의 기쁨이다. 결실은 거둔 자의 축복이다. 감사는 겸손한 자의 행복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성실함을 말한다.
옛날 한 할아버지가 살았다. 할아버지한테는 세 아들이 있어서 농사일도 끄떡없이 해냈다. 할아버지는 논밭을 세 아들 중 한 아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농사를 잘 거두려면 며느리가 살림을 잘 해야겠다 싶어서 슬기롭고 부지런한 한 며느리를 뽑아서 논밭을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짚신을 심으려고 짚을 추리는 데 벼 이삭 세 개가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세 며느리를 불러서 벼 이삭 한 개씩 나눠줬다. 맏며느리는 벼 이삭을 까서 밥 지을 때 털어 넣었다. 둘째며느리는 벼 이삭을 끈으로 묶어서 단단히 매달아뒀다. 그런데 막내며느리는 소쿠리로 덫을 만들고는 벼 이삭을 미끼로 뒀다. 그러자 배고픈 참새 한 마리가 벼 이삭을 쪼아 먹으려다가 냉큼 걸리고 말았다.
막내며느리는 참새를 계란과 바꾸고 계란을 병아리로 병아리를 다시 암탉으로 그리고 그 암탉을 팔아 돼지로 바꾸고 돼지도 새끼를 내어 다시 송아지를 사서 누런 황소로 키웠다. 할아버지는 막내며느리에게 논밭을 물려줬고 지혜로운 며느리는 힘든 농사일을 척척 해내며 수확한 곡식을 골고루 나눠 삼형제가 사이좋게 살았다고 한다.
강한 자만이 산을 넘을 수 있다. 산을 넘으려면 힘든 고통도 이겨내야 하고 올바른 길을 찾을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가을은 수확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축복을 알게 해주며 또다른 결실을 위해 감사의 마음으로 순종케 한다.
자신의 거둠에 감사한 자는 겸손함의 힘을 알고 씨앗을 뿌린 자는 기다릴 줄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