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을 해독하는 단 하나의 열쇠
두려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의 실수다.
BC 432년 한 해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대표들이 아테네 통치위원회를 찾아와 새로운 평화조약안을 제시했다고 했다. 만약 아테네가 새로운 조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스파르타는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 원수지간으로 어느모로 보나 서로 반대편 극단에 속하는 국가였다.
아테네는 인근 여러 민주국가의 선봉장역할을 했고,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인으로 구성된 여러 과두정연합을 이끌었다.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부로 지중해 상권을 꽉 잡고 있었고, 스파르타는 누가 봐도 군대에 의존하는 군국주의 국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전면전은 되도록 피하고 있었다. 전쟁에 패한 쪽은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아테네로서는 그동안 쌓아 올린 부와 민주주의 전통이 일거에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불가피해 보였고 일전의 날이 머지 않았다는 느낌이 도시 전체를 휘감았다.
며칠 후 아크로폴리스가 내려다 보이는 프닉스언덕에서 민회가 소집됐다. 사람들은 스파르타의 최후통첩을 놓고 어떻게 할 지를 의논했다. 아테네 민회는 모든 남자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었고, 이날은 1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프닉스 언덕으로 몰려들었다. 강경파들은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그들은 아테네가 선수를 쳐서 스파르타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육지전에서 스파르타 군대를 무찌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파르타를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저들의 노림수에 완전히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온건파들은 얼마든지 평화조약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으나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오히려 두려움을 노출시켜 스파르타의 간덩이만 키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스파르타는 군비를 확장할 시간만 벌게 된다.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감정이 고조되면서 고성이 오갔으나 뾰족한 대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후도 거의 저물어갈 때쯤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낯익은 인물이 발언을 하려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페리클레스, 이제 환갑을 넘긴 아테네의 원으로 정치가였다. 페리클레스는 시민들의 총애를 받았고 그의 의견은 누구의 의견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그가 좀 특이한 리더라고 생각했다.
페리클레스는 정치가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웠다. 그가 어떻게 정계에 입문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토록 성공해 큰 권력자가 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는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게 없는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