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원장은 경북에 개원하고 있는 치과의사다.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고요한 원장은 치과의사이자 작가라 할 수 있다.
본 지는 15회에 걸쳐 고요한 원장이 중국을 오가면서 느꼈던 진료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치과의사로서의 삶과 애환을 통해 잔잔히 그려가는 그의 논조는 공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편집자주)
공항, 항구, 기차역은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이다. 떠나고 도착하며 갈아탄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어로도 터미널, 스테이션 같은 공용의 이름을 가진다. 동시에 각각의 장소는 내 안에 결이 다른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노랫말과 책 속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에 워낙 많이 나와 눈과 귀와 입에 익고, 그 인상들마저 머리 속에 박혀버린 것인가? 아니면 삶 속 어딘가에서 꾸준히 그들과 만나 함께해왔던 까닭일까?
‘공항’ 하면 제일 먼저 항공사 승무원 무리가 삼삼오오 모여있거나 이동하는 장면이 보인다. 그리고 제주도 인천 김포, 신혼여행 졸업여행, 성장 발전 확장 비상(飛翔), 드라마 파일럿, 새 출발, 이민과 유학, 돈까스와 햄버거 등의 단어들이 연상된다.
항구가 간직하고 있는 단어는 연안부두 목포 흥남부두 부산항, 눈물, 슬픔과 애환, 전쟁 피난 후퇴, 실연과 배신, 떠나는 배와 남겨진 여자, 섬마을, 시모노세키 나폴리 시드니 리우, 원양어선, 입양, 희망과 풍요, 파도와 시련, 폭풍우, 오뎅과 김밥 따위이다.
기차역 하면 늘 기적소리부터 들린다. 기차통학 교복 책가방 들을 위시해서 동력과 산업, 수학여행과 야유회, 병영훈련 입영열차, 전쟁, 톨스토이, 추억, 흑백영화, 설국열차, 새벽안개, 눈, 커피자판기, 가락국수에 삶은 계란까지 떠오르게 한다.
기차와 인연이 각별한 나는 삶 자체가 인생열차다. 지나온 삶의 궤적 역시 롤러코스터였다. 예측과는 늘 동떨어지고 불규칙한 구간투성이였다. 기차와 함께 긴 터널을 지나고 드넓은 강을 건넜다. 꾸불꾸불한 험로를 꾸준히 달려왔으며, 지금도 떠난다.
학창시절 기차 통학하던 때가 생각난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10년 가까이 기차 타고 다녔으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차와 나의 만남이 예사 인연만은 아니다. 정기권을 사서 가장 많이 이용했던 통근 완행열차부터, 군인 전용 칸이 달린 야간 군용열차, 고교 수학여행 열차, 보급 및 특급열차, 대학시절 전방 병영체험 열차,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와 통일호, 작금의 무궁화 새마을 KTX, 중국 대륙의 수많은 고속철과 야간 침대 열차, 출장지에서 곧장 딸아이를 보러 갈 때 타던 중국과 홍콩을 잇는 동차, 홍콩과 다롄(대련, 大连)의 트램들, SRT, 귀국 후 혼자 다녀온 기차여행의 눈꽃열차까지. 기차에 얽힌 추억들이 참 많고도 많다.
삶을 가로질러 온 인생열차는 그리 세심하지 않다. 내게 딱 맞는 운행 편은 열차시각표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맞으면 가고자 하는 역에 세워주지 않고, 원하는 역에 정차하는 열차는 시간이 안 맞다. 제 시간에 도착하려면 전 역에 내려 걸어가거나, 아니면 전날 미리 가 있는 수밖에 없다.
인생열차는 운행서비스도 엉망이다. 조금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으면 예고도 없이 지연되고, 시간 맞춰 나오면 일찍 떠나고 없다. 타고 있으면 왜 또 출발하지 않는 건지. 제대로 된 안내방송조차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열차는 한 번도 정시에 출발한 적이 없다.
제때 도착한 적은 더더욱 없다. 내 시간이 남으면 일찍 도착하고, 시간이 빠듯해 가는 내내 가슴 졸일 때는 십중팔구 연착이다. 열차는 내 시간에 관심이 없다. 내 시계와 열차의 시계가 다르고, 기차역 시계탑의 시간 또한 다르다.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속도마저 제각각이다.
열차 편을 고르는 건 나그네의 자유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여정은 그리 자유롭지가 못하다. 내가 타고 싶거나 꼭 타야 하는 열차는 늘 빠듯하다.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곳과 선호하는 시간대가 비슷하니 꼭 한두 열차에 쏠리기 마련이다. 서둘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고, 가까스로 승차권을 구하더라도 누군가가 정해준 날짜의 정해진 열차를 타야 한다.
정해진 객실 정해진 좌석에 앉아야 한다. 특실 혹은 일반실, 순방향 혹은 역방향 따위의 불평등 또한 그가 정해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에 나오는 가상의 절대자 ‘빅 브라더’가 말이다. 손님이 없을 땐 창가 쪽 자리, 많을 땐 통로 자리. 뭐 이런 나의 작은 행복도 무시되기 일쑤다. 동승자는 내 뜻과 상관없이 정해질 때가 허다하고, 가끔은 낯선 자가 내 자리에 앉아있기도 하다.
한번쯤 목적지 없이 떠나 아무 역에나 내려보고 싶다. 누군가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달리는 궤도열차에서 내려 그냥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실컷 걷다가, 돌아오는 막차를 놓쳐 보는 건 어떨까? 내리는 역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궤도 없는 은하철도도 좋겠다.
야간열차는 밤새 대륙의 각지를 향해 지도 위를 달린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목적지 도시에 도달해 속이 텅텅 비도록 승객을 토해낸다. 국방색의 객차, 성에 낀 객실 유리창, 그리고 끝없이 피어 오르는 난방스팀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다. 역시 국방색의 인민군 누비 코트를 입고 손전등을 든 채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는 역무원도 눈에 들어온다. 마차를 끌고 밤을 달려온 마소처럼 그의 코와 입에서도 간헐적으로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기적소리가 잦더니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딱딱 끊어 불어대는 텅잉 주법의 호각소리가 들린다. 열차 출발이 가까웠나 보다.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 백작이 맞잡은 손을 놓을 때가 됐다. 기적은 건널목을 지나고 새로운 역에 진출입할 때마다 밤새 이렇게 울려댈 테지.
야간열차는 역시 동토의 눈 내리는 겨울이 제격이다. 북녘의 긴 밤을 달리게 되면 아무래도 객차 속에는 한 편의 야화라도 더 깃들게 마련이니까. 아가사 크리스티의 페르소나 제시카의 모습이 보인다. 한 손으로 열차 승강문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어서 타라고 나에게 손짓한다. 그녀의 신비로운 여행에 자신이 안내를 맡을 모양이다.
야간열차를 타는 건 몇 년 만이다. 실은 그전에도 일행이 있었지 혼자서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열차표에 찍힌 바에 따르면 내 자리는 9호 객차 6호실이다. 열차에 올라 복도를 지난다. 왼편으로 방들이 쭉 붙어 있고 오른쪽은 바로 차창이다. 9호 객차는 전체가 침대 객실로만 이루어져 있다. 문이 열린 방들을 곁눈질로 잇달아 훑어가니, 모두 4인용 객실이다. 방마다 양 쪽 벽으로 복층 침대가 붙어있고, 차창 쪽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다.
기억대로다. 그런데 하필 여섯 번째 방은 문이 닫혀 있다. 문에 붙은 표지를 보니 내 자리는 오른쪽 침대 위층 침상이다.
미닫이문을 열었다. 답답하고 비릿한 공기가 훅 하고 나를 뒤로 불어낸다. 내 자리를 제외한 세 개의 침상에는 승객이 있다.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신발을 신은 채 제각기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팔다리가 김밥 꽁지의 단무지처럼 침대 밖으로 튀어나온 채로. 누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니다. 셋은 거의 동시에 스마트폰 위로 고개를 빼서는 나를 한번 흘깃 스캔 하더니, 이내 각자의 폰 속 세상으로 돌아간다. 서로 일행은 아닌 모양이다.
‘방 안으로 들어선다. 때를 놓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들과 인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 뒤로 문을 닫는다. 캐리어를 바닥 어딘가에 눕힌다. 사다리를 타고 이 층으로 올라간다. 신발은 이쯤에서 벗나 마나? 두 평도 안 될 숨막히는 공간에서 일면식도 없는 중국인 승객들과 숨을 섞으며 밤을 지낸다.
아니, 지샌다 인가?’ 머리 속으로 대략 입실 프로세스를 그려보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다. 혼자 기차여행하며 침대실을 택했으니 각오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고드름 달린 장승처럼 복도에 멈춰선 채 생각마저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때마침 제시카가 지나간다. 차장은 인민군복과 구분이 가지 않는 제복 차림에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있다. 내가 좌석이 있는 객실이 어디냐 물으니, 그녀는 네모난 표정으로 자기가 가고 있던 것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나는 침대 자리를 잠정 포기하고 일단 그녀를 따라 나섰다. 침대 객실이 끝나는 지점에 바로 앞 객차와의 연결부 복도 양쪽으로 화장실이 나온다.
그녀가 허리띠에 찬 손가락만 한 열쇠로 화장실 문을 따주자, 엉거주춤 바지춤을 잡고 서있던 승객들이 환풍기 속으로 연기가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그 안으로 사라진다. 침대 객차 두 량을 더 지나자 식당 칸이 나오고, 다시 그 너머로 제시카가 지목했던 좌석 칸으로 추정되는 객차 문이 보인다. 무심히 식당을 지나 좌석 객차에 가까워질수록 내 절망도 점점 가시화된다. 객차 사이의 차문 몇 발짝 앞에서 나는 또다시 굳어버렸다.
아뿔싸! 좌석 객차 안은 앉을 자리는커녕 발 디딜 틈도 없다. 그야말로 피난열차다. 문을 열면 마치 ‘꼬꼬댁!’ 하고 암탉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튀어 나올 듯하다. 3등 객실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의 민초들로 빵빵하게 부풀어올라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영화 ‘설국열차’가 연상된다. 춥고 굶주린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열차 맨 뒤쪽의 꼬리 칸 말이다. 얼굴에 숯검정이 묻은 송강호를 필두로 여러 인종의 가난한 승객들이 포진한 영화 포스터가 3등 객차 위에 겹쳐진다.
요행히 식당객차엔 빈 테이블 하나가 남아 있다. 나는 잽싸게 테이블과 의자 사이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자리를 확보한다. 식당칸에 있는 수십 개의 눈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테니스 경기장의 관객들처럼, 시선들도 왔다 갔다 날 따라다니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의자에 엉덩이를 들여 넣으며 식당칸 내부 풍경을 파노라마로 대충 한번 찍고 테이블로 돌아온 내 눈에는 플라스틱 메뉴 판 하나가 들어온다.
무슨 국물 같은 걸로 잔뜩 얼룩지고 구겨진 차이단(차림표, 菜单) 종이가 투명 플라스틱 판 사이에 끼워져 있다. 메뉴 판의 형상이 빈 접시를 앞에 두고 말없이 앉아 있는 식당 안 승객들의 군상과 겹쳐진다. 금새라도 터질 듯한 3등 객차의 이미지도 포개진다. 음식을 시켜먹어야 자리에 대한 모종의 권리가 주어지는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곧바로 열차에 올라 식욕이 전혀 없는데. 그래도 눈치 안 보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려면 나도 뭔가를 시켜야겠지. 차이단은 매우 간단하다. 흑판에 써서 이젤 위에 걸쳐놓은 오늘의 메뉴나 주방장 추천메뉴 수준이다. 고개를 들자 나만 보고 있었다는 표정의 승무원과 눈이 마주친다. 내가 메뉴 판을 집어 들어 보이는데 그는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다. 나는 25위안(한화 약 4,000원)짜리 계란볶음 타오찬(세트메뉴, 套餐)을 주문했다.
대각선 테이블에 식당차 내에서는 유일하게 아이를 데리고 여행 중인 3인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남매는 두세 살 터울로 아직 학령기가 채 안 돼 보이고, 엄마는 30대 중반 가량의 기골이 장대한 여인이다. 여인은 뒷머리를 길게 하나로 땋고, 동물 가죽 소재로 된 조끼를 입고 있다. 북방의 기마민족을 연상케 한다. 북방여인은 아들은 안아주고 입맞추고 하면서, 딸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무슨 일인지 눈을 위아래로 부라리더니, 살이라도 벨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딸아이를 마구 찌른다. 왼손으로 멱살을 잡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오른손으로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동상(凍傷)에서 자유로울 날 없어 보이는 사과 같은 소녀의 얼굴은 사정없이 날아오는 솥뚜껑만 한 손을 무표정하게 받아내고 있다. 울지도 저항하지도 않는다. 식당 안의 누구도 입을 대거나 말리지 않는다. 나만 몸서리치고, 다들 대수롭지 않은 듯 방관만 하고 있다.
한참을 맞고 난 아이는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남동생을 데리고 식당칸 안을 돌아다닌다. 이리저리 테이블을 돌며 말을 걸더니, 넉살 좋게 한 테이블에 엉덩이를 붙인다. 승객이 집에서 챙겨온 듯한 만두와 고구마 같은 음식을 얻어서는 동생을 먹이고 자신도 먹는다. 아름다워야 할 오누이의 우애가 애잔하다. 아프고 슬퍼 보이기만 하다. ‘가련한 저 아이는 어떻게 받지도 못한 사랑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친딸이 아닌가? 아이의 행동은 유목생활을 연상시킨다.
익숙한 채집생활을 통해 토해내지 못한 절규를 지워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절대자 앞에서의 길들여진 슬픔인가?’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내 안에 깊숙이 각인된다. 아이에 대한 연민으로 나는 또 다시 몸서리친다.
다시 객차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앞 테이블에 앉은 승객과 식당차 승무원 간에 옥신각신 말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날 선 목소리들이 공중에서 펜싱 결투를 벌이는 듯하다. 객실 안 수십 개의 눈과 귀가 이번엔 그들에게로 쏠린다. 귀에 들어오는 단어 몇 개를 조합해보면, 주문한 금액에 따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승객은 음식을 추가할 생각도 식당칸에서 쫓겨날 마음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승산은 그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 승무원의 상업적인 공권력에 굴복해 얼마 못 가 테이블 위로 돈을 던지고 만다. 나머지 승객들은 초읽기에 들어간 자신들의 강요된 미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빅 브라더는 언제 어디서나 승리한다는 공식을 다시 한번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순간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나를 향해 철벅철벅 돌진해오고 있다. 주방장 모자를 쓰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은 사내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다. 내 바로 앞까지 와서는 다행히 옆 테이블로 방향을 휙 하고 튼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천만다행이다. 다스 주방장은 양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짚어 육중한 상체를 앞으로 들이밀더니, 그 큰 머리를 거북 목처럼 테이블 깊숙이 집어넣는다. 뒷모습이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그의 느끼한 표정이 엿보인다.
“형제여, 음식을 더 주문하라!”
제다이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마침 스윙도어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에서 승무원이 음식을 들고 나온다. 내게 주문을 받았던 바로 그자다. 입고 있는 조리사 옷은 몇 달은 빨지 않은 듯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족히 1m는 될 법한 거리까지만 와서는 테이블 위로 던지듯 음식을 내려놓고 사라진다. 밥은 한눈에 봐도 퍼석한 세숫대야 공기밥이다. 이건 지은 게 아니라 분명 스팀으로 찐 거다.
계란요리는 식용유일 거라 믿고 싶은 어떤 유류에 말은 고추 계란볶음이다. 젓가락으로 계란 한 덩이를 집어 올리자 기름이 주르륵 흐른다. 마치 처마끝에 달린 녹은 고드름이 낙수 하듯 하염없이 뚝뚝뚝뚝 떨어진다. 나는 젓가락을 놓고, 다시 메뉴 판을 집어 들었다. 가짓수가 몇 안 돼 처음 주문할 때 이미 다 외워버린 차이단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본다.
다음 호에는 베이징이 이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