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
1.
사드 문제로 중국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국기업에 대한 규제의 수위가 높아지고, 한국인의 비자 발급 절차도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한류 스타들은 향후 1년간 중국 내 공중파 방송에 출현할 수 없다.
팬사인회와 콘서트도 무더기로 취소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낳은 월드클래스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리던 순간에는 절로 욕지거리가 새나왔다. 그것도 오래 전에 자신들이 애원하다시피 초청했고, 바쁜 일정을 조율해가며 가까스로 성사가 된 순수 문화예술 분야에서 말이다.
문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막아지는 게 아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문화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흘렀다. 한 번도 역류한 적 없는 이 흐름은 19세기 말부터 일본열도에서 발원하기 시작했다. 최근 20여 년 전부터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21세기 아시아 문명의 발상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문화예술의 지구 자기장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는 형세다.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가수 싸이와 BTS,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등 대단한 기세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문화는 전류다. 항상 양극에서 음극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중국정부는 갖은 수단 방법을 동원해 막아보려 애쓰지만, 인민들은 어떻게든 한류 컨텐츠를 듣고 보고 쓰고 있다. 문화는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고 병들게 만드는 마약과는 다르다. 문화는 어둡고 습한 곳에 자라나는 독버섯이나 곰팡이가 아니라, 햇빛이 닿지 않는 사회의 음습한 곳 구석구석까지 더듬어 살펴내는 조용한 아침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제품을 사지 않고 한국식당에 가지 않는다. 교민들도 중국인과의 쓸데없는 접촉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외출과 외식을 자제하고 있다. 우리 교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된서리를 맞았다. 식사시간인데도 아예 손님이 없다. 평소에 괜찮던 사소한 일들을 문제 삼아 벌금 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업소가 속출하는가 하면, 급속한 영업수지 악화로 폐업을 하기도 한다. 특히 영세한 한국상인들이 문을 닫고 귀국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모습은 같은 교민으로서 지켜보기에 몹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인이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라 떠들어대며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태는 대국다운 모습은 아니다. 사드는 정치인들이 외교 능력으로 해결할 일이지 순진한 인민들의 애국심을 이용하고 또 호도해서는 안되지 않는가.
최근까지 우리가 일본여행 안 가기와 일본산 불매운동을 민간이 주도해 펼쳐온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매우 신사(紳士)적인 나라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국민 수준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사실 한반도에 사드를 설치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들라면 누구나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존재를 이야기할 것이다. 70여 년 전 일제의 손아귀에서 겨우 풀려나 아직 정신도 못 차린 힘없는 반도국가를 '미 영 소 중'이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토막 내놓고서는, 이제 와서 동북아의 평화 운운하며 다시 미중 간의 패권다툼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도 숟가락을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다. 참 웃기는 이야기다. 사드를 빌미로 다시 현 시점에서 각국의 이익을 놓고 먹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건 바보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대한민국 기술보부상이 하는 일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중국 각 지방정부는 병원들이 마케팅을 할 때 내가 한국의사임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병원 측에서도 홈페이지나 광고 등의 프로필에 걸린 태극마크를 당분간 내리는 게 좋겠다고 한다.
선양(沈阳, 심양)에서의 일이다. 진료를 마치고 저녁식사 자리였다. 병원 관계자 중 한 사람이 대뜸 사드 문제를 끄집어냈다.
"고원장은 사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쾌하던 식사 분위기는 일순간에 얼어붙어버렸다. 사드는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나는 물론이고 다른 중국인 누구도 함부로 거론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다. 내가 적당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경색된 분위기는 풀리지 않을 기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는,
"사드는 우리 백성들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하고 답했지만 정적은 이어진다. 다행히 잠시 후
"맞다. 그건 정치하는 사람들 문제다."
하며 중국인 관리자가 간여하자 꽁꽁 얼었던 기류가 풀리기 시작한다. 이내 상온을 회복해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진 마네킹들이 되살아나 움직임을 재개한다. 탁자에 내려졌던 젓가락들이 바빠지고, 말라붙었던 입술은 기름기를 입어 반짝이기 시작한다.
얼마 후 장수(강소, 江苏)성의 우시(무석, 无锡)에서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돌직구가 날아온다.
"고원장! 사드 치워야 하지 않나요!"
추상(秋霜)같은 말투다. 그래도 이번엔 선양에서 미리 백신을 맞아 둔 터라 나는 비교적 차분하게,
"사드는 우리 백성들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하고 똑같이 대꾸했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당신의! 생각을! 묻고! 있어요!"
하며 스타카토 식 어투로 단어마다 힘을 주어 재공격 해온다. 이번엔 이걸로 안 된다는 말이다. 목에 칼 부리를 댄 듯 온몸이 서늘하다.
참 고약하다. 평소 한국과 나에 대해 좋게만 이야기해왔던 중국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라 더욱 당혹스럽다. 식탁과 사람들 위로 내려앉은 서릿발이 이번에는 쉽사리 녹지 않는다. 자리한 중국인들 모두가 내 입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응변해야 할지 몰라 속이 타 들어간다. 중국와인 창청(长城, 만리장성) 한 모금으로 입을 축이자 다행히 그럴싸한 문장 하나가 퍼뜩 떠오른다. 일단 나라도 이 위기를 모면하고 보자 싶어,
"내일 내가 라오원(老文,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에게 전화 한 통 할게요." 하자 그제서야,
"하하하" 하며 고조되던 갈등 분위기가 한풀 꺾인다. 이럴 땐 기술보부상보다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임무가 내겐 훨씬 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 함께 건배합시다!"
이렇게 농담 형식으로라도 자신의 의견에 부합하는 답을 받아내고서야 겨우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사람들이 웃음을 되찾고 식사 분위기는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소통 방식이다. 중국에 와서 중국인들과 일하고 있는 너는 그래도 우리편이라고 말하라는 거다. 우리끼리라도 함께할 명분을 세워놓고 일하자는 것이다.
즐겁기만 하던 중국인 동료와의 저녁식사 자리도 이제 편치만은 않다. 나를 기다리는 환자와 병원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출장만큼이나 그들과의 만찬 자리도 늘 설레는 시간이었는데. 말로는 슝디(兄弟, 형제)요 같은 배를 타고 있다지만, 거친 풍랑이 일면 언제든 내려야 하는 모함 속의 초라한 구명보트가 내 자리임을 절감한다. 하기야 용병이라는 처지가 일상에도 늘 구명조끼를 입고 지내야 하는 처량한 난민 신세 아니던가.
2.
동생이 돌아왔다. 육 개월 만이다. Y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와 공부를 계속했다. 그 대단하다는 상하이 푸단대학(복단대학, 复旦大学)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결국 이곳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중국 역시 입학뿐만 아니라 교원 임용에도 외국인 특례가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어학과 교수 임용에 한국인을 우대하는 식이다. Y는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중국인 학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내국인 정규 티오로 임용된 그 대학 유일의 외국인이다. 한국청년이 중국에 와서 중국학생들에게 중국어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그와는 이곳 난징(남경, 南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후배였다.
난징은 장수성(江苏省, 강소성)의 성도다. 삼국지 오나라의 손권이 수도 삼은 이래로 남북조시대와 명나라를 거쳐 중국사의 무려 10개 나라에서 도읍을 지냈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개국수도로 정할 당시 난징의 지명은 금릉(金陵)이다. 다음대인 영락제가 연경(燕京)으로 천도하면서 두 도시의 이름을 각각 난징과 베이징(북경, 北京)으로 구별 개칭하였다고 한다.
1912 쑨원(孙文, 손문 손중산)의 중화민국, 장제스(蒋介石, 장개석)가 이끈 국민당도 난징을 수도로 삼았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국과 청나라의 난징조약이 체결된 도시이고, 일제의 난징대학살이 잔행된 어두운 역사도 가지고 있다.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양 손에 거머쥔 펄 벅의 장편소설 「대지」의 배경 가운데도 나온다.
중국에서 자란 미국인 펄은 이곳의 금릉대학(지금의 난징대학으로 중국의 대학 순위 6위에 해당하는 명문대)과 동남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독립운동가 겸 저술가 여운형이 그녀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난징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신라 소년 최치원이 청운의 꿈을 안고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고 현위 벼슬을 지낸 리수이(溧水, 율수)가 바로 이곳 난징의 한 현이다. 리수이는 현재 난징국제공항 옆에 붙어있는 고을이다. 최치원은 정치가보다 문장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황소의 난’ 시국에 황소를 떨게 만들었다는 ‘토황소격문’이 유명하다.
중국 국민당 시절 일제에 쫓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와 항저우(杭州, 항주)를 거쳐 쩐장(镇江, 진강)이라는 도시에 와 있었다. 쩐장은 난징과는 바로 인접한 장강 하류의 도시로, 한중 양국 정부가 좀더 긴밀하고도 효율적인 항일 투쟁을 펼치고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당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을 주축으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은 7억 중국인도 못한 일을 조그마한 반도국가의 청년 안중근과 윤봉길이 해냈다며 선생들에게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를 넘어 탄복하였다고 한다. 작금의 난징은 한국의 쟁쟁한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다. LG그룹의 화학 디스플레이 전자, 그리고 기아자동차와 금호타이어 등등.
중국인들과의 20년 가까운 현지생활로 잔뼈가 굵은 Y는 그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중국통(中国通)이다. 지금은 한중 간을 오가며 양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학술 교류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좋아하던 식당을 찾았다. 우리가족이 ‘세차장식당’ 혹은 줄여서 ‘세차장’이라 부르는 곳이다. 물론 이곳은 식당 상호가 따로 있지만, 이름이 하도 생소하고 어려워서 외워도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세차장과 바로 붙어있다는 지리적 특성에 착안해 우리가족은 식당 이름을 그렇게 명명하였다.
세차장은 지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중국 서민 음식점이다. 이곳에 오면 보통 두 번 감동하게 되는데, 음식 맛에 감동하고 계산을 하며 엄청 착한 가격에 다시 한번 감동 받는다. 네댓 명이 가서 10개가 넘는 요리에 술과 음료까지 배 터지도록 실컷 먹어도 한화로 오륙만 원밖에 안 나온다. 그러니 내가 모시고 간 한국손님들도 하나같이 이곳 식당들 가운데 세차장을 첫손에 꼽는다.
이른 시간임에도 식당은 이미 북새통이다. 동생이 너무 반갑고 그간 쌓인 이야기도 많다. 우리의 오감은 손님들로 가득 찬 넓은 세차장에서 우리 테이블 위의 음식과 이야기에만 완벽하게 줌-인 되어 있다. 간혹 바로 옆 테이블의 젊은 두 여성이 우리를 쳐다본다는 느낌 정도만 전해올 뿐.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가 근사해 보이나 보다 싶어 우쭐했다.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식당 내의 유일한 외국인에 대한 이질감 정도로만 간주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먹고 마시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난데없이 누군가 옆에서 소리를 지른다. 우리더러 “주문하는 소리가 안 들린다!”라며 “조용히 해달라!”는 것이다. 부지불식 간에 옆 테이블의 손님이 다섯 명의 남성으로 바뀌어 있고, 여직원이 주문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직원의 말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내용 또한 비상식적이다. 옆 자리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는 그제서야 그게 우리를 향한 따가운 시선임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한국인이 자기네 나라, 내국인 전용에 준하는 자기네 단골식당, 그것도 자기 테이블 바로 옆자리에서 한국말로 떠들며 식사하는 모습이 그들 눈과 귀에 거슬린 것이다. 더군다나 작금의 사드 시국에. 그래서 종업원에게 그렇게 에둘러 말하도록 시킨 것이리라. 중국인이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전달하고 의사를 관철시키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제 손에 피 묻히지 않고 내치겠다는 전략이다.
우리는 가급적 빨리 자리를 정리하기로 한다. 잠자코 음식만 먹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를 찍어내려는 그들의 저주스러운 눈초리는 계속해서 따갑게 와 닿는다. 피부라도 뚫고 들어올 것만 같다. 결국 우리는 남은 음식을 싸달라 하고,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서는 바삐 식당을 빠져 나온다.
집으로 왔다. 동생과 나는 일회용 투명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온 음식들을 펼쳐두고, 아직 개봉도 못한 이야기 상자들을 하나씩 열어간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뜨겁지만, 음식은 다 식어버렸다. 기름기 흥건하던 세차장 중국 음식은 용기와 한 덩이 되어 통째 굳어버렸다.
3.
눈 구경이 힘든 장강(長江, 양자강) 이남에 벌써 며칠째 눈이 온다. 강남은 눈이 내리더라도 땅에 닿는 족족 녹아버리는 아열대 지역인데 이번엔 그게 아니다. 집 앞에 쌓인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대륙의 칼바람이 부는 북방으로 출장가야 하는 날이면 마음이 더 무겁다. 오늘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단골 택시기사 아저씨가 우리 동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그가 헤이처(黑车, 자가용 불법영업) 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한겨울에도 차 안과 그에게서 걸레 냄새가 코를 찔러, 우리끼리는 아저씨의 택시뿐만 아니라 아저씨까지 싸잡아 ‘쉰내 나는 택시’ 혹은 줄여서 ‘쉰택’이라고 부른다.
쉰택은 눈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간다. 평소보다 두 배 가량 여유 있게 집을 나섰지만 가는 동안 계속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마침내 도착한 난징난짠(南京南站, 남경남역)은 여객들로 인산인해다. 안내데스크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난징난짠은 플랫폼만 40개에 달하는 초 대형 규모의 고속철도 역사다. 게다가 오늘은 70여 편의 열차가 무더기로 취소되었고, 거의 전 열차편이 연착이다. 실시간 열차정보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대부분의 차편은 지연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탈 열차도 현재 시점에서 52분 지연된다고 전광판에 뜬다. 취소 안 된 걸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우리 열차는 정확히 52분 늦게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내 좌석은 하필 우리 칸에서 유일하게 창이 없는 열의 창가 쪽 자리다. 더군다나 통로 좌석에는 중국인다운 덩치의 남자 승객이 두꺼비 배를 내민 채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다. 말이 앉아있는 거지 거의 누워있다시피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혹시 다른 빈자리가 있나 둘러보지만 오늘 같은 날 객실은 당연히 만석이다. 내 자리로 들어가긴 가야겠는데, 영 내키지를 않는다. 목적지 역까지의 몇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보낼지 벌써부터 머릿속이 복잡하다.
폭설로 인해 열차는 수시로 감속 운행을 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윽고 창밖으로 눈 덮인 타이샨(泰山, 태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다 왔다. 바람이 많고 건조해 황량하기만 한 산동이지만, 타이샨 설경만큼은 멀리서 봐도 장관이다. 평소보다 두 시간 가량 더 걸렸지만 십여 분 후면 목적지 역인 지난시짠(济南西站, 제남서역)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런데 맙소사! 타이샨 타이안(泰安, 태안)역을 지나며 서행을 하던 열차가 플랫폼도 없는 주행선 철로 위에 그대로 서버리는 게 아닌가. 객실 안이 잠시 술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특별한 소란은 없다.
한참 후에야 방송이 나오는데, `출발 신호가 안 떨어져 대기 중`이라고만 하고, 어떤 상황이고 언제 다시 출발하겠다는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열차는 다시 한 시간 넘게 꼼짝도 않고 서있다. 내 터지는 속을 누군가가 대신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물어봐 주면 좋겠는데, 승객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학습된 무기력증으로 길들여진 중국의 인민들은 얌전히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기어코 출장지 호텔에 도착했다. 길 위에서 아홉 시간을 보냈다. 평소보다 세 곱절은 더 걸렸다. 사드는 이제 중국 내에서 잠잠해졌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도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교민들 피부에는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열린 공간에서 책을 펼쳐 들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게 현실이다.
책을 보고 있으면 여행 중이던 옆자리의 중국인 승객이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표해 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라던 30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유쾌하지 않은 예언이 진짜 맞아떨어지고 있는 건가? 한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을 그 30년이 사드와 함께 끝나가는 것인가?
이어폰을 사용해 음악과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두어 시간이면 지친다. 오늘 같은 장시간 여행에서의 소일거리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마저도 한국음악 한국드라마 한국영화 따위의 한류 콘텐츠들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다. 앞으로 이런 지루한 여정에는 과연 뭘 하는 게 좋을까? 주위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한글로 된 책 보고, 한국말로 편히 통화할 수 있는 날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부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