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식당 소묘
1.
뷔페식당에 가면 나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를 선호한다. 무엇이든 관찰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능한 한 그들과 마주보게 앉는다. 뷔페에는 다채로운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구경은 뭐니뭐니해도 사람 구경이 최고다.
뷔페식당에는 보편적인 진실 하나가 통한다. 덩치가 있고 먹성이 좋은 사람은 음식에 접근이 용이한 곳에 음식을 바라보며 앉는다는 것이다. 반면 날씬한 사람은 음식 진열대에서 가급적 떨어져 자리를 잡고, 음식과는 등지고 앉는다. 호기심이 많은 내가 어느 책에서 읽고 실제 여러 차례 관찰해본 내용인데, 상당히 맞는 이야기다.
움직임이 분주하다. 타인의 동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시선이 음식에만 가있어 식객들과의 크고 작은 부딪힘도 빈번하다. 음식을 접시 밖으로 매달릴 정도로 담는다. 담는 게 아니라 강박적으로 쌓아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따가 오면 음식이 떨어지고 없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표정과 몸짓이다.
춘제(春节, 설날) 연휴를 아이들과 하이난(海南) 섬에서 보낸 적이 있다. 산야(三亚)라는 휴양지에 있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리조트 형 호텔이었는데, 우리가족을 제외하면 투숙객이 중국인밖에 없는 듯했다. 조식이 제공되는 상품으로 며칠을 묵었는데, 조식뷔페는 날마다 전쟁이었다. 식당 오픈 시간보다 아무리 일찍 내려가도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고,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식당 안은 온통 쑥대밭으로 변했다. 우리 차례가 되면 음식을 놓는 진열대는 메뚜기 떼가 지나간 벌판처럼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피자헛 베이징이 무료 샐러드 바를 결국 없앴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 샐러드가 공짜라는 소문이 돌자 젊은 층을 위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못 가 매장 운영 전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난장판이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음식을 채워 넣어도 이내 먹을 게 남아 남지 않았다. 급기야 피자헛은 무료 샐러드 바 이용횟수를 접시 1회로 제한하게 된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격이라도 하듯 네티즌들은 연일 곡예에 가까운 묘기를 앞다투어 선보이기 시작한다. 인터넷 상에 음식을 많이 그리고 높게 쌓는 요령이 매장에서 찍은 친절한 사진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직모에 스포츠 머리나 긴 생머리를 하고, 음식을 피라미드처럼 쌓아가는 저 사람은 중국인이다.
일군의 시선들이 식당 입구 쪽 누군가를 향한다. 막 입장한 듯한 그의 예사롭지 않은 행태가 눈에 포착된다. 다른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데, 허리를 한번 꺾으면 오뚝이처럼 몇 번이고 파닥거린다. 눈에 거슬리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내 각자의 테이블로 돌아간다. 그들 고유의 습성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굵고 빳빳하다. 눈썹은 숯검정처럼 짙고 두껍다. 한눈에 봐도 그는 일본사람이다. 음식은 맨날 먹는 미소된장국과 초밥에 생맥주다.
그의 접시에는 음식이 몇 점 없다. 담는 순서에도 나름 철학이 있어 보인다. 요리사가 고객에게 직접 내는 접시처럼 스타일링 한 듯하다. 사진을 찍어 올려도 되겠다. 그는 옷차림도 단정하다. 그의 무리는 전원이 아웃도어로 한 벌씩 차려 입었다. 그들에겐 그게 정장이다. 식당 내의 동선에선 안테나를 세우고 타인과의 접촉과 마찰에 항상 신경 쓰며 예의가 바르다. 달리 말하면 자신도 타인으로부터 성가신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피부에서 광이 나는 저 사람은 보나마나 한국인이다.
즉석요리 코너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 그들은 일행과 대화를 나누거나 핸드폰을 하고 있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처럼 전혀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근자에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호텔이나 리조트에 가보면 역시 중국인이 대세다. 즉석요리 대열에서도 그들이 주류이고, 서양인도 간간이 섞여있다. 해만 나면 책을 펴 들고 일광욕을 즐기는 북유럽인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마치 ‘시간은 내 편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들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뚝심 있는 사람들이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탱크부대다.
나는 저렇게 기다리지 못한다. 긴 줄을 만나면 바로 다음 코너로 건너뛴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좀 잠잠해졌을 때를 노린다. 일행이 있으면 서로 줄의 길이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환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이 부류는 합리주의자처럼 보인다. 주어진 환경을 수용하고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나름 진화 속도가 빠른 사람이다.
중국 오면 누구나 만만디(慢慢的)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답답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속이 타 들어가는데, 중국인은 늘 느긋했다. 하지만 이방인인 나 혼자 급하다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뭐든 중국인이 원해야 일이 진행된다. 그건 그들이 일을 하는 데 느린 것이 아니라, 바라지 않는 일일 따름이다. 다만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않는 그들의 속성일 뿐. 오히려 눈앞에 자신의 이익이 있으면 엄청 민첩하고 쏜살같은 사람이 중국인이다.
중국에서 어언 10년, 그 동안 나도 많이 느려졌다. 한때는 중국을 아는 한국사람들로부터 ‘중국인보다 더 중국적이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중국인은 여전히 내가 재빠르다고들 하지만, 어느새 한국에선 신 조선족이요 영락없는 나무늘보더라.
먹던 음식을 남긴 채 다시 가지러 가는 사람. 일행이 함께 먹을 반찬이나 과일 같은 음식들도 몇 접시 담아와 자신들 식탁 가운데에 세팅한다. 내가 아는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풍족하게 자란 이들이다. 손이 크고 베풀기를 좋아한다. 소문난 밥집에 가보면 생각보다 음식 맛이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곳은 잘 없다. 그냥 괜찮네 정도가 대부분이다. 대신 그런 곳은 사장님의 음식 인심이 후하다. 밥을 항상 넉넉하게 담아주고, 추가 밥은 공짜다. 반찬 접시가 비면 알아서 다시 채워준다. 왠지 이들과 밥집 사장님의 모습이 겹쳐진다.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고서야 음식을 다시 가지러 가는 사람. 설거지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조금은 강박적이다. 빈 접시도 차곡차곡 쌓아두고 정리정돈이 몸에 뱄다. 이들 눈에는 다른 사람이 음식 남기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들은 공중도덕과 사회규범을 잘 지키는 이른바 ‘바른생활 사나이’다. 자기고집이 강하고 융통성도 다소 부족하지만, 자신이 맡은 바 일만큼은 깔끔하게 처리하는 편이다. 과거의 나도 여기에 속했다.
음식을 서서 먹는 사람이 보인다. 먹고 바로 일하러 가는 육체 노동자인가? 심지어 돌아다니며 먹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보통 접시를 배꼽 위치에 들고 있다가 먹을 때마다 얼굴 높이까지 들어올린다. 확보된 음식과 취할 수 있는 노획물 그리고 주위의 사냥감과 경쟁자 따위를 모조리 자신의 시야 안에 두려는 것이다. 경계라는 것이 먹을 때 해이해지기 십상인데, 그는 이미 경계가 몸에 붙어있다. 야생동물들도 먹이를 먹을 때 위험에 노출되기 쉽고, 그래서 이때를 가장 경계한다고 한다. 이들에겐 수렵과 유목 생활로 다져진 야생의 유전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식탁에 접시만 내려놓고 이내 사라진다. 왔다 갔다 하며 눈에 들어오는 음식은 뭐든 담아온다. 음식 종류마다 접시마다 각각의 양 또한 결코 적지 않다. 가져온 온갖 접시들을 모조리 펼쳐두고 그때부터는 꼼짝도 않고 한자리에 앉아 먹는 데만 열중한다. 이 사람은 세일할 때 물건을 왕창 사재는 정주형(定住形) 인간일 것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부류다.
와인이 병째 놓여진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와인 마니아인 나는 벌써부터 어떤 와인인지가 궁금하다. 그들은 먹는 데보다 마시고 대화하는 데 빠져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테이블에서 보내고, 음식 가지러 가는 모습은 간간이 보일 뿐이다. 가져오는 음식은 심플하다. 그들은 식사 분위기와 서로의 관계를 중시하는 듯하다. 의외로 진정한 대식가는 이들이다. 식당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동반자가 있으면 이렇게 한다. 특히 뷔페식당에선 혼자서도 늘 와인을 놓고 먹는다. 해산물뷔페에 가면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이나 호주산 샤도네이를 시켜 얼음통에 빠뜨려놓고 마시고, 육류 위주의 식당에선 주로 호주산 시라즈를 마리아주(marriage) 한다. 물론 주머니에 돈이 좀 있거나 분위기를 잡아야 할 때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도 마신다. 아주 가끔이지만 말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소비뇽 블랑이 소개된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여배우 손예진 양이 북한군 청년들과 더불어 조개 구워 소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그녀는 “난 해산물은 소비뇽 블랑 하고만 먹어” 하고 거들먹거리며 언급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에는 직접 등장한다. 뉴욕의 부유한 변호사인 주인공이 아내의 불륜을 잡아내는 데 결정적 단서로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이 등장한다.
클라우디 베이 와인이다. 외도상대는 이웃집 사진작가임이 드러났고, 기가 막힌 풍미로 오랜만에 아내와의 화해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 환상적이기만 하던 클라우디 베이 와인 병은 결국 주인공이 그를 살해하는 흉기로 둔갑해버린다. 소비뇽 블랑은 홍콩 침사추이의 단골 해물뷔페 얌(Yamm)에 가면 아내와 딸아이와 늘 함께 마시던, 내게는 와인 이상의 특별한 오브제이기도 하다.
샤도네이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이트와인 포도 품종이다. 화이트와인의 귀족이라고도 불린다. 오 헨리 단편과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샤블리라는 와인이 나온다. 특히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러시아 상류층이 샤블리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샤블리가 바로 샤도네이 포도로 만든 대표적인 화이트와인이다.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이다. 부르고뉴는 다 좋은데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그래서 나는 데일리 와인으로써의 샤도네이는 남호주 산을 추천한다.
중국에 있는 동안 까베르네 소비뇽, 시라즈, 메를로, 피노 누아 등의 다양한 레드와인을 마셨다.
개중 가장 많이 마신 품종은 시라즈다. 주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마셨고 고기나 비교적 양념이 강한 한국음식에 곁들였다. 밖에서 먹는 다종다양한 풍미의 중국음식들과도 대체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중국에서 와인은 고급 기호품에 속해 수입와인 값이 상당히 비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시라즈 역시 나는 제이콥스 크릭 같은 호주산 위주로 마셨는데, 물류비 덕인지 한국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홍콩은 한국 반값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내가 사치를 부리는 곳은 딱 두 군데다. 책과 와인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병원 서비스 시스템에 와인을 도입했었고, 강남 시절에는 와인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중국 와서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 가며 독학으로 와인을 배웠다. 살 수 있는 와인의 종류가 한국보다 한정되어있다 보니 먼저 매장에서 감으로 고르고, 집에서 검색해가며 마셨으며, 더불어 와인 관련 책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읽었다. 그러니 중저가 와인으로 시작하게 됐고, 값싸고 이름 없는 전세계 와인에 대한 경험은 웬만한 소믈리에만큼 된다. 대략 수천 병 정도는 마셔봤다.
아무튼 가성비로는 위에 언급한 와인들이 세계 정상급이다. 소주가 편한 서민들에겐 이런 중저가 와인도 사치에 불과하고,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겐 가소로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화이트와 레드 둘 다 놓고 마실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러려면 사람 수가 많아야 한다. 각자의 주량에 따라 다르지만 네 명 에서 여섯 명은 돼야 가능한 얘기다.
와인이 곁들여지면 음식을 은근히 많이 먹는다. 누구라도 2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소화가 잘 되고 말이 많아지니 그럴 수밖에. 특히 프랑스 식 코스요리에 각 단계별로 와인 페어링이 되면 하루 종일도 먹을 수 있지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홍콩의 정통 프랑스 식당에서도 가뿐히 3시간 정도는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다 차려놓은 음식을 냉큼 먹어 치우는 데 익숙한 우리의 아이들은 음식이 왜 이렇게 찔끔찔끔 나오냐며, 음식과 음식 사이의 지루한 공백들을 고통스러워 했다. 프랑스 식당에서의 와인 페어링은 내가 우리집 대표로 호사를 누렸는데, 솔직히 와인을 감질날 만큼 주다가 만다.
접시에 초점을 맞추고 눈을 떼지 않는다. 마치 허기로 인해 형성된 몸 안팎의 삼투압 차이로 음식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먹방의 면치기가 연상된다. 이 사람은 한숨 돌릴 때까지 그저 먹기만 한다. 허기가 사라질 때까지는 일행과도 말을 섞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만의 ‘Do not disturb!’ 영역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단기 집중력이 뛰어나다. 내가 아는 이런 부류에는 성질 불 같은 사람이 몇 있다. 자기 걸 건드리면 발끈한다. 비상식적이리 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보통 귀하게 자란 사람이더라. 다소 이기적이지만 자기사람은 잘 챙기는 편이다.
타인의 접시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있다. 민망할 정도로 대놓고 빤히 들여다 보는 자도 있다. 심지어 낯선 외국인에게도 이 음식이 식당 어디에 놓여있는지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그는 분명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자다. 자신의 선택에 늘 자신이 없는 결정장애인가?
샐러드 위주로 접시를 채워오는 사람. 채식주의자다. 시작을 아예 고기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배가 찰 때까지는 고기만 먹는다. 식당 내의 육류라는 육류는 깔 별로 다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 사람은 사냥이 몸에 밴 육식동물이다.
뷔페식당인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한두 가지만 먹는 타입도 있다. 왜 뷔페에 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먹을 때는 집중을 잘 하고 그 동안만은 행복지수가 높아 보인다. 안타깝게도 다른 음식은 채 먹어보기도 전에 벌써 배가 찬다. 그러니 새로운 경험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이 사람은 보수주의자다.
살며 고수해온 음식 외엔 거들떠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는 수구주의자다. 변화를 꺼리고 남의 말은 당최 안 듣는, 험한 말로 하면 꼴통이다. 아니라면 그는 분명 특이체질인 자다.
식당 안에 비치된 웬만한 음식은 다 먹어봐야 성에 차는 사람. 처음 보는 음식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이 튼튼한 그는 도전정신이 강한 음식문화 진보주의자다. 뭐든 잘 먹는다. 음식에 관한 한 나도 진보다. 특히 새로운 경험과 음식에 관해서는 무모할 정도로, 진보 중의 진보다.
후식을 담을 때 특히 그 사람의 미적 감각이 잘 드러난다. 예술적인지, 아니면 실용적인지. SNS에 사진을 적극적으로 올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는 사람은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대개가 젊은이이고 멋쟁이다. 과일만 산더미처럼 쌓아오는 사람도 있다. 과일 좋아하는 데에 성별과 연령 구분은 따로 없지만, 이들은 TV 건강프로 같은 걸 잘 챙겨보는 사람이지 싶다.
나도 이제 후식을 먹어야겠다. 많은 음식이 입안을 지나면 미각이 쉬이 피로해진다. 상부 소화기의 체온도 상승할 것이고. 따라서 식욕 또한 급속도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음식이 우리 몸을 통과하는 게 이제 더는 고역이다. 이때부턴 단지 강한 단맛과 차가운 음식에만 식욕이 반응을 한다. 그 외의 다른 어떠한 유혹도 통각이나 기분 나쁜 자극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각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지는 시점인 것이다. 나도 접시에 조각 케이크,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담아온다. 사진은 찍지도 올리지도 않지만 늘 소량으로 정갈하게 담는다. 그래야 그나마 시각적 자극에 따르는 식욕의 순반응이 일정시간 연장되곤 한다.
나이가 들며 식성도 노화가 일어난다. 미각 기능이 떨어지며 입맛이 변해가는 탓도 있지만, 감각이 좋아하는 음식보다는 먹고 편했던 음식을 몸이 당기는 까닭이 크다. 한번 먹고 탈이 났던 음식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심지어 평생을 먹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음식에 대한 좋고 싫은 경험들을 우리의 신경계가 기억해 두었다가 우리 몸으로 하여금 조건반사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리라.
60이 코앞이다. 이순(耳順)은 귀가 순해지는 나이다. 귀를 따르는 게 순리라는 말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우리는 타인의 말과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잘 들으려면 먼저 입부터 닫는 게 이치다. 이순은 노년으로 가는 관문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야 하고, 들리는 대로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또 우리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있지는 않는가.
2.
출장지에서 호텔 조식은 혼자 할 때가 많다. 동행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고, 있어도 샤오인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조식보다 아침잠을 택한다. 아침은 누구와 시간 맞춘다든지 하며 성가시게 굴 필요 없이 그냥 내 정해진 시간대로 내려와 혼자 먹는 게 편하기도 하다.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고 아침도 일찍 먹는 편이다.
주로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든다. 그 시간대에는 식당이 막 문을 열어 붐비지 않고, 자리도 내 맘대로 고를 수 있어 좋다. 나는 혼자일 때도 시야가 탁 틔고 접시를 몇 개 놓더라도 소잡하지 않은 4인용 테이블을 고집한다.
4인 테이블 대각선에 접시 하나가 놓인다. 음식을 하도 많이 담아 양 손을 써서 공손하게 내려 놓는다. 아이비처럼 드리워진 잡채 당면과 콩나물 몇 가닥이 하얀 테이블 보 위에 걸쳐진다.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 그림처럼. 누군지 얼굴이라도 한번 볼까 하다 그냥 참는다. 접시 주인은 자리가 있는지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마실 걸 가지러 간 모양이다. 다른 빈 자리도 많은데, 왜 하필 내 테이블에 붙었을까?
잠시 후 내 옆자리에도 접시 하나가 놓인다. 다시 얼마 후 그 두 개의 자리에 각각 음식이 그득한 새로운 접시들이 추가되고, 죽 대접도 하나씩 더해진다. 음식의 주인 두 사람이 대리석 바닥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도록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가 싶더니, 마주앉기가 무섭게 요란하다. 곁눈질로 째려보니 두 사람이 마치 시합이라도 하듯 죽을 젓가락으로 퍼 마시고 있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고 떠든다. 게걸스럽게 죽 한 그릇을 해치우더니 곧바로 접시로 달려든다. 접시도 단숨에 삼켜버릴 태세다. 음식을 마구 튀긴다. 아침부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식탁의 선주민인 나는 안 전에도 없다. 테이블 두 개를 붙여놓은 거라면 당장 떼내고 싶다. 아니면 반으로 쪼개기라도.
이런! 내 앞에도 접시가 놓인다. 접시 주인은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한참 전 높이에서부터 헬기 공습을 시작하다. 침으로 테이블 전반에 걸쳐 부채꼴 형태의 분무 질을 해댄다. 그는 기존의 침략자들과는 전우 사이다. 식탁은 그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고, 이젠 누가 봐도 이건 내 자리가 아니다. 딱 그들 나라에 내가 빌붙은 꼴이 돼버렸다. 한족들 앞에서 느낄 법한 우리 조선족의 위상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이러고선 나중에 내가 알박기 한 거라고 우기겠지. 식욕이 뚝 떨어진다. 과일을 가지러 간 나는 결국 다른 테이블로 옮겨 식사를 마무리한다.
이렇듯 중국 와 처음에는 그들이 참 예의가 없다고, 특히 식사 예절에 관해서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때론 치미는 부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아무렇지 않게 반복해서 일어났다. 그러는 동안 나와 함께했던 중국인 친구들이 왜 그리도 원탁 하나만 있는 밀폐된 공간을 고집했는지, 왜 그런 방이 딸린 식당만을 찾았는지 얼마큼 이해가 갔다. 한편으로는 이런 개방된 식당에서의 식사습관을 통해서도 중국의 역사와 민족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웃나라인 우리와는 많이 다르구나. 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 맞네. 그렇게 부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중국은 이런 식으로 해서 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이민족들을 내쫓았겠구나. 도저히 못 버티게 만들어 제 발로 걸어나가게 했겠지. 그게 용이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병합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을 테고. 그렇게 영토를 넓히고,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나라와 민족 들을 다스릴 수 있었겠구나.'
`그들의 유전자에는 자신이 식탁의 주인을 넘어 세상의 한가운데, 즉 세계의 중심국가(中国)라는 중화사상이 새겨져 있어.'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땅덩어리가 한반도 30배에 달할 만큼 크다 보니, 한 번 보고 다시 안 마주칠 사람 또한 엄청나겠구나. 따라서 가까운 지인 외에는 사람을 믿지 않을 테고. 모르는 사람에겐 아예 관심조차 없겠어.'
‘중국인은 “런뚜어 런타이뚜어(人多人太多, 사람 많아 사람이 너무 많아)!”란 말이 입에 붙어있어. 이 말은 단순한 서술에 그치지 않고 어떤 의도도 포함하고 있지. 사람이 너무 많아 내게 불리하니 어떻게 좀 됐으면 좋겠다는 저의라고.’
3.
내일이면 딸아이를 본다. 여름방학 동안 홍콩에 남아 인턴을 하고 있을 아이를 위문하고, 며칠 후로 다가온 아이의 생일도 함께한다. 한국에 가있는 아내와는 직접 홍콩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다. 출장지인 이곳 쑤저우(苏州, 소주)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우시(无锡, 무석)에 있다. 상하이 홍차오(虹桥, 홍교)공항도 가깝지만, 우시가 붐비지 않고 홍콩 가기에도 훨씬 편리하다.
우시는 일본과 대만 기업이 많다. 그들과 관련한 글로벌 기업도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현대자동차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과 유관 협력업체 들이 들어와 있다. 우시의 산업 신구(新区)에는 코리안 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한국학교도 있다. 한창 땐 교민이 몇 만에 달했다고 한다.
우시에는 중국 와서 우연히 재회한 고교동창 녀석 K가 살고 있고, 내가 병원사업을 한답시고 한국과 상하이를 오가던 시절 알게 된 친구 N도 있다. K와 N 두 사람 다 우시 한인상공회의 임원이다. 한때 한상회 차원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치과와 내과를 꾸린다고 우린 자주 오갔었다.
우시는 어릴 때부터 생선회를 좋아해온 우리아이들과도 인연이 있다. 중국으로 건너온 지 몇 달이 지나 회에 대한 갈증이 커져갈 때다. 하루는 회라고는 입에도 못 대는 K가 한국 치과의사의 몸으로 어쩌다 중국까지 흘러 들어온 고교동창 녀석과 그의 아이들에게 먹인다고 우시 바닥을 샅샅이 뒤져 어렵사리 구해온 생선회가 문제였다. 먹고 된통 사단이 난 것이다.
난징(南京, 남경) 집으로 돌아오자 작은아이는 설사를 해대기 시작했고, 며칠 만에 눈이 퀭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을 만큼 심하게 앓았다. 마치 유니세프 홍보대사 오드리 햅번이 안고 나오는 아프리카의 어떤 아이 같았다. 마침 한인교회의 성도 가운데 한국에서 간호사 하던 분과 앞서 ‘베이징’ 편에 나온 한국 성형외과 의사 A가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아이는 수액도 맞아가며 별탈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다.
쑤저우 일정을 마치고 우시에 왔다. 내일 홍콩 행 첫 비행기를 타야 해서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기로 했다. 여행사 일도 겸하는 친구 N이 예약을 대신해주어 방값은 이미 지불되어 있다. 체크인을 위해 여권을 내밀자 프런트 직원이 영어로 나를 응대한다. 우리는 안 되는 짧은 영어로 한동안 지루하게 서로를 더듬는다. 중간에 내가 영어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 무심결에 중국어 한마디를 흘렸더니, 그녀의 호의적이던 얼굴은 '너 왜 중국어 할 줄 안다고 안 했니?' 하는 어이없다는 썩소로 돌변한다. 마치 중국 쓰촨(四川, 사천)지방의 가면마술 ‘볜롄(变脸, 변검)’을 보는 듯하다. 한참을 날 쏘아보던 그녀는 그새 머리 위에 띄어 놓았던 중국어 말풍선들을 터뜨리며 프런트 직원이 씀직한 정형화된 문장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다음 날 비행 시간을 감안해 미리 택시를 예약해 달라고 한다. 아침을 먹지 못할 이른 시간임을 알아챈 직원은 출발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오호! 제법인데. 당시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서비스에 나는 살짝 감동 먹는다.
여권과 객실 키를 받아 들고 나니 로비에 일식당과 상하이 음식점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하자 볜롄은 너 말 잘했다는 듯 주저 없이 뷔페를 추천한다. 호텔에서 직영하는 식당인데, 프런트에서 쿠폰을 구입하면 투숙객은 할인이 된다. 원래 가격이 188위안인데 특가로 128위안(한화로 약 2만원)이라고. 명색이 5성급호텔인데 가격이 정말 착하다. 혹여라도 그녀가 잘못 말했다고나 하진 않을까 나는 숨도 안 쉬고 바로 한 장을 구매했다.
객실 문을 여는데 뜨거운 공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나는 수문을 연 것처럼 물살을 잠시 비켰다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에어컨은 꺼져있고, 조절기 모니터의 실내 온도는 32도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얼른 에어컨 전원을 켜고, 설정 온도를 24도에 맞췄다. 여행 보따리를 푸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팽개쳐버리고 방을 탈출한다. 가만! 돌아왔을 때 다시 에어컨이 꺼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나는 객실 카드 키는 그대로 꽂아두고 나온다. 그러고는 프런트에서 다시 한 장을 발급 받는다. 다행히 무료다. 가끔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숭악한 호텔도 있는데.
뷔페식당으로 향한다. 산해진미에 와인까지 한잔 곁들일 기대감에 나는 진작부터 행복에 젖어 있다. 식당은 지하에 위치해 있고,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테이블이 족히 백 개는 되겠다. 자리를 안내 받고 내가 습관적으로 부채를 꺼내 펼치자, 웨이터는 에어컨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준다. 오! 친절한데?
와인 리스트를 가지러 간 웨이터는 내가 음식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난 후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참 후에야 나타나 쭈뼛거리더니, 하우스 와인이 무료로 제공되는데 그래도 시키겠냐고 묻는다. ‘와인을 따로 주문하는 바보는 없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라는 표정이다. 여태껏 와인 시키는 사람은 본 적이 없고, 자신이 주문을 받은 적은 더더욱 없다는 얘기다. 나는 눈 깜짝할 만큼만 갈등하다가 그래도 화이트와인으로 한 병을 주문한다. 그와 눈을 맞춘 후 오른손 검지를 와인 리스트 위에 잠시 짚었다가 다시 그를 향해 곧바로 공중에 내세우며 ‘이핑(一瓶, 한 병)’ 하고 입만 뻥긋한다.
허기가 가셔 한숨을 돌리고 보니, 손님은 나 포함 네 테이블밖에 없다. 다 합쳐 열 명쯤 되겠다. 그것도 한 테이블에는 호텔 제복을 입은 사람이 오가고, 와서 앉기도 하는 꼴이 그들이 직원 가족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머지 두 테이블은 아이 한 명씩을 동반한 3인 가족단위 손님이다. 조용한 건 좋은데 조금 께름칙하다. 개의치 않고 다시 혼밥 혼술을 즐기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누군가가 자리를 잡는다. 두 명의 서양 여인이다.
잠시 후에는 노래하는 듯한 테너의 목소리도 들린다. 접시에 박은 코를 와인 잔으로 옮겨 담으며 흘겨보니, 주방장 차림의 거구 플라시도 도밍고가 테이블 옆에 서서 그녀들과 레치타티보(Recitativo, 서창)를 나누고 있다. 아뿔싸! 서양 여인들마저 주방장 지인인 거다. 결국 외부인은 가족단위 손님 여섯과 나, 이렇게 일곱 명이 전부인 셈이다. 그것도 가장 붐벼야 할 만찬 시간에. 이런! 혹시 외부손님은 나뿐인 거 아냐?
이런 경우 가장 염려되는 사안은 식재료의 신선도다.
순간 식당의 면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진열된 뷔페 음식들이 좀비처럼 떼를 지어 내게 달려든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먹은 홍합이 냄새가 좀 역했다. 오징어다리 꼬치도 덜 익어 물컹거렸다. 샐러드는 이미 드레싱에 버무려진 것뿐이었고, 사실 언제 버무린 건지 모른다. 야채도 신선할 리 없다. 하우스 와인과 음료는 언제 따서 어떻게 보관한 건지 알 수 없다. 썰렁한 즉석요리 코너에는 요리사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예 인적이 없었다. 음식들이 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멀쩡하던 배가 돌연 싸해진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주위가 잠잠하다. 둘러보니 어느새 남은 손님이 나밖에 없다. 조금 전까지 내 근처에 와서 모형자동차를 가지고 놀던 아이도 보이지 않는다. 호의 어린 유심한 눈빛으로 나와 교감했었는데. 웨이터들이 다 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꼭 ‘혼자 와서 마치는 시간 끝까지 남아 있는 중년남자 손님이 제일 싫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젊은 시절 우리는 절대 저러지 말자 다짐했건만. 정작 내가 그런 눈치 없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쯧쯧!
나도 이만 오늘을 마쳐야겠다. 나를 위해 자리를 시원한 곳으로 옮겨주고 와인도 서빙 해준 젊은이들을 위해. 맑은 정신으로 또 하나의 소중한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홍콩에서의 아내와 딸아이와의 미치도록 행복한 시간을 위해. 전율이 흐르는 그 순간들을 고스란히 감각하기 위해. 지금쯤 객실은 좀 시원해졌겠지.
